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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식을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하여
자기만의 방식을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하여
  • 교수신문
  • 승인 2020.01.20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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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천쓰이 |역자 김동민 |글항아리 |페이지 348

명색이 출판평론가지만 읽고 쓰는 책은 특정 장르에 국한될 때가 많다. 주로 ‘인문’ 관련 책들인데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은, 젠체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게다. 당연히 고전(古典)에 눈길이 가고, 역사 관련 책들도 제법 읽는다. 선인(先人)들의 빛난 정신의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고 토를 달면서 말이다. 읽은 책들의 금과옥조같은 말들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의 비판적 지성 천쓰이(陳四益)는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에서 제아무리 고전이라고 해도 “생활의 변화나 인생의 변화, 사회의 변화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다면 고전이든 역사서든 ‘읽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성인(聖人)들의 책을 읽는 것은 사실 두려운 일이다. “무슨 말이든 옳고, 하는 말마다 구구절절 진리”이기 때문에 내심 무릎을 꿇고 읽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런데 저자는 무릎 꿇는 순간 “죽은 독서”라고 일갈한다. “책을 읽는 것은 대화를 나누는 것”인데, 그 순간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지는 않았지만, 나는 공자님 말씀만 읊조리며 죽은 독서를 해왔던 것은 아닐까. 저자는 말한다. “경전 주석서들이 정통이라고 자부하든 말든 내버려 두고, 우리 스스로 안목을 넓혀 원래의 경전을 읽고 도대체 ‘진짜 경전이 무엇인지 직접 한번 보는 것이다.”

중국은 문화 전통을 계승하고, 문화의 깊이를 더하고, 도덕의 수준을 높이고, 언어의 능력을 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초등학생들도 <사서오경>을 읽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저자는 “오늘날 초등학생이 사서오경을 읽어야 한다고 제창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는 읽어본 적이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며 경전을 어린이들에게 강요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옛날 어린이들은 읽었으니 지금 어린이들도 읽어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에 가깝다. “옛날과 지금은 말이 달라, 생동감 넘치는 현대어를 구사하는 과정에서 이미 죽은 책 속의 이러한 언어는 그 쓸모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도 다르지 않다. 고전이라면 무작정 읽어야 한다는 주장도 주장이지만, 그 뜻은 도외시하고 입시에 나온다며 각종 고전을 난도질해 만든 책이 한두 권이 아니다. 고전의 진리를 “해체적 독법”으로 읽는 것만이 고전을 고전되게 한다. 

한편 천쓰이는 ‘『사고전서』 편찬의 진실’이라는 글에서 청나라 건륭제의 문화융성 사업의 허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무려 61년 동안 재위에 있었던 건륭제는 전 3,503부 79,337권에 달하는 방대한 총서 <사고전서>를 편찬했다. 중국 문화의 르네상스라고 평가받는, 역사에 길이 남은 업적이었다. 하지만 건륭제는 재위기간 중 평균 5개월에 한 번 문자옥(文字獄)을 일으켰다. “옛일을 연구하고 학문을 숭상한다”는 구호 아래 전국에서 수많은 장서를 북경으로 끌어모았다. 하지만 청조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문헌들은 불태워졌고, 그 책을 쓴 사람들은 효수되었다. <사고전서>를 편찬한 이면에는 검열을 통해 불태울 책과 요주의 인물을 찾아내기 위한 방편이었다. 천쓰이는 몇몇 사례를 들어 역사 진실을 “재구성”해서 읽어야만 당대와 오늘에 이른 함의를 알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천쓰이는 독서의 어려움이 “글자의 뜻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은 시대의 간극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청나라 당시 “원서를 대강 삭제하거나 고쳐서 황제의 입맛에 맞도록 만든 일”은 부지기수였다. “어떤 때에는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들고자 삭제하거나 고친 부분을 짜깁기하여 글 수도 모두 같게 만들었다.” 모두 권세자들에게 빌붙어 한줌 권력이라도 휘둘러보고자 했던 학자들이 한 일이었다. 천쓰이는 이런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학자들은 “유독 책이 믿을 만해야 한다는 점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네들이 학자는 아니지만,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의 작가들은 자기 책이 “믿을 만해야 한다”는 명제를 충족시키고 있는가를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저자는 책을 읽는 자들에게 “삼불(三不)의 독서법”을 제안한다. “죽도록 책만 읽거나(死讀書), 죽은 책을 읽거나(讀死書), 책만 읽다가 죽지(讀書死) 마라.” 명색이 출판평론가니 죽도록 책만 읽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 줄의 경구와 그 해석에만 집착한 독서, 죽은 책을 읽어 왔다. 그리고 누가 말리지 않는 한, 책만 읽다가 죽을 판이다. 알고 보면 새로운 독서법은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방법이 최고의 방법이다. 다만 옛사람의 말을 읊조리는데 그치지 말고 자기만의 생각을 살짝이라도 얹어 놓는 일, 그것만은 잊지 말아야 한다.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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