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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냉정과 열정사이
[학문후속세대의 시선]냉정과 열정사이
  • 교수신문
  • 승인 2020.02.0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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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욱 서울대 석박통합과정

 

“실험은 장난이 아니야” 필자가 학부생 때, 인턴 연구원으로 참여했던 연구실에서 실험을 알려주시던 박사님께서 하셨던 말이다. 그 당시에는 열정으로 충만한 필자가 너무 적극적으로 실험에 참여하려는 모습이 부담스럽거나 혹은 성가시게 느껴져 하셨던 말로 치부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필자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정말로 실험은 장난이 아님을, 그리고 연구는 열정만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연구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열정은 중요하게 작용한다. 소위 열정적인 자세의 학생은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환영받는다. 여기서의 열정이란, 자기 연구에 대한 흥미, 자부심, 애정, 사명감 등을 포함한다.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까지 혹은 끼니를 대충 때우며 실험을 하고,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도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다음 실험을 계획하는 것도, 모두 연구에 대한 열정이라는 원동력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과유불급 (過猶不及)이라, 필요하지 않을 때의 지나친 열정은 때로는 연구에 독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한다. 특히 실험을 설계하거나 결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는 뜨거운 열정보다는 차분함과 냉정함이 더 요구된다.

연구에 투자되는 시약, 사용되는 장비, 기구들은 일반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들며, 이것들은 대부분 세금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필자가 연구하는 분야처럼) 동물 실험을 하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생명의 희생이 수반된다. 이러한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실험은 단순히 열정만 가지고 흥미를 충족시키기보다 책임감을 가지고 전체적인 연구의 흐름에 꼭 필요한 실험인지를 냉정하게 따져보고, 불필요한 실험이 되지 않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결과를 분석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열정이 지나쳐 자신이 세운 가설에 너무 몰두하면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결과상의 작은 차이를 무시해버리거나, 혹은 과장되게 해석하여 기껏 힘들게 진행했던 실험이 주는 의미가 왜곡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보고 싶은 결과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확증편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필자가 이러한 열정의 함정을 깨달은 것은 대학원에 입학한 후 꽤 시간이 지난 후, 한국연구재단에서 주관하는 펠로우쉽에 지원할 기회가 생기면서였다. 연구계획서에 필요한 실험설계부터 예상성과까지 다양한 항목을 평가위원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작성하다보니, 이전에 계획했던 실험들의 허술한 부분과 가설과 부합한다고 여겼던 결과들이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열정만 가득하고 냉정함이 결여된 그 동안의 연구를 발견한 것이다. 이 당시 잠시 실험을 멈추고 차분히 계획서를 작성했던 일이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 지금은 연구 중간마다 처음부터 계획을 점검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냉정한 관점으로 다시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면역학적인 의미로 “면역력이 강하다”는 것은 감염이 발생했을 때에는 강하게 면역 반응이 일어나지만, 평상시에는 낮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자가면역질환이나 과한 염증을 유발하여 오히려 체내 여러 기관들을 손상시킬 수 있다. 연구에서의 열정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필요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잘 구분하여 통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 또한, 좋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연구에 너무 몰입해있다면, 잠시 그 열정을 내려놓고 머리를 식히는 수승화강(水升火降) 해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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