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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 My Book] 인권을 유린하는 반인륜 범죄는 반드시 단죄되어야 한다.
[My Life My Book] 인권을 유린하는 반인륜 범죄는 반드시 단죄되어야 한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12.1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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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필립 샌즈 저/정철승·황문주 역 | 더봄 | 페이지 632

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는 인상적인 장면 하나. 지난 12월 6일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방문한 독일 총리 메르켈은 유대인들이 처형당한 죽음의 벽앞에 묵념하며 나치 독일이 자행한 범죄의 기억은 끝나지 않는 국가적 책임으로 국가 정체성의 일부라 역설했다. 이와 대조적인 또 다른 사실 하나. 강제징용, 위안부 성노예와 같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같은 전범국임에도 일본 총리 아베는 반성과 사과는커녕 국가적 범죄를 부인하고 적반하장으로 전범재판에 대한 경제보복을 일삼고 있다. 대조적인 두 장면은 반인륜적 인권 범죄의 아픈 기억은 최소한 우리에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란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이와 더불어 최근 세계적으로 외국인, 여성, 아동 등 약자에게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는 인종주의, 혐오범죄와 개인에 대한 집단의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극우보수화 흐름 속에서 국가적으로 자행되는 반인륜, 반인권 범죄에 대한 시의적절한 경각심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필립 샌즈의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는 정의를 다루는 법조인뿐 아니라 지식인, 민주 시민들이 읽어봄직한 필독서라 추천한다. 

6백 페이지가 넘는 책의 볼륨에 질려 읽을 엄두조차 내기 두려운 사람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이 책은 저자가 ‘탐정소설’이라 명명한 데서 알 수 있듯이, 2차 세계대전을 둘러싼 한 가족의 슬픈 가족사와 국가적으로 자행되는 반인륜적 인권범죄를 처벌할 근거법이 만들어지는 생생한 과정을 기록한 흥미진진한 논픽션 스토리북이라 술술 읽힌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책 제목에서 이런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책 제목으로만 보면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던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법·정치철학류의 책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인 저자의 외할아버지 가족에 대한 회고록이자 인권과 정의에 대한 개념이 탄생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둘러싼 국제정치 논픽션, 유대인 학살을 명령한 전범들을 단죄하기 위한 두 변호사의 법정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이 책의 중요한 가치는 고전적 국제법 원칙인 국가면책 이론에 따라 반인륜 범죄를 처벌할 수 없다는 기존의 국제형사법 원칙을 깨고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이름 뒤에 숨어 반인륜적 만행을 저지른 개인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정치철학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이 바로 ‘집단살해죄(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한 죄’이다. 이 재판을 계기로 1998년 국제간 분쟁으로 발생한 반인륜 범죄를 처벌할 국제형사재판소가 상설적으로 설립돼 유고, 르완다에서 자행된 국가적 인권범죄와 최근에는 보스니아 내전 등 반인권적 전범을 처벌할 수 있었다.

김선진 교수(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김선진 교수(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이 책을 추천하는 또 다른 이유 하나는 바로 저자와 역자가 가진 전문성과 개인적 가족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메시지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필립 샌즈는 저명한 국제인권법 권위자이자 인권 변호사로서 유대인으로 학살당한 슬픈 가족사를 직접 발로 찾아 기록하였다. 또한 번역자인 정철승 변호사는 독립운동가 윤기섭 선생(독립군 양성학교인 신흥무관학교 교장)의 외손자이자 독립유공자단체인 광복회와 사단법인 민족 문제연구소 고문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친일파 후손들의 재산 환수 소송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역자인 정변호사가 이 책을 번역하려고 한 이유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책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저지른 수많은 인권 유린과 착취, 학살과 폭력은 집단살해죄나 인도에 반한 죄로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새삼 직시하게 한다.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후 일본의 반인륜 범죄에 대한 국제법적 처벌은 물론이고, 1947년 제주 4.3 양민학살, 1980년 5.18 광주학살 등 국내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 문제 역시 단순 국내형법 차원만이 아니라 소멸시효가 없는 국제형사법적 규정을 근거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철저히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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