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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 사설미술관 큐레이터의 세계
흐름 : 사설미술관 큐레이터의 세계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10.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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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과잉에 박봉, '잡예사' 탄식...전문 교육제도 필요

우리사회에서 큐레이터의 자화상이 ‘고학력 막일꾼’으로 그려지고 있다. 각종 기획전시와 신진작가 발굴이라는 막대한 역할을 하는 전문직종의 하나인 큐레이터가 실상은 전혀 이에 부합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다는 ‘悲報’가 전해져온다.

일반적으로 큐레이터는 전시기획과 작가 발굴, 작품과 자료수집, 작품보존과 디스플레이, 홍보, 교육, 스폰서 섭외 등을 총망라하는 전시의 지휘자이자 예술 총감독이다. 하지만 현장의 큐레이터들은 “예산기안, 보고서 작성, 커피심부름과 전시관 청소, 홍보자료 돌리기 등 허드렛일까지 떠맡아야 한다”며 자신들을 ‘잡예사’로 부르는 등 자괴감에 빠져있다.

이는 사설미술관이나 화랑의 큐레이터직이 대개 비정규직이란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임금 수준도 천차만별인데 많은 큐레이터가 초봉을 1백만원도 안되는 수준에서 협상되는 등 고질적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보너스나 퇴직금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 게 일반화되고 있다.

어떻게 하다가 큐레이터의 위상이 여기까지 왔을까. 원인은 공급 과잉이라는 예술계 특유의 비정상적 인력수급구조에서 먼저 발견된다. 채용풍경을 보면 ‘시켜주는 것만 해도 고마워해라’라는 게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쪽에서 활동한지 벌써 8년째를 접어들었지만 너무 불안정하고 체계적이지 못한 직책이다”, “이름만 번듯하다”, “큐레이터 지망생들에게 다른 길을 권유하고 싶다”라는 현 큐레이터 종사자들의 말은 이런 환경을 수용할 지라도 “전망의 불투명”이라는 결정타를 맞게 된다는 불만이다.

화랑의 운영자들은 ‘시장침체’를 내세운다. 화랑은 국공립 미술관과 달리 영리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미술시장이 불황일 경우 큐레이터들에게 전문직에 걸맞은 대우를 해준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한해에만 여러 곳의 화랑들이 문을 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때문에 오히려 ‘큐레이터들이 그림을 잘 팔지 못 한다’라고 마케팅 능력 부재를 윽박지르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동전의 양면 격으로 제기되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내에 제대로 된 큐레이터가 얼마나 되는가라는 점이다. 큐레이터란 학위나 자격증만으로 되는 기능직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에서 큐레이터 관련학부로는 동덕여대, 경기대, 조선대, 한서대가, 대학원은 중앙대와 홍익대, 경희대, 미술관은 국립현대와 삼성미술관 정도가 큐레이터 전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장동광 숙명여대 겸임교수(예술학?인디펜던트 큐레이터)는 “현재 국내 몇몇 큐레이터 관련학과나 대학원 커리큘럼에서는 미술사적 지식 뿐 아니라 역사?문학?사회학 등의 인문학적 지식을 쌓기에는 매우 부족하기에, 실전에서 큐레이터들의 전시기획이나 개념들이 획일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라며 결국 제대로 된 큐레이터들을 키워낼 교육제도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뛰어난 큐레이터 없이 양질의 미술문화는 상상할 수 없다. 외국의 경우 전문적인 큐레이터가 2-3년에 걸쳐 준비한 기획전시는 하나의 중요한 예술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관련도록은 학술적으로 뛰어난 논문들을 수록함으로써, 큐레이터의 연구성과물로 인정받는 제도까지 갖추고 있다. 대중을 겨냥한 교양 기획전시가 요즘처럼 활발한 때가 없다. 전시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그 전시의 꽃이라 하는 큐레이터를 우리 사회가 잘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
이은혜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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