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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호흡한 교양강좌
함께 호흡한 교양강좌
  • 추영국 원광대
  • 승인 2003.10.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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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추영국(원광대, 생명과학부)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자신이 속해 있는 학부학과의 전공수업, 반드시 이수해야하는 교양필수 그리고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교양 선택 과목을 수강한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현재 대학의 교양수업이 그 이름값만큼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전공과목이 어려우면 전공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교양수업이 어려울 때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전공도 아닌데 왜 이렇게 어렵나, 학점도 2학점인데 굳이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라며 적잖게 짜증을 부린다. 그만큼 교양수업에 관한 학생들의 태도는 적당히 해도 되는 과목,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수할 수 있는 과목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진정한 교양수업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해 버린 지금, 제대로 된 교양수업을 위해서는 교수와 학생이 많은 노력을 해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교양수업은 전공공부에만 열중하다가 폭 넓은 학문을 둘러보기 힘든 대학생들이 다른 세상에 관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훌륭한 길라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맡고 있는 강좌는 ‘성의 과학’이라는 교양강좌로서, 되도록 위의 문제점을 최소화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성의 과학’은 학내에서 제법 인기 있는 강좌로 호응을 얻고 있는데,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 번째는 강의방식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강의에 참여하는 토론식 수업이라는 점이다. 수업의 약 1/3은 토론식이다. 첫 번째 토론 때는 모두들 익숙하지 않아서 약간 서먹해 하나 곧 적응해, 토론의 열기는 금세 강의실을 달궈버린다. 특히 지난 학기 주제 중에 대학생 동거문화에 대한 찬반토론에서는 실제 동거커플이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는 등 시종일관 진지하게 진행되어 커다란 학습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이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에게 성에 대한 문제를 이메일로 상담해 준다는 점이다. 이메일 상담은 이 강좌의 핵심 항목으로서, 임상에 대한 답변의 효율성을 기하기 위해 2003학년도부터는 현직 산부인과 병원장에게 1개 반을 부탁해 운영 중에 있다. 현직 병원장이 대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임상에 대한 궁금증, 예를 들어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한 낙태, 피임법, 월경불순 등을 상세히 상담해 주는 역할을 병행함으로써 전체 강좌의 목표달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에 다양한 시각자료를 제공해 학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교과서 내용을 가르칠 때는 2시간 강의 중 1시간은 꼭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수업으로 최신 내용을 매주 업그레이드해 특별한 필기 없이 들을 수 있는 내용으로 흥미를 유발시킨 후 나머지 1시간은 이 내용을 심화 학습한다.

 

지난 학기 강의 중 기억에 남는 상담 내용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강의 내용 중 임신 파트를 강의한 다음날, 한 여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메일이 도착했다. 요약하자면 “교수님. 저는 선천적으로 자궁이 기형이어서 의사 선생님이 아기를 가질 수 없답니다. 교수님. 저는 현재 사랑하는 사람이 있답니다. 그런데 앞으로 결혼을 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때로는 제 몸을 생각하면 죽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해요. 교수님의 조언을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틀간에 걸쳐 그 학생의 입장이 되어 고뇌한 후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그 후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답장이 왔다. “교수님의 조언을 듣고 제가 그동안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저보다 더 고통 받는 많은 이들을 위해 봉사도 하고 밝은 미래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 순간 안도와 함께, 가슴 한 켠에 밀려왔던 그 안타까움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고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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