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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과 에밀레종 사이에서
성덕대왕신종과 에밀레종 사이에서
  • 교수신문
  • 승인 2020.01.21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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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찬희박물관연구소 소장
성덕대왕신종

국립중앙박물관과 더불어 국립경주박물관은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박물관 가운데 한곳이다. 적어도 학교를 다니면서 한두 번은 가봤을 경주 수학여행이나 가족 여행에서 이곳은 빼놓지 않고 들리는 필수 코스다. 천년 신라의 수도 경주를 대표하는 이곳에는 전시관마다 그동안 들어왔던 역사적인 유물과 눈길을 사로잡는 명품들이 곳곳에 자리 잡았다. 야외전시장은 또 어떤가. 걸음걸음마다 입을 다물지 못할 유물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이중에서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유물이 신라를 대표하는 성덕대왕신종(국보 29호)이다. 이 종은 박물관 정문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듬직한 시멘트 한옥 건물에 있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전시관에 들어서기 전 먼저 이곳으로 발걸음을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종을 발견한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말을 한다. “에밀레종이다!” 만약 같이 온 아이가 에밀레종의 유래를 모른다면 친절하게 알려준다. 

“종을 만들다 계속 실패해서 시주받은 아이를 쇳물에 넣어서 완성했어. 그런데 종이 울릴 때마다 아이가 엄마를 원망해서 “에미죄 에미죄”해서 에밀레종이래. 가슴 아프지.” 

이 종의 공식 이름은 성덕대왕신종이며 역사책에서도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곳에 온 사람들, 혹은 이곳에 오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성덕대왕신종보다는 에밀레종으로 부른다. 

공식 이름보다 별칭이 더 널리 알려져서인지 일부 연구자들은 에밀레종 대신 성덕대왕신종이라는 공식 이름을 널리 써야 한다고 힘써 강조한다. 자비를 베풀고 생명을 중요시하는 불교에서 사람을, 그것도 아이를 희생시켜 종을 만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불교를 폄훼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가 일제 강점기 때 책에 실리면서 사실처럼 알려졌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우리나라를 폄하하기위한 일제의 의도가 깔렸다는 것이다. 한편 종을 완성한 혜공왕이 어머니 만월부인에 의해 허수아비 신세가 된 당시 정치 상황을 빗댄 이야기라고도 말한다. 

이러한 설득력 있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왜 성덕대왕신종보다 에밀레종으로 자주 불리는 것일까? 성덕대왕신종이라는 말에는 객관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에밀레종이라는 말에는 전설과 결부된 애틋하고 안타깝고 가슴 아픈 마음이 묻어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보냈던 엄마의 심정, 쇳물에 던져지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면 저절로 고개를 흔들게 된다. 또한 수십 년간 실패하면서도 최고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무서운 집념을 읽는다. 명작이 탄생하기까지 겪는 고난극복과 마지막에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초인적인 도움을 받는다는 전형적인 이야기의 구조가 이 전설에도 그대로 담겼다. 성덕대왕신종에는 없고 에밀레종에는 있는 사람을 사로잡는 극적 요소들이다.

눈앞에 극적인 전설을 증명할 증거물이 있다면 꽤 설득력이 높아진다. 게다가 그 증거가 시대를 뛰어넘는 최고의 명작이라면 전설은 사실성이나 의도성의 문제를 떠나 더욱 강력해진다. 명작의 역설이다. 미술을 잘 알든 그렇지 않든 성덕대왕신종을 본 사람이라면 한순간에 거대한 종의 크기에 압도당해 마치 전설을 눈앞에서 만난 듯한 기분이다. 그렇다고 크기만 큰 건 아니다. 균형 잡힌 몸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용, 방금 하늘에서 날아 내려온 듯한 비천상을 보고 있으면 말하지 않아도 이 종이 왜 명작인지를 저절로 알게 된다.

‘당시에 어떻게 이런 종을 만들 수 있었을까? 과학이 고도로 발전한 오늘날에도 만들기 어려울 것 같은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 이 종이 더욱 놀랍다. 또한 이 종의 비밀을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고군분투기와 그들이 들려주는 깜짝 놀랄 이야기가 떠오르면 이 종이 더욱 신비로워 보인다. 

과학자들이 오랜 기간 애쓰고 실험한 끝에 밝혀낸 성덕대왕신종의 비밀은 이렇다. 중국종이나 일본종에는 없는 장치가 음통이다. 음통은 종의 가장 윗부분에 달린 대나무모양의 길이 77㎝ 정도인 동그란 관이다. 겉모습은 원통이지만 내부는 아래가 좁고 위가 넓은 나팔형이다. 연구 결과 고주파는 빨리 밖으로 빼내고 저주파는 종 안에 남도록 만들어 더욱 좋은 종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성덕대왕신종 용뉴와 음통
성덕대왕신종 용뉴와 음통

종 아랫부분을 살펴보면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가 보인다. 당좌는 적은 힘으로 쳐도 소리가 잘 울리고 종에 미치는 충격이 최대한 적은 곳에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이 종의 당좌 부분이 정확히 그 지점에 위치한다. 지금 성덕대왕신종은 더 이상 타종을 하지 않지만 처음 만들어진 771년 이후 천 이백여년 동안 종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건 당좌의 위치를 정확하게 설정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현대 과학으로도 어렵사리 비밀을 찾아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성덕대왕신종 전설을 더욱 그럴듯하게 만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건 종소리다. 이 소리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며 다른 나라의 뛰어난 종을 제치고 이 종을 세계적인 종으로 만들었다. 또한 에밀레종 전설을 더욱 그럴 듯하게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성덕대왕신종은 종을 쳤을 때 처음에는 크고 작은 50여 가지 소리가 뒤섞여 난다. 그러다가 신기하게 다른 소리는 사라지고 두 가지 소리만 남는데 이 두 소리가 비밀의 주역이다. 1초에 64번 떨리는 64㎐와 1초에 168번 떨리는 168㎐다. 64㎐는 64.06Hz와 64.38Hz 두 쌍으로 이루어져 서로 영향을 주어 소리가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하는데 그 현상이 3초마다 반복된다. 그때 나는 소리가 “허억 허억.”거리는 낮은 숨소리 같다고 한다. 168㎐는 168.31Hz와 168.44Hz로 이루어졌는데 커지고 작아지는 현상이 9초마다 반복된다. 이때는 “어엉 어엉”하고 우는 어린 아이 울음 같은 소리가 난다고 한다. 

성덕대왕신종 비천상
성덕대왕신종 비천상

소리가 주기적으로 작아지고 커지는 현상을 맥놀이 현상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맥놀이 현상이 종이 비대칭이기 때문에 생긴다고 말한다. 즉 종의 두께, 밀도, 문양의 배치가 같지 않아 서로 다른 소리가 발생한다는 것으로 성덕대왕신종의 내부에 의도적으로 쇠를 덧붙인 흔적 역시 맥놀이를 의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의도적인 종의 비대칭성이 맥놀이의 핵심이었다.

맥놀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해명한 시대에도 우는 듯한 종소리는 전설에 등장하는 “에밀레, 에미죄, 에미혀”라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다. 조상들은 맥놀이에 의한 종소리를 어떻게 들었을까?

“원각사종은 다만 종의 몸체가 클 뿐만 아니라 그 소리도 몹시 울려서 흔들리고 끊겼다 이어졌다 하므로, 민간에서는 떠들썩하게 상서롭지 못하다고 하니, 비록 근거는 없지만 인심(人心)이 요사스러움을 일으키게 되니 국가의 일이 한가한 때를 기다려 고쳐 주조(鑄造)하소서.”

조선 세조 때 만든 원각사종의 소리를 두고 신하들이 성종에게 아뢴 내용이다. 불교 신자였던 세조의 시대가 끝나고 그의 손자 성종의 시대가 되자 원각사 종소리는 그만 상서롭지 못한 소리로 변했다. 같은 종소리라도 받아들이는 입장에 따라 다른 소리로 들린다. 마찬가지로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가 끊어질듯 이어지는 아이 울음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전설과 결부되어 에밀레종 전설을 더욱 그럴 듯하게 만들었다.

에밀레종 전설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에밀레종에서 성덕대왕신종으로 가려면 극적인 요소와 눈앞의 증거가 맥놀이 현상처럼 증폭시킨 전설과 과학의 시대에도 전설에 솔깃해지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고개를 넘어가야 한다. 비록 불순한 의도로 전설이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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