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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죽음에 담긴 의미를 찾는 에밀 졸라의 실험
결혼과 죽음에 담긴 의미를 찾는 에밀 졸라의 실험
  • 교수신문
  • 승인 2019.12.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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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에밀 졸라 | 역자 이선주 | 정은문고 | 페이지 160

결혼이란 얼마나 야릇한 제도인가. 인류를 두 진영으로 나누어 한쪽엔 남자, 다른 한쪽엔 여자를 배치해서 각 진영을 무장시키고는 이제 그들을 합류시키며 “평화롭게 살아보라!”니.

<목로주점>으로 유명한 작가 에밀 졸라가 1893년 출간한 단편 <결혼> 서문에 등장하는 말이다.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을 나눠 각각의 결혼 생활을 통해 ‘결혼’이라는 제도가 당대에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살핀 작품이다. 에밀 졸라가 보기에 19세기 말 남자는 “사랑할 시간”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좋은 말로는 “현대적 활동에 제각기 그들의 일 부 일 초까지 헌신하는 노동자들”이고, 시쳇말로는 “사회라는 한창 가동 중인 거대한 기계 속에 완전히 발목이 잡혀버린” 존재들, 즉 자본주의의 노예들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는 “어머니 곁에서 가정교육 잘 받은 여성이 알아야 할 것”, 이를 테면 “정치성이 배제된 문학과 역사, 그리고 신앙, 셈, 그 외에도 피아노, 무도회 춤, 풍경 그리기 등”을 배우는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보면 귀족이든 부르주아든, 상인이나 서민에 상관없이, 한마디로 남자와 여자가 ‘접점’이 없다. 그럼에도 때가 되면 “두 개의 다른 세상이 피할 수 없는 충격을 예견”하면서도 모두가 결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제껏 자신을 드러낸 적 없는 비밀 속으로, 생활 속으로, 사랑 속으로 갑자기 내동댕이쳐진다.”

오늘 우리 사회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에밀 졸라가 말한 결혼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여성성에 대한 교육 아닌 교육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르다면 여자도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지 오래라는 점 뿐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시대는, 자본주의가 세워놓은 토대 위에서 극단의 양극화를 경험하고 있고, 숱한 젊음은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마저 포기하는 시대다. 에밀 졸라가 말한 결혼관은 모양만 조금 변했을 뿐, 우리 곁에서도 그래도 답습되고 있다. 100년도 더 지난 오늘 우리에게는 또 어떤 함의를 지니는지를 살필 수 있는 소설이 바로 <결혼>이다. 

에밀 졸라는 1883년 출간한 단편 <죽음>에서도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을 나눠 각각의 죽음을 묘사한다. 다른 점은 ‘농민’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그는 각 계층의 죽음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귀족 남편이 죽어가지만, 결혼이 그러했듯, 평생 따로 살아온 귀족 부인은 동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혼생활 내내 창백했던 얼굴은 장례를 마치고부터 “차츰차츰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19세기 말 부르주아의 죽음은 21세기 어떤 이들의 죽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죽어가면서도 남편이 남긴 재산, 기실 자신의 것인 그 많은 것들을 놓지 못하는 엄마. 그리고 어떻게든 엄마의 재산을 손에 넣으려는 세 아들. 극단적인 묘사라고 타박할 사람도 있겠지만, 손 안의 세상 스마트폰에서 종종 튀어나오는 뉴스 아니던가.

서민의 아들 열 살 샤를로의 죽음은, 예상하듯 슬프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아빠와 세탁 일을 하는 엄마는 샤를로의 죽음을 쳐다보아야만 할 뿐,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주변 몇 사람, 역시 가난한 이들이 십시일반 돕긴 했지만, 샤를로는 변변한 치료 한 번 받지 못했다. 반면 가난한 것은 샤를로네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일흔 살의 농민 장 루이의 죽음은 나름 편안했다. “소박하고 아담한 집”에서 살았고, “끼니는 때울 정도의 땅덩어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일평생 그 작은 땅덩어리 하나를 얻기 위해 “아주 힘들게 일해야만 했”지만 말이다. 장 루이는 오랜 친우인 니콜라와 말없이 눈빛만으로 많은 대화를 나누며, 힘들었지만 돌아보면 아름다웠을 옛일을 추억하며 세상을 떠났다. 장 루이는 “평안한 휴식”에 들어갔고, 남은 가족들은 동요하지 않았고, 여전히 농사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결혼이 그렇듯, 죽음도 19세기와 21세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애써 외면하고, 어떤 부류는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해 마지막 숨을 들이마실 때까지 노심초사한다. 가난은 여전히 죽음을 곁에 두고 있다. 여러 사회 계층의 결혼과 죽음을 들여다보며 에밀 졸라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회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사랑과 결혼, 죽음은 아주 개인적일 수밖에 없으며, 동시에 사회적이다. 사회와 계층, 그 속에 자리 잡은 한 개인의 삶, 그 영욕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에밀 졸라의 실험적 소설 <결혼, 죽음>도 적절한 선택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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