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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도 실습도 없이 보여주기만 하는 대학 통일교육 문제
토론도 실습도 없이 보여주기만 하는 대학 통일교육 문제
  • 허정윤
  • 승인 2019.10.25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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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교양교육연구소 : 통일의 청사진을 그리는 ‘통일 교육'
'21세기 대학 통일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 모색'

통일 교육에 대한 방향성을 나누는 시간이 숙명여대에서 마련되었다.
숙명여대 교양교육연구소(소장 황영미)는 지난 21일 제2캠퍼스 약학대학에서 ‘21세기 대학 통일 교육의 바람직한 방향 모색’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숙명여대 교양교육연구소의 3번째 학술 대회로, 최근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미래 통일담론의 주체가 될 대학생들의 통일 교육과 관련해 다양한 학술적 논의의 장을 갖고자 마련됐다.

숭실대학교 통일외교 및 개발협력 융합전공 서유럽 교육기행 ⓒ이정철 교수 제공
숭실대학교 통일외교 및 개발협력 융합전공 서유럽 교육기행 ⓒ이정철 교수 제공

학술대회는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이 기조 발제를 맡았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 이정철 숭실대 교수, 홍규덕 숙명여대 교수가 각 학교의 사례를 중심으로 통일교육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에 앞서 현 전 장관은 현재 한반도의 상태를 ‘가변적 상태’로 정의하며 기조 발제를 시작했다. 가변적이라는 말은 한반도 정세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말이다. 현 전 장관은 동맹인 미국도 방위비 분담 계산서를 내밀고 미·중 간 헤게모니 싸움이 한 두 해 안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현 전 장관은 “북한이 변하지 않고서는 화해협력의 관계로 들어갈 수가 없다”며 “어떤 시나리오에도 북한이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어 “기능적 통일 방안은 다 소진했다고 보기 때문에 북한 시민을 바꾸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현 전 장관은 통일 교육 방향으로 선도성을 들었다. 특히 대학은 연구자와 실행자가 함께 있는 유일한 집단으로 통일 교육의 최전선에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자인 교수와 수용자인 학생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으며, 동시에 연구와 실행이 이뤄질 수 있는 유일한 곳을 대학으로 꼽았다. 파급효과와 확장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어 현 전 장관은 통일 교육이 한반도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통일도 통일 자체보다, 통일 이후가 더 험난했음을 예로 들었다. 통일을 대비해서 완벽한 연구는 아니더라도 꾸준히 연구할 때 그것을 바탕으로 통일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현 전 장관은 이를 위해 정부가 좀 더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연구자들이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바탕을 만들어줄 것을 촉구했다.
 

ⓒ허정윤

서강대학교 김영수 교수는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서 ‘통일 교육 표준화를 위한 예비적 성찰’에 대해서 말했다.

김 교수는 서강대의 예를 들어 “전체학생의 2%가 통일 관련 과목을 듣고 있는 상태고 통일 교육 자체가 학교 차원에서 제대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평했다. 통일 교육 자체가 정형화하기 어렵기도 하고 필요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분명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특히 통일 교육이 비정형화돼 있고, 강의하는 교수나 강사의 재량적 능력에 맡겨져 있는 것을 현재의 교육 현실이라고 말했다. 의무수강도 아닌 상태다 보니 토론도 없고, 현장실습도 없는 시청각 위주의 교육이 현장에서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통일은 과거로 돌아가는 회기가 아닌 새로운 미래를 찾는 작업”이며 “북한에 묻고, 북한을 알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북한을 주제로 한 방송들이 북한 홍보물 짜깁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면서, 오히려 객관적인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탈북 청소년 멘토를 한다면서 그 아이들의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해서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적어도 멘토링을 할 때 마식령산맥이 어딘지, 함경도가 어딘지 알고 접근할 때와 모를 때가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탈북민을 비롯한 북한 주민에게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김 교수는 청중에게 이산가족 상봉을 정부 주관으로만 계속 진행할 필요가 있냐고 질문했다. 오히려 이권이나 정치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민간 중심으로 제3국에서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실제로 서독 교회에서 동독 교회가 이러한 방법을 사용했고, 이산가족 전문 기업을 만들어서 자주 접촉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官) 대 관(官)으로만 만나야 한다는 상봉 프레임을 벗어나는 아이디어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통일 교육의 예비적 성찰도 이러한 면에서 ‘통일적 상상력’을 갖출 수 있게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K-MOOK를 통해서 통일 교육 콘텐츠의 기준을 마련해서 각 대학이 들을 수 있도록 배포하고, 대학 통일교육 사례를 공유해 우수 사례를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현재 통일 교육은 특강 형식의 단발적인 수업인 경우가 많다.

숭실대 이정철 교수 ⓒ허정윤
숭실대 이정철 교수 ⓒ허정윤

숭실대 이정철 교수는 ‘통일교육 선도대학의 현황과 미래’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진행했다. 이 교수는 통일 문제와 개발협력을 접붙여 숭실대가 통일 선도대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숭실대에서 진행하는 필수과목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통일 교육의 모럴 해저드’에 대해서 언급했다. 담당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연구원 운영의 효율성이 크게 달라지고, 교육자의 자기희생 없이는 학생 지도가 힘들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시스템보다 담당자에게 기대는 ‘개인의존도’가 굉장히 높은 게 현실이다. 이 교수는 “외교 상황에 따라 바뀌는 수업이 아니라 표준화할 수 있는 교육방향에 대한 고민 없이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는 ‘통일 교육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 숙명 여대 사례를 들어 발표에 나섰다. 홍 교수는 숙명여대에서 ‘생활 속에 북한 알기’라는 수업을 맡아서 인기를 끈 바 있다며 운을 뗐다. 홍 교수는 “옴니버스 방식의 강의는 학교의 지원이 중요하다”면서 학교의 지원과 젊은 교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했다.

홍 교수는 “북한 분야의 중요성을 알고 강의하는 교수님들의 연령대 평균이 60대에 이르렀다”며 “수업을 하면서도 세대 격차를 어떻게 줄일까 하는 고민을 한다”고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홍 교수는 학생들에게 실질적 네트워크를 통해서 통일에 대한 접근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 교수는 “어떤 학교의 어떤 과가 특별히 통일 교육을 도맡아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통일과 관련한 재단이나 NGO와 협업해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학생들에게 통일 관련 교육을 할 때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조교도 대학원생이 아니라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서 자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 학생들도 수업계획서 작성에도 조교 학생들을 참여시켜 수업에 자신의 ‘지분’이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수업 방식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숙명여대는 전문 성우를 초청해 북한 관련 연극을 올렸다. 오는 수업에는 통일 관련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감독과의 만남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홍 교수는 “유명 강사나 VIP급 인사들의 강의가 만능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수업진행이 일관성을 벗어나거나 기대했던 콘텍스트에 맞지 않으면 한생들이 의외로 산만해지거나 지루해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숙대의 경우는 수강생 전원이 여성이다 보니 여성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젊은 여성 탈북자들이나 여성 전문가들의 강연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단순 시청각 자료에서 벗어나 다양한 실습 활동과 수업 형태로 통일 교육을 꾸려나갈 때, 학생들에게 큰 학습효과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 ⓒ허정윤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 ⓒ허정윤

홍 교수는 발표 말미에 젊은 강사진들이 강의 기회를 얻도록 여건 보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더욱 많은 학교에서 통일과 관련한 유사과목이 개설될 수 있도록 학교와 통일부·교육부 등의 정부 기관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현실은 교양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북한 및 통일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심화 단계의 교육 과정들이 추가로 밟지 못하고 있다.

발제 이후에는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인 유호열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가 좌장을 맡고 홍양호 전 통일부 차관, 윤덕민 전 외교부 국립외교원장, 박흥순 충남 통일교육협의회 회장,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이 토론자로 참여해 통일교육의 새로운 지평 확장을 위한 학술적 논의했다.

숙명여대 강정애 총장 ⓒ허정윤
숙명여대 강정애 총장 ⓒ허정윤

숙명여대 강정애 총장은 이날 축사에서 “통일 시대를 이끌어갈 미래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며 “숙명대학교부터 남북 화해 시대를 여는 융복합 통일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이를 위한 여성인재를 양성하는 견인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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