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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세기는 백제와 신라의 '대항해 시대'
6-7세기는 백제와 신라의 '대항해 시대'
  • 이진영
  • 승인 2020.01.31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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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을 새로운 관점으로 분석한 개설서

 백제사를 비롯한 한국 고대사 분야에서 개성 있는 연구와 학설로 꾸준한 관심을 받아 온 역사학자 이도학(63) 한국전통문화대 교수의 새 연구서가 출간되었다. 980쪽에 이르는 개설서 『분석 고대한국사』(학연문화사)이다. 

 고조선부터 발해와 후삼국에 이르기까지 한국고대사 전 분야를 서술한 이 책은 기존의 통념을 깨는 지견도 다수 피력하고 있다. 일례로 한반도 최초의 고대 국가인 고조선을 흔히 건국자의 이름을 붙여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구분하는데, 이는 조선을 ‘이성계조선’이라 부르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삼국유사』에서 단군조선을 ‘왕검조선(王儉朝鮮)’이라 부른 것을 근거로 인명인 ‘단군’ 대신, 단군의 직함을 가리키는 존칭인 ‘왕검’을 붙여 쓰자고 주장한다. 같은 맥락에서 기자조선은 ‘후·왕조선(侯·王朝鮮)’, 위만조선은 ‘대왕조선(大王朝鮮)’으로 부르자는 주장이다. 또한 금석문을 비롯해 당대 상황을 기록한 사서를 근거로 현재 ‘가야(加耶)’로 표기되고 있는 국호 역시 ‘가라(加羅)’로 표기하고 있다. 가야는 타칭이지만 가라는 자칭이라는 이유에서다. 

 역사연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시대구분에 있어서도 저자는 고대-중세-근대라는 3시기 구분법을 적용함에 있어 서양사와 다른 한국사의 전개 과정을 반영해, 고대 사회의 해체와 중세 사회가 시작되는 기점을 958년(고려 광종 9년)으로 설정한다. 과거제 시행이라는 사회 지배 세력 배출 방식의 변화가 기존 골품제로 상징되는 혈연 기반의 폐쇄적 신분제 사회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과거제 실시 이후 고려사회 전반적인 기풍이 문치(文治)로 흐르면서 병마권도 문신이 장악했고, 무과(武科)는 고려 멸망 직전인 공양왕대에 가서야 시행되었다. 이러한 시대변화에 따라, 이전 시대인 통일신라 때까지는 관등을 지닌 지배층 신분이었던 기술직의 사회적 위치도 급격히 하락하였다. 통치 거점 역시 산 위에 쌓았던 산성에서 구릉이나 평지에 위치한 읍성으로 내려왔고, 성 안에 상시 거주하는 이들도 소수 지배계층에서 일반 주민으로 확대되었다. 

 

병부와 동급이던 선부(船府), 신라만의 독특한 제도

 저자는 958년부터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된 1894년까지를 중세로 규정하며 기존의 시대구분 논쟁에서 살피지 못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각론에서도 개성 있는 서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한국 역사상 6~7세기를 ‘대항해의 시대’로 명명하고, 백제와 신라가 앞다투어 동남아시아 지역과 교류하며 교역체계를 구축한 사실을 소개한다. 

 백제왕실은 귀족들에게 인도산 유리와 상아 같은 사치품과 앵무새 등 완상 동물을 수입하여 나눠주어 왕권 강화를 도모했다. 신라 역시 598년 인도와 세일론(스리랑카) 등지에 서식하는 공작 한 쌍을 왜에 선물한 기록이 있으며, 일찍부터 해양 업무를 주관하는 부서인 선부(船府)를 설치했는데 국방부에 해당하는 병부와 동급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이는 당시 중국과 일본에도 없는 신라만의 독특한 제도였다. 신라가 적극적인 해양 정책을 취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현장을 찾아다니며 직접 촬영한 희귀 사진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중국 지린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부여 여인의 도용(陶俑)이나 동복(銅鍑)은 1994년 화재로 소실되어 더는 볼 수 없게 된 자료이다. 그 외에도 몽촌토성 성문터에 비좌까지 갖추고 세워져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비석과 『삼국유사』에 당나라 장군 소정방의 피살 현장으로 기록된 문경 당교(唐橋)의 모습, 금관가야 마지막 왕으로 전해지는 구형왕과 계화왕비의 영정은 도난으로 더 이상 볼 수 없는 유물인데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저자가 방대한 범위의 한국고대사를 분석 검증한 연구서를 펴낼 수 있었던 데는 고조선부터 후삼국 시대까지 폭넓게 연구해온 평생의 역량이 바탕이 된 것으로 보인다. 25권의 단독 저서와 240여 편의 논문을 집필한 내공이 이 책의 기반이 된 것이 분명하다. 중국이나 일본의 자국 중심 역사해석에 맞서 한국사를 복원하는 일에 대한 저자의 열의와 성취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분석 고대한국사 |저자 이도학 | 학연문화사 | 페이지 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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