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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시끄러운 수업, 떠들다가는 시간
【딸깍발이】 시끄러운 수업, 떠들다가는 시간
  • 교수신문
  • 승인 2020.02.0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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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 정치학 박사)
신희선 교수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정치학 박사)

단기 속성코스였다. 15일 동안 진행된 계절학기가 모두 끝났다. 교양필수 교과인 <비판적 사고와 토론> 수업이었다. 실습 위주의 강좌이고 정규학기와 동일하게 커리큘럼이 구성되었던 터라, 학생들 말로 ‘빡센’ 수업이었다. 2학점 2시간 수업이지만 강의실 밖에서 두 세배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결국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수강을 포기했다. 끝까지 완주한 학생들은 “대학다운 수업”이라는 강의 평을 남겼다. 토론 수업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배우게 할 것인지 짧은 계절학기를 마치며 유독 생각이 많았다. 통과의례 교과로 의무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학점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하는 것은 혼자만의 꿈일까?

 학생들이 피해갈 수 있는 수업이 아니었다. 숙명여대의 경우 토론수업은 리더십특성화 대학에 선정된 2002년부터 교양필수 교과로 개설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은 리더에게 중요한 역량이기에 마련된 수업이었다. 학생들의 의사소통능력을 키워주려는 목적으로 설계된 토론교과를 통해 논리적, 비판적인 사고와 공적 말하기 능력을 키우고 연마하도록 하였다. 차근차근 학년이 올라가면서 축적이 되도록 기초를 다지는 일이었다.

 그러나 학교의 의도와는 달리 학생들에게는 고역일 수 있는 수업이었다. 고등학교까지의 수업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었다. EBS의 다큐프라임 <다시, 학교>에서 보여진 교실 풍경처럼, 학원에 밤늦게까지 붙잡혀 있던 학생들은 학교에서 졸거나 수동적이었다. 그런 까닭에 대학에 입학해 접하는 토론수업은 학생들을 흔들어 깨우는 시간이었다. 학생 스스로 학습의 주체가 되는 토론수업은 낯선 경험이었다. 남 앞에서 말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은 수강을 최대한 미루기도 했다. 그러저런 이유로 계절학기 수업은 졸업하려면 어쩔 수 없이 들어야만 하는 고학년이 대부분이었다.  

 토론은 학생들을 바꾸었다. 학생들은 토론을 경험하며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였다. 모두가 떠들다가는 시간이었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수업’을 강조하였다. 매시간 활동 위주로 진행되었기에 실습이 없는 날도 조별로 모여 생각을 나누었다. 모두에게 말을 하는 기회를 주었기에 학생들의 침묵과 방관은 있을 수 없었다. 수업의 중심에 학생들이 있었다. 토론모형에 따른 실습만이 아니라 매시간 수업에서 학생들은 목소리를 내야 했다. 온라인 강의실에 올려진 수업자료라도 보고 와서 수업의 흐름에 동참하도록 하였다. 토론의 원리를 배우고, 실제 토론을 경험하고, 실습 후에 셀프 피드백과 동료평가를 하는 모든 학습과정에 학생들이 먼저였다.

 학생들의 잠재력을 깨우는 시간이었다. 토론을 하며 학생들은 생각이 바뀌고 확장되었다. 토론 능력을 쌓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직접 해 보는 일이다. 계속해서 말을 하고 듣는 환경에 노출되다 보니 학생들의 목소리에 점점 자신감이 묻어났다. 토론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었다. 일상에서도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행위라는 점에서 논제를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토론은 우리의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신의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타자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과정이자, 서로 다른 주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가운데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토론임을 알게 되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찬반토론을 통해 달리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음을 학생들은 인식하였다.

 “토론과 민주주의는 분리될 수 없다.” 브룩필드와 프레스킬은『토론』이라는 책에서 민주적인 교실을 위한 교수방법으로써 토론을 말한다. 보다 중요한 점은 토론이 비단 교실 분위기만 바꾸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교수자의 지식이 권력이 되어 학생들의 학습 전체를 지배하지 않고, 학생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겨 수업 시간을 독점하지 않고, 학생과 교수가 말의 무게가 다르지 않고, 서로 소통하고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는 경험들이 민주주의를 탄탄히 하리라 믿는다. 이에 질문하고 경청하는 경험과 시간이 축적되어 이들이 주역이 된 미래는 지금보다 성숙한 공론장이 형성되리라 기대한다. 토론 수업을 통해 나는 그런 꿈을 꾸며 학생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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