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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logue] 인간적 영웅의 탄생
[Cinelogue] 인간적 영웅의 탄생
  • 교수신문
  • 승인 2019.10.1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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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사회는 영화에, 영화는 다시 사회에 영향을 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모방하며 변화하고 발전해 간다. 사회가 영화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영화를 통해 사회가 가치관의 변화를 갖기도 한다. 우스운 얘기지만 알카포네 같은 1930년대 미국의 갱들이 헐리우드 갱영화를 즐겨 보러 갔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주인공 갱이 보여줬던 멋진 패션이나 제스춰를 실제 갱들이 따라하고 한동안 유행이 됐다. 헐리우드는 현실세계속 갱들을 모방하여 각본을 쓰고 영화속에 재현했다. 누가 먼저 모방을 했는지는 알수 없지만 두 세계는 서로를 모방하는데 열중했다는 건 사실이다. 

화제의 영화 <조커>는 폭력적이며 범죄자를 합리화하고 사회를 비판하였다. 무엇보다도 위선적 영웅의 이미지를 폐기하고 새로운 영웅상을 부각시켰다. 인간적 영웅이 탄생한 것이다. 헐리우드 영화는 한 마디로 영웅주의의 진원지며 집산지이다. 만화책 마블, 디시 시리즈의 판타지 수퍼히어로부터 도시범죄를 소탕하는 형사들, 부패한 정치가와 기업인을 때려잡는 정의로운 검사, 기자, 변호사,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주인공이 영웅들이다. 헐리우드를 모방하는 충무로 한국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사회를 영웅의 시각에서 반영한다.  

이런 영웅사관이 최근 바뀌었다. 바로 <조커>가 그것을 대변한다. 조커는 배트맨 시리즈의 단골 악당이다. 그를 대문짝 만하게 제목으로 쓰면서 주인공으로 기용한 것은 배트맨의 시대가 사라졌음을 알리는 신호로 봐야 한다. 이번 영화속에서 조커는 배트맨 보다 더 정의롭게 그려져 있다. 젊은 시절 정의를 외쳤던 배트맨은 나이가 먹어 여전히 정의를 외치지만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권력에 도취된 정치가일 따름이다. 

조커와 같은 주인공을 반영웅(anti-hero)이라고 부른다. 미국역사속에서 반영웅이 영화속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0년대였다. 베트남 전쟁이 한참 진행하다가 결국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가 오만이었음을 만천하에 알리게 된 시점에서 반영웅들이 나타나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국역사를 다시 반성하는 역할을 한다. 악당이 주인공이 되어 나타난 것은 미국의 정치가 권력화되어 위선적인 모습으로 서민들에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건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변곡점이 틀림 없다. 한국정치상황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변하는 것은 사회 가치관이 변하기 때문이다. 

조커는 배트맨으로 상징되는 과거의 영웅이미지를 불식시킨다. 부패를 척결하고 서민들에게 희망을 던져줬던 구세주 배트맨이 지금에 와선 오만하고 위선적인 영웅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영화 <조커>가 섬뜩한 것은 마치 작금의 한국정치현실을 반영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들은 다 영웅행세를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과 정치는 분명히 다른 것 같다. 민주화운동은 순수하지만 정치는 교활하고 위선적이다. 배트맨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훈장처럼 여기는 한국의 강남좌파들처럼 느껴진다. 조커는 부자출신 배트맨이 계몽적 시선으로 자선사업하듯 민중을 구원하고자 했던 행위가 위선적 엘리트정치임을 통렬히 비판한다. 조커는 삶의 고통을 느끼고 결점을 서슴없이 드러내는 인간적 영웅의 탄생을 예고한다. 한국정치도 진정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는 시즌이 도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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