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하늘에 자동차가 날아다니던 미래는 막연히 서기 2020년 즈음이라 생각했다. 어느덧 그림 속의 배경이었던 2020년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며 올해의 계획을 세우고 있던 새해 첫 날, 연구재단으로부터 이 글의 기고를 요청하는 연락을 받았다.
무슨 내용으로 써야하나 생각하면서 어느새 만 나이로도 40이 넘게 된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도 공부를 잘한 덕에 인생을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고, 인생의 꿈이었던 교수가 된 지 2년째이다. 이런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박사후연수연구원 5년 차부터 조교수로 임용이 되기까지였다. 내가 원하는 곳에 임용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다른 많은 연구자에게도 이때가 가장 힘든 기간일 것이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서 박사후연수연구원으로서 연구를 5년 쯤 했을 때, 함께 공부하던 남편이 먼저 한국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때 나는 괜찮은 저널에 논문 한 편을 revision 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미국에서 연구를 하면서 낳은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직 한국에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 교수직에 지원을 해야 할지, 미국에 남아 연구를 더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무엇이 나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최선일지 고민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던 선배 언니에게서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에 지원해보라는 조언을 받았다.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은 한국연구재단의 학문후속세대 양성사업의 한 가지로서, 연구 역량이 우수한 박사후연구원이 선도연구자, 대학교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연구과제이다. 5년 동안 박사후연구원에게 본인의 인건비를 포함한 연구비를 지원해주고, 대학교나 연구소에 임용되더라도 유지할 수 있는 연구과제이다. 그래서, 고용이 불안정할 수 있는 박사후연구원이 안정적으로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주며, 신임교원이 되어서도 신속하게 연구실을 셋팅하고 지속적으로 연구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박사후연구원을 마무리하고 자리를 잡아야 했던 나에게 딱 필요한 펠로우쉽이었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하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과연 내가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열심히 연구계획서를 쓰고 발표 준비를 한 덕분이었는지, 그해 생명과학 분야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 수혜자로서 선정되었다.
덕분에 한국에 들어와 독립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고 임용 준비도 함께 할 수 있었다. 가족들끼리 떨어져 살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정말 다행인 일이었다. 최종 임용되기까지 쉽지는 않았지만, 임용이 되어서는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을 수행하면서 확보한 연구 재료와 결과들 덕분에 빠르게 연구실을 꾸리고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정말 내게는 보물과도 같은 연구과제였다.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 수여식 때 만나 친해지게 된 다른 선정자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몇 년 전부터는 더 이상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을 신규 선정하지 않고 있다. 정말 아쉬운 점이다. 연구재단에서는 생애주기별로 연구자들을 지원해주고 있는데, 이렇게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에 상응하는 연구과제를 다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20년으로서 나의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은 끝이 난다. 정말로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이 없었다면, 나는 교수의 꿈을 접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대통령 Post-Doc. 펠로우쉽을 받은 덕분에 지금 안정적으로 연구실을 구축하고 신임교수로서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좋은 기회를 주었던 연구 재단에 이 글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연구자의 꿈을 지원해주는 든든한 기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