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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금관으로 가는 길
신라 금관으로 가는 길
  • 교수신문
  • 승인 2020.02.0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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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금관총 금관. ⓒ박찬희
금관총 금관. ⓒ박찬희

“와, 금관이다! 진품일까, 무게나 얼마나 나갈까, 진짜 썼을까?”

박물관에서 쓰윽 유물을 지나치던 사람들도 금관 앞에만 서면 갑자기 말문이 열린다. 금관의 힘이다. 금관은 신라를 상징하는 유물로 아낌없이 금을 사용한 데다 번쩍거리고 화려하다. 말로만 듣던 금관이 바로 눈앞에 있어서인지 아이나 어른이나, 박물관에 관심이 많거나 적거나 이 앞에 서면 저절로 한마디씩 나오는 것 같다. 만약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감탄사를 듣고 싶다면 금관 앞으로 가면 된다.  

금관의 고향인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는 금관은 모두 세 점이다. 그중에서 사람들 발걸음을 사로잡는 크고 화려한 금관은 두 점으로 각각 금관총과 천마총에서 발굴되었다. 생김새도 대단하지만 신라 금관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상 역시 이에 못지않다. 금관총 금관은 신라의 금관 가운데 가장 먼저 발굴된 것으로 황금 신라 신화의 서막을 알렸으며 천마총 금관은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 금관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으로 손꼽힌다. 이 정도면 고향땅에서 신라의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로 꼽아도 손색이 없다. 

이 두 점을 보려면 신라역사관 2실로 가면 된다. 이 전시실은 ‘황금의 나라 신라’라는 평범하지만 매력적인 내용을 주제로 삼았으며 금관총, 황남대총, 천마총 등 금관이 발견된 무덤을 중심으로 구성하였다. 그런데 전시실 세 곳의 공간 구성과 금관을 전시한 방법이 서로 다르다. 덕분에 전시실마다 다른 시선으로 금관을 만날 수 있다. 

전시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금관총에서 나온 금관(국보 제87호)이다. 1921년 9월 어느 날, 신라 고분군 사이에서 장사하던 주막집 주인은 주막집을 확장하기 위해 집 뒤편을 파냈다. 파낸 흙은 근처에 쌓아두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순사가 흙더미 속에서 구슬을 발견하였다. 구슬이 예사롭지 않다고 판단한 그는 흙의 출처를 살펴보고 그곳이 무덤임을 확인해 조선총독부에 보고하였다. 그러나 전문가의 파견이 차일피일 늦어져 기다리다 못한 비전문가들이 성급하게 무덤을 조사하였다. 이때 금관이 발견되면서 신라 금관 신화가 시작되었다. 경주 사람들에게 금관은 경주와 신라의 자부심을 담은 유물이 되었다. 때문에 조사를 위해 경성으로 금관을 옮기려고 하자 경주 사람들은 반대를 했고 기어코 다시 경주로 돌려보낸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전시실은 금관총의 내부 배치를 재현하였다. 금관은 머리 부분에 눕혀졌고 허리띠는 허리 부분에 걸쳐졌다. 그 아래로 꾸미개 장식이 줄줄이 늘어섰고 발 부분에는 금동신발이 나란히 놓였다. 이 모습을 보면 금관을 비롯한 각종 유물이 어떻게 놓였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 전시는 금관을 세우고 홀로 전시해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대신 금관을 눕히고 다른 유물들과 같이 전시해 전체적인 맥락 속의 금관을 눈여겨보도록 했다.  

황남대총 남분 유물. ⓒ박찬희
황남대총 남분 유물. ⓒ박찬희

다음 전시실은 주로 황남대총 남분의 유물을 전시하였다. 황남대총은 총길이 120미터, 남쪽 무덤 높이 23미터, 북쪽 무덤 높이 24미터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대의 무덤이다. 장대한 무덤의 규모에 걸맞게 이곳에서는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발굴 결과 남쪽 무덤인 남분이 왕의 무덤이고 북쪽 무덤인 북분이 왕비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기대했던 왕의 무덤에서는 금관이 아니라 금동관이 나온 반면 왕비의 무덤에서는 오히려 금관이 나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 전시실은 금관총 전시실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다.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전시실 한 면을 가득 채운 유물에 놀란다. 겹겹이 늘어선 유물들을 보면 무엇보다 ‘진짜 많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이 무덤이 아니라 북분에서 금관이 나왔지만 당시 왕이 누렸던 권력의 크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으며 자연스레 금관이 강화된 왕권을 배경으로 탄생했다는 암시를 받는다. 황남대총 북분에서 나온 금관(국보 제191호)이 전시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금관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 신라실 가장 앞에 전시되었다. 

황금 신라실의 대미를 장식한 금관은 천마총 금관(국보 제188호)이다. 천마총은 1970년대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발굴되었다. 애초에 발굴하려던 무덤은 이 무덤이 아니라 황남대총(이전 명칭은 98호분)이었다. 그러나 축적된 발굴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섣불리 거대한 무덤을 발굴하는 일은 도박에 가까웠다. 큰 무덤을 제대로 발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덤 발굴 경험을 쌓아야 했다.

이때 천마총(이전 명칭은 155호분)이 대안으로 등장했다. 황남대총 맞은편에 자리 잡은 천마총은 크기나 구조가 발굴 경험을 쌓기에 적당했다. 1973년 시험 삼아 발굴한 천마총에서 뜻하지 않게 뛰어난 유물들이 한꺼번에 발견되었다. 신라 금관 가운데 가장 화려한 금관과 다래에 천마가 그려진 천마도였다. 특히 천마도가 발견되면서 무덤 이름도 155호분에서 천마총으로 바뀌었고 황남대총이나 다른 무덤을 제치고 가장 유명한 신라 무덤이 되었다.

천마총 금관은 전시실에 홀로 전시되었다. 주변은 어둡고 조명은 금관과 허리띠에 집중되어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실에 들어선 사람들은 다른 것에 눈길을 뺏길 틈 없이 오로지 금관에 집중한다. 금관 자체만으로도 발걸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한데 오직 금관만 보도록 전시실을 만들어 금관이 더욱 빛난다. 게다가 이 금관은 가장 화려한 금관이 아닌가.  

천마총 금관. ⓒ박찬희
천마총 금관. ⓒ박찬희

“와, 금관이다!”라는 짧은 감탄사를 뒤로 하고 금관을 응시한다. 이 순간 사람들은 황금 신라의 하이라이트에 쏙 빠져든다. 그리고는 이것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촬영한다. 왁자지껄한 시간이 지나면 “이제 금관을 봤으니까 가자.”라며 더 이상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 가지를 더한다.

순례자처럼 진열장을 따라 돌면서 앞부분의 나무 모양 장식, 뒷부분에 달린 사슴뿔 모양의 장식을 구석구석 살펴본다. 그리고는 가끔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한다.

“저렇게 무거운 걸 진짜 썼단 말이야? 장식들이 흔들려서 불편하고 목이 아팠을 텐데!”

이런 의문을 남긴 채 전시실을 떠난다. 사실 금관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살아 있을 때 왕을 비롯한 왕족이 썼을 것이라는 의견이 일반적이지만 죽은 왕족의 얼굴을 감쌀 때 썼던 장례 용품이라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다. 실제 사용 여부를 떠나 사람들은 역시 신라는 금관과 황금의 나라라는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금관총 금관에서는 맥락을 보고 황남대총에서는 역사적 배경을 알고 천마총 금관에서는 감동을 느낀다. 이런 면에서 전시실은 사람들의 감정을 극적으로 이끌어내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다.  

그런데 금관을 주제로 한 또 다른 드라마는 역설적으로 금관이 전시된 박물관에서는 볼 수 없다. 다른 모든 유물이 그렇듯 금관 역시 처음부터 박물관에 있지 않았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모두 무덤 속에 들어있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을 보다보면 이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때문에 금관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금관의 고향인 무덤도 가야한다. 무덤 사이를 거닐 때, 천마총과 같은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 황남대총과 같은 거대한 무덤과 마주할 때 떠오르는 금관은 박물관 전시실에 우아하게 전시된 금관과 또 다를 것이다. 

그때는 어떤 드라마를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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