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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화와 현실
전쟁영화와 현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1.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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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동국대 교수)
정재형(동국대 교수)

영화 <미드웨이 Midway>(2019, 롤란트 에머리히)를 보면 지난 이차대전의 시기가 얼마나 엄혹했던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편에 해당하는 <진주만 Pearl Harbor>(2001, 마이클 베이)을 보면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청춘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1920년생이셨다. 진주만 폭격이 있던 1941년 아버지의 연세는 21살이었고 대학생이었다. 영화속에도 아버지 나이때의 미국 청년들이 군대에 징집되어 전쟁을 경험한다. 영화속의 그들을 보면서 문득 피끓는 청년이었던 아버지와 그 세대를 떠올리며 아버지의 삶과 나의 삶이 결국은 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청춘은 저마다 외롭고 괴롭고 시련을 겪는 것이다. 혼란한 대학생활을 보냈던 나를 중첩시켰고 그보다 더한 전쟁의 시절을 보냈던 아버지 세대들을 새삼 경탄스럽게 회상하게 되었다. 

<진주만>의 후편에 해당하는 <미드웨이>를 보면서 철학자 싸르트르의 유명한 글귀가 떠올랐다.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 전쟁상황속에서 인간의 존엄이나 인격 따위는 성립하지 않는다. 도덕, 양심, 철학, 이념도 존재하지 않는다.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비행편대의 모습을 지켜보노라면 전쟁에 주어진 인간의 삶 자체는 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한 삶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대로 실존주의의 교훈이다. 세상은 부조리한 것이고 비논리적이고 인간은 그곳에 아무 이유 없이 던져져 있다. 허망하게 죽는다는 사실앞에서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어쩌면 미국이 일본에게 질 뻔한 미드웨이 해전에서 꽃다운 나이의 미군청년병사들이 취할수 있는 행동은 조국을 위해 값지게 죽자라는 구호와 행동밖에 없다. 가미가제 전법을 일본만 쓴 줄 알았는데 미군이 일본의 전함에 폭탄을 투하하기 위해 급강하하여 뛰어드는 행동은 미국식 가미가제 아니고는 설명이 안된다.

미학자 수잔 손탁(Susan Sontag)은 히틀러 당시의 파시즘을 설명하면서 파시즘 미학이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죽음을 숭고히 찬양하는 미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드웨이>를 보고 나서 난 그것에 동의하기 어려워졌다. 그건 파시즘 미학이 아니라 전쟁에 참전한 모든 나라의 공통된 미학이다. 죽을 걸 알고 뛰어든 미군병사들은 가미가제가 아니더라도 심정은 다를바 없다.

현재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본부와 학과 간의 구조조정 갈등이 전쟁상황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대학본부는 구조조정 정책을 들고 나와 교수와 학생들을 설득시키지만 대치상황만 이어진다. 지성인의 전당에서 왜 이런 식의 대립이 발생할까 의아해진다. 교육부와 정치권에서 조건을 숙성시키고 대학본부가 무지비하게 행하는 구조조정은 전쟁을 방불케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풀어야 할 일을 마치 명령과 복종식으로 풀려고 하니 안되는 건 너무 당연하다.

현재 대학본부가 내세우는 개혁의 가치는 정부의 시책에 발맞추어 모두 다 4차산업혁명이다. 그 주제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2021학년도 수능시험에서 수학출제범위중 기하, 벡터 부분이 제외되었고 대학의 구조조정으로 인문사회계가 고사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쪽으로는 4차산업혁명을 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그것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다. 관련성이 깊은 수학분야와 인문학이 빠진 4차산업혁명이 온전히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건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나 대학본부가 행하는 이 모든 사려깊지 않은 정책적 판단들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일상을 전쟁상황으로 보고 그저 성과달성식으로 밀어붙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쟁상황은 불가피한 전쟁외엔 없어야 한다. 일상에선 대화를 하고 끝이 안 나면 그래도 또 끝날 때까지 해야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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