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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하는 법
포스트휴먼 시대를 맞이하는 법
  • 교수신문
  • 승인 2020.01.0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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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동국대 교수)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류 이세돌. 그가 은퇴를 하면서 다시 인공지능 한돌과 대결했다. 역시 알파고  때와 같이 1승만을 기록하며 위대한 인간 이세돌은 바둑계에서 사라졌다. 인공지능과 이세돌의 격돌은 누가 이길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두 번의 경험을 경유하면서 그 호기심은 사라지고 대신 새로운 관심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인간과 인간의 대결 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 일상화되었다는 것. 이제 프로바둑기사들끼리 두는 바둑은 시시하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이 그 자리를 대체해 나간다. 모든 사회분야가 그런 식으로 변해갈 것이다. 

소위 포스트휴먼(post-human)시대가 되었다. 머지않아 인간과 인공지능의 구별도 할수 없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친숙함이 조금씩 다가온다. 미래 사회에 인간과 기계가 공존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적나라하게 예견한 영화의 효시는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Space Odyssey>(1968)다. 이어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1982)가 그 뒤를 이었다. 작년에 그 속편이 나올 정도로 다시 그 영화는 미래세계의 화두가 되어간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는 우주선안에 탑재된 인공지능의 고장으로 인간이 폐기하려 하자 그에 저항하는 프로그램이 작동하여 인간을 살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일이 진짜 발생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공지능을 설계하니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초기의 생각이다. 인공지능기술이 발달한 지금 컴퓨터가 딮러닝(deep learning)을 한다. 딮러닝은 인간이 부여한 지식을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므로 인간이 부여한 지식 이상의 학습을 한다. 초기의 인공지능은 인간이 부여한 지식의 범주에서만 학습하고 그 결과만을 보여줬으나 지금은 부여한 지식을 훨씬 초월하는 지식을 발휘하므로 인간도 그 수준을 알수 없다. 영화가 나왔던 1968년의 기술수준으로는 공상과학이었지만 지금 딮러닝의 기술수준으로 보면 인간에게 피해를 주는 일도 가능한 일이 되어 간다. 

지금 같은 추세로 인공지능이 더 발달해가면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묘사하듯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는 없어진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인간 보다 더 높은 지능을 소유한다 할 때 인간의 입장에서 위기의식이 다가올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인간의 지배를 벗어나 독자노선을 걷고자 저항한다면 말이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인간이 애초에 인공지능을 만든 이유는 그들을 존경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만든 것이 아니라 농경사회의 노예를 대체한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도 없이 일만 하는 존재다.  

하지만 그들이 인간보다 수월한 지능을 소유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인간을 둘러싼 모든 타자 생명 가운데 가장 오만한 인간이 아이러니하게도 지능을 소유한 기계노예들에게 당할 지도 모른다. 포스트휴먼시대의 인문학은 그 지점에서 철학적 성찰을 한다. 우주안에서 인간만이 지능을 소유한 유일한 존재일까? 현대 천제물리학이 증명하고 있는 위대한 생각 중 하나는 우주 안에 인간만이 유일한 생명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우주안에는 인간보다 더 우수한 지능이 존재한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종래의 인간주의(humanism)의 종언이다. 먼 훗날 생각하면 어쩌면 지금의 시간은 긴 인간의 역사에서 중세에 해당할 지도 모른다. 지구 중심설에 반대했던 코페르니쿠스, 부르노, 갈릴레이 같은 학자들이 처참하게 처형되거나 구금되었던 흑역사가 있지 않았나. 지금 시기가 그런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의 시기인지도 모른다. 인문학은 4차산업혁명시기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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