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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쟁점: 가족, 분배, 사회와 맞물린 '시간'의 정치학
사회쟁점: 가족, 분배, 사회와 맞물린 '시간'의 정치학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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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제를 둘러싼 몇 가지 논의들

주5일제는 1998년부터 5년 이상 지난하게 끌어온 문제다. 하지만 노사정이 정책안 조율에 있어 엎치락뒤치락 과정을 거치면서 재계 쪽 의견을 더욱 수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안이 통과됐다. 이에 노동계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주 5일제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라고 주장하지만, 사용자 측은 여전히 시기상조라는 반대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주5일제는 노사간의 분쟁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이므로 좀 더 포괄적인 시각에서 몇몇 핵심적인 논의들을 짚어봐야 할 것이다.

근대적 시공간 패러다임의 변화

주5일제는 단순히 법정근로 시간이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어드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주5일제가 ‘구조의 전환’을 가져올 것이라고 예측한다. 즉 여가시간의 증대 자체보다는 근대적 시공간 패러다임이 변화한다는 것이 핵심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근대에는 ‘노동시간’이 중심이 되고 나머지 활동들이 이에 따라 배치됐던 반면, 주 5일제가 시행될 경우에는 ‘여가시간’을 중심으로 인간 활동이 재편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예컨대 토요일 휴무로 1일 여가권이  2일 여가권으로 바뀐다면 여가와 노동개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것이며 결국 생활패턴과 활동패턴도 변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바뀌며, 이에 따라 시공간이 재배치 될 수 있다. 이러한 시간개념은 ‘노동’과 ‘여가’를 상충되는 관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여가시간이 곧 노동을 재창조하는데 중심적인 활동이 되는 것이라고 사회학자들은 설명한다. 때문에 주5일제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하나의 정책안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중요한 흐름이라고 강조한다.

‘삶의 질’을 둘러싼 논의들

주5일제는 곧 ‘삶의 질’ 향상 논의로 이어진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삶의 질’을 논하기에 앞서 ‘의사소통’이 전제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주5일제로 늘어나는 여가시간은 기존 인간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예컨대 가족구성원들의 역할이 재배치 될텐데, 가사노동을 둘러싼 부부역할, 여가시간 증대로 인한 부모자식간의 역할변화 등이 일어날 것이다. 여가문화학회의 윤소영 교수(송호대학?유아교육학)는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가족구성원들의 의사소통이 해결된 다음에 논할 문제다. 이것이 해결되면 가족의 결속력이 강화되며,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관계를 중심으로 한 가족문화에서 삶의 질 향상이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들은 현재 주 5일제 논의에서 가족관계에 대한 논의가 부각되지 않는 것은 핵심적인 문제가 간과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삶의 질’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는 주로 ‘문화 콘텐츠’를 둘러싸고 제기된다. 특히 기업들은 여행, 레포츠, 외식과 관련한 상품들에 주력해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즉 여가시간을 다양한 놀이문화로 채우는 것이 삶의 질적 향상을 가져온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들도 제기되고 있다. 문화자본이 ‘소유중심’의 여가문화 풍토를 구성하는 것을 경계하며, ‘과정’에 초점을 둔 여가생활이 되어야 할 것을 주장한다. 민예총, 문화연대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이러한 주장은 지역사회에서 가족과 청소년,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과 문화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일반적인 노동자 계층이 누릴 수 있는 문화는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문화적 시설을 갖춰 줄 정부 예산안 책정이 급선무라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근본적인 쟁점은 ‘분배’의 문제 

주5일제가 극소수 계층만의 향유물이 된다면 정책적 의미가 무색해질 수 있다. 막중한 노동부담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정책취지가 대다수 노동자들을 제외한다면 사회 전반적인 ‘삶의 질’ 향상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큰 쟁점은 ‘주5일 법제화’와 ‘근로조건의 보전’에 관한 것이다. 특히 노동자 계층은 주5일제를 시행하더라도 실질임금이 보장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권의 정책은 사회복지 측면은 간과하고 노사관계의 선진화만을 강조하고 있어 노동자 계층의 반발을 사고 있다. 물론 주5일제를 시행하는 데 있어 단계적 방안을 둘러싼 여러 가지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주5일제 아빠’와 ‘주6일제 아빠’가 현 정책안에서와 같이 8년을 동거하게 된다면 분배의 문제는 더욱 불공평해 질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노동계 쪽의 정책접근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주5일제가 노동자의 경제적 문제와 직결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단순히 경제주의적 논리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문화연대 등은 이들에게도 문화사회적 접근이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주5일제의 다양한 논의들은 결국 정부 정책안을 둘러싸고 몇몇 쟁점으로 치닫고 있는데, 정부가 노사타협의 조정안을 마련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어 예산안 책정의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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