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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번역과 학습자: “저희보다 파파고가 훨씬 똑똑해요” 
기계번역과 학습자: “저희보다 파파고가 훨씬 똑똑해요” 
  • 허정윤
  • 승인 2019.12.01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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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미국에 있는 친구가 페이스북에 어린아이들이 아마존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AI) 알렉사 (Alexa) 흉내를 내며 놀고 있는 동영상을 올렸다. 동영상에서 한 아이가 명령어를 외치면 다른 아이가 알렉사가 되어 응답하고 명령을 실행하면서 대화와 놀이를 이어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온갖 스마트기기에 둘러싸여 인공지능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미래는 지금과 또 어떻게 다를지 상상하기 어렵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과 인터넷 보급으로 인해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가상현실, 빅데이터 등은 여러 분야의 관심사와 주제가 되어 여러 학회와 논문의 키워드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러한 기술발전은 외국어 교육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웹 기반 또는 모바일 기반의 다양한 정보와 기술은 교실 안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계 번역기가 일상생활과 외국어학습과정에 쉽게 이용됨에 따라 번역기의 교육적인 활용방안과 학습법에 관한 연구들이 생겨나고 있다. 번역기 사용에 대한 학습자 인식과 태도에 관한 연구에서는 학습자들이 번역기의 오류와 한계점을 인식하고 있는 동시에 교수자가 사용을 금해도 외국어 학습 시 번역기를 빈번하게 사용한다는 결과를 보였다.

 대학영어 글쓰기 수업을 가르칠 때였다. 여럿이서 같이 영작을 하는 그룹 활동을 할 때 학생들이 문단을 한글로 같이 작성한 후 문장을 몇 개씩 나누어 파파고 번역기를 돌리고 번역된 문장을 그대로 적어서 활동을 마무리 짓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한 학생은 “저희보다 파파고가 훨씬 똑똑해요,” 하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번역기 사용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진 나는 번역기 사용에 대한 특강을 하며 학생들에게 무분별한 번역기 사용에 대한 주의를 주었지만 번역기 “냄새”가 나는 과제들을 그 이후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외국어 교육에서 학습자의 번역기 사용은 거의 불가피한 현상이기에 번역기를 무조건 금하기보다 교육적인 도구로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이 더욱더 연구되어야 한다. 번역기 사용이 상위 언어 능력을 높이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자로 발전시킨다는 장점도 언급되고 있지만, 수준 (proficiency), 작업 (task), 텍스트 장르, 용도, 난이도 등의 변수에 따라 번역기 사용이 과연 학습에 효과적인지 체계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학습 효과를 세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방법도 조사되어야 한다. 

 요즘은 학습자뿐 아니라 교육자와 연구자들도 번역기를 여러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교육현장에서의 번역기 사용을 생각해 봤을 때 아직도 마음이 불편한 것은 왜일까. 중학교 시절 국제학교에 다닐 적 수학 수업시간에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도 간단한 덧셈을 전부 계산기로 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화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또한, 대학원 시절 실험비를 계산하다가 받아 올림 있는 암산을 못 해 지폐를 일일이 한 장씩 세어 계산하는 어느 외국인 교수님을 보면서 어려서부터 수학을 계산기로 학습하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을 품은 적도 있다. 계산기에 과도하게 의존하여 단순한 암산이 힘들어지는 것과 같이 번역기에 의존하여 기본적인 문장조차 외국어로 구사하기 힘들어질까 우려된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람은 기기에 의존하기에 앞서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자신의 기본적인 능력을 강화하고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자와 연구자는 이를 도와줌으로써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를 끌어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나는 연구재단 학문후속세대 지원을 받아 기계번역과 외국어 처리 및 학습에 관한 연구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앞으로 과학기술의 발전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고 기술과 교육의 융합은 우리가 계속해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연구문제의 답을 하나씩 찾을 때마다 번역기보다 학습자가 더 똑똑해지고 발전되는 모습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정은선 
한국외국어대학교 언어연구소 학술연구교수 
미국 일리노이 대학 (University of Illinois at Urbana-Champaign)에서 언어학으로 박사를 했다. 제2외국어 습득 및 교육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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