UPDATED. 2024-04-20 07:40 (토)
뜻밖의 명작,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뜻밖의 명작,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 교수신문
  • 승인 2020.02.21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박찬희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박찬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정원에는 전시실 안의 유물에 버금가는 뛰어난 유물들이 전시되었다. 박물관 입구에 있는, 신라 문화를 상징하는 성덕대왕신종을 시작으로 어느 절에 있었을 탑과 불상들, 석조물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유물들을 보고 있으면 바쁜 발걸음도 느려지고 어느새 신라 문화의 정수에 쏙 빠져든다. 야외 정원에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은 제법 많지만 이곳만큼 걷는 즐거움과 발견의 기쁨을 주는 곳은 흔하지 않다.

그런데 관람자들의 발걸음이 잘 닿지 않는 박물관 야외 정원 한구석에는 뜻밖에 탑 하나가 우뚝 서 있다. 전혀 뜻하지 않게 만나서인지 느닷없이 이 탑을 맞닥뜨린 관람자들은 그만 입을 쩍 벌리고 만다. 이 탑은 마을을 지키는 오래된 아름드리 당산나무처럼 든든하고 당당하게 관람자들을 맞아준다. 대지에 굳건히 뿌리박은 전설의 나무 같은 탑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우주나무처럼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를 듯 경쾌하다. 육중한 무게감과 경쾌한 상승감이 조화를 이루는 이 탑이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8호)이다.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박찬희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박찬희

탑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탑은 더욱 커져 어느 신화에 나오는 하늘을 떠받드는 거인 같다. 관람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탑 앞에 서서 고개를 들어 탑을 올려다본다. 그때 만나는 탑은 관람자를 압도하면서도 관람자들에게 넉넉하게 곁을 내줄 것만 같다. 잠시 탑을 살펴보던 관람자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순례하듯 탑을 돌기 시작한다. 천천히 탑을 돌아 처음으로 돌아올 때면 왠지 모를 경외감과 자신에 대한 기쁨이 은근히 솟아오른다. 끝도 알 수 없는 우주 속의 나를 생각할 때, 압도적인 자연 경관을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내가 비록 작은 인간이지만 이렇게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느낌이다.

석탑의 나라답게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석탑이 전해지고 그중에는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들이 제법 많다. 세련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장중한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경주 감은사지 삼층석탑, 균형과 비례가 완벽한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더 이상 화려할 수 없는 경주 불국사 다보탑 등 얼핏 헤아려도 이 정도다. 이 탑들과 달리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안타깝게 제자리를 떠나 박물관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지만 자리를 가리거나 따지지 않고 가르침을 전하는 고승과 같은 의연한 탑의 모습을 보면 이래서 명작이구나 싶다.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박찬희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박찬희

고선사지 탑의 고향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뛰어난 신라의 고승 원효가 머물렀던 고선사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무렵 문을 연 것으로 보이는 고선사는 어느 순간 폐사가 되었고 덕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될 운명에 처했다. 이 탑은 수몰 지역 사람들이 그랬듯 천 수백 년을 지켜오던 땅을 떠나 1977년 이곳으로 터전을 옮겼다. 그런데 절에서와 달리 이곳에서는 사람들 눈에 잘 뜨이지 않는 한적한 곳에 둥지를 틀었고 게다가 나중에는 덩치 큰 신라미술관에 가려 가까이 가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조차 잘 모른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물은, 특히 탑과 같은 유물은 본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난다. 제 자리를 떠난 탑은 고유의 맥락을 잃고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는다. 고선사지 삼층석탑 역시 고선사라는 장소성은 사라지고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정원이라는 새로운 장소성을 얻었다. 이 탑을 처음 보는 관람자들이 고선사라는 구체적인 장소와 이 탑을 연관 지어 떠올리기는 어렵고 설사 장소와 연관 지으려고 해도 이미 그곳은 가볼 수 없는 곳이어서 더 이상의 상상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발굴을 통해 밝혀진 절의 구조를 보면 탑은 금당 앞이 아니라 독립된 영역에 홀로 서있어서 일반적인 탑의 배치와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런 구조라면 탑은 무대의 주인공처럼 더욱 빛났을 것이다. 그러나 관람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사실보다 현재 전시 조건에서 탑을 대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탑 뒤로 경주 남산을 비롯한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졌고 위로 넓은 하늘이 막힘없이 열려서 안쓰러움과 아쉬움이 조금은 줄어든다.

제자리에 있던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문화재청
제자리에 있던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문화재청

신라가 백제, 고구려, 당과 차례로 전쟁을 벌여 마침내 세 나라가 한 나라가 되었을 무렵 고선사지 탑이 탄생했다. 새로운 시대가 펼쳐질 무렵 새로운 분위기가 일어나고 이 분위기는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간다. 통일신라 탑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어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고선사지 삼층석탑과 같은 기념비적인 탑들이 등장했다. 이 탑들은 이중 기단 위에 3층으로 만들었으며 간결하다. 그리고 새 시대 특유의 역동성과 활력을 담아서인지 거대하고 중장하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압도하는 힘을 지녔다. 단지 크기만 크다고 모두 압도하는 힘을 지닌 건 아니다. 그 힘의 원천은 크기와 더불어 돌의 힘에 있다. 만약 같은 크기의 목조건물이었다면 이러한 힘은 쉽게 얻지 못했을 것이다. 예부터 돌은 영원성과 신성성으로 사람을 휘어잡곤 해 기념비적인 건축물에서 자주 사용되었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을 비롯해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선바위까지 무척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 석탑을 많이 만든 건 화강암이 풍부해서이기도 하지만 돌 특유의 영원성과 신성성도 한몫했다. 몇 미터도 아닌 무려 9미터에 이르는 이 탑은 한 덩어리의 커다란 바위가 되어 사람들을 휘어잡는다. 

큰 덩치가 주는 힘을 감동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성공적인 안정감과 상승감이 필요했다. 석탑은 목조 건물을 모델로 만든 건축물이다. 석탑을 보는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또 육중한 돌에 눌려 보이지 않고 부처가 있는 하늘로 오르는 듯한 상승감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뛰어난 비례와 균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탑을 받치는 기단부는 너무 넓어서 퍼지거나 너무 높아 위태롭게 보이지 않도록 적당한 넓이와 높이로 만들어졌다. 기단부 아랫부분부터 1층 지붕돌을 지나 3층 지붕돌에 이르기까지 탑은 일정한 비율로 줄어들어 이등변 삼각형을 그어보면 탑이 그 안에 쏙 들어간다. 치밀하게 계산된 비례와 균형을 통해 탑을 본 사람들은 땅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면서도 경쾌하게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만약 지금은 사라진, 하늘을 찌를 듯한 찰주까지 남아있었다면 그 느낌은 더했을 것이다.

비슷한 시대에 태어났고 크기와 구조가 닮은 감은사지 삼층석탑과 비교하면 이 탑만의 또 다른 매력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감은사지 탑이 한발 떨어져 보도록 만든다면 이 탑은 점점 다가가도록 만든다. 감은사지 탑이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는다면 이 탑은 슬쩍 곁을 내주며 한발자욱 더 가까이 가도록 만든다. 곁이 있어서일까, 이 탑의 압도하는 힘은 고압적이거나 위압적이지 않다. 이런 면에서 신라의 백성 속으로 들어가 격의 없이 불법을 펼쳤던 불교의 큰 거인 원효와 이 탑이 겹쳐진다.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전국적인 명성을 지닌 명작들이 많지만 고선사지 탑처럼 아는 사람만 알고 본 사람만 아는 명작들도 있다. 고선사지 탑은 보는 이들의 눈길을 잡고 발걸음을 이끈다. 탑 앞에서 고개를 드는 순간 신성을 떠올리고 탑을 돌며 간절함을 새기고 다시 그 앞에 섰을 때는 위로와 위안을 받는다. 가끔 이 탑이 떠오를 때는 충만하고 국립경주박물관을 방문해 이 탑을 보러갈 때는 설렌다. 

뜻밖의 명작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오늘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이 시대의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 세월 그랬던 것처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