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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법 나누기
거꾸로 보는 법 나누기
  • 김다은 추계예대
  • 승인 2003.09.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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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김다은(추계예술대 • 문예창작학과)

2003년 신춘문예에 당선한 한 제자가 당선 소감에 “세상을 거꾸로 보는 법을 가르쳐 주신 김다은 선생님께 감사 드린다”라고 적었다. 그 글이 나가고 난 뒤 어떻게 거꾸로 세상을 볼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세상을 거꾸로 보는 법’이란 학생들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마련된 대화방식의 3학년 수업이다. 수업의 정확한 명칭은 <반대에 도달하기>인데, 통념과 정반대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선, 교실에 들어가면,


학생들: 반갑습니다.          

교  수: 정말 반갑습니까?

학생들: (........)                


교 수 : 선인장을 가져다 놓았네요. 선인장 하면 생각나는 것은?

학생들: 끝없는 사막이요! 갈증이요!    

교수: 선인장은 수분 덩어리, 사막이 작은 고무화분에 들어왔네요.

      경아는 왜 그렇게 우울해 보여요?


경아: 실연했어요...... 선생님, 가슴이 아파요.       

교수: 실연하면 가슴이 아픈 이유는 그 사람이 떠나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가슴에 주저앉아 나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위로가 좀 되나요? 기철이 이번에 쓸 소설 소재는 뭐죠?


기철: 보통 사람하고 다른 흡혈귀 이야기요. 

교수: 기철도 친구 레포트 은근슬쩍 베껴 본 적 있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보통사람도 친구나 가족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의 일종 아닐까? 미경은?


미경: 저는 일기형식으로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교수: 한 여고생이 일기장에 짝사랑하는 선생님과 진하게(!) 연애하는 이야기를 상상해서 적어놓았는데, 그 여학생이 사고로 죽었어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되죠?

학생들: 선생님이 성희롱에 걸려요! 선생님이 범인으로 오해받아요!

교수: 그래요. 죄 없는 선생님이 철저히 파멸 될 수도 있어요. 일기가 반드시 그 날 있었던 것만을 기록하진 않아요. 그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함정에 빠진 선생님의 진실을 대변 할 수 있겠죠. 


민아: 저는 신체에 이상이 있는 사람에 대해 쓰고 싶어요. 가령, 장님.       

교수: 눈을 가졌다고 다 정상은 아니에요. 민아도 다른 사람이 본 그대로 보고, 다른 사람이 말한 그대로 되풀이할 때가 있지요. 우리도 자기 눈이나 입이 없을 때가 있어요.


선운: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해 쓰고 싶어요.       

교수: 내가 다른 사람 눈으로 보고 다른 사람 입으로 말하면 내가 타인이고 타인이 나죠.


학생들: 머리가 헷갈려요!!!!!    

교수: 수업은 헷갈리지 않고 잘 진행되고 있어요.


면정: 저는 범죄자, 즉 죄를 짓고 사형수가 된 사람에 대해 쓰고 싶어요.  

교수: 그 사형수의 마지막 소원이 애인을 만나보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애인이 사형 집행 하루 전에 교도소로 면회가게 되었는데, 가는 도중에 교통사고로 죽어버렸어요. 사형수는 누구죠? 사형수는 다 범죄자인가요? 당신은 사형수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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