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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뺨 맞을 소리’하는 시가 내게로 왔다
‘뺨 맞을 소리’하는 시가 내게로 왔다
  • 허정윤
  • 승인 2019.10.07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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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사회학(02) 나에게 시가 왔습니다
저자 국어생활연구원|양철북 |2019.09.09

모든 인간은 고유하다. 얼굴도 서로 다르고, 각자 환원 불가능한 개성을 지녔다. 개성은 우위 논의를 허락하지 않는 비교 불가의 절대 영역이다. 고유하다고 해서 고립되었다거나 고립되어도 괜찮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불가피하게 상호 의존적이다. 개성이 인간을 구성하는 절반의 요소라면, 유적 존재로서의 공통된 속성으로 인간의 나머지 절반이 구성된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고통은 절대적이다. 모든 고통은 고유한 아픔이다. 그럼에도 고통은 단 한 명의 사람만을 절망에 빠뜨리는 가혹한 예외적인 운명이 아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욥은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신에게 따져 물었다. 각자의 견딜 수 없는 고통 앞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이 욥의 처지라 한탄하지만, 욥은 이 세상에 단 한 명이 아니다. 인간 사회는 수많은 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자신의 ‘그’ 고통은 통약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각자의 이유와 제각각의 순간에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모든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존재라는 운명을 공유한다.

어떤 사람이 고통 받고 있는 ‘그’ 순간에 다른 사람은 심지어 행복할 수도 있다. 행복을 느끼는 사람 곁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고통 받는 사람이 자신의 고유한 고통에 대해 호소할 때, 사람은 자신의 ‘그’ 순간의 행복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고통의 순간을 언젠가 겪을 것임을 예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이 아닌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인간이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타인의 감정을 배움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사회적 존재로 변해간다. 개인이 겪는 희노애락의 심정이 고스란히 담긴 서정적인 텍스트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사회적인 텍스트일 수도 있다.

<나에게 시가 왔습니다>를 읽었다. 국어생활연구원에서 진행한 ‘삶과 글’ 그리고 ‘삶 쓰기’ 강의에 참석했던 공무원이 쓴 시가 수록된 책이다. 여기까지 설명 들으면 이 책은 그저 아마추어 시인의 습작 모음집에 불과하다고 예단할 수도 있다. 처음 접했을 때 이 책에 대한 나의 인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공무원에 대한 선입견도 인상 판단에 끼어들어 속단을 부채질 했다. 그 유명한 개조식 형식으로 쓰인 공문서 작성에 능한 공무원에게 시를 쓸 수 있는 감성이 남아 있을리 없다고 단정까지 내렸었다.

선입견과 달리 <나에게 시가 왔습니다>를 읽고 나니, 이 책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감정의 백과사전이자 각자의 고유한 삶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통의 대지에 관한 보고서라고 해도 손색없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보편적 운명에서 기인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만났다.  

“엄마는 갱년기/아들은 사춘기/화를 품은 50대 아줌마와/늘 삐딱한 10대 반항 아들/우리 집엔 핵폭탄이 두 개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의 일상적 긴장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난 서울로 출장 오는 아침 전철이 좋다/바쁜 세상과 잠시 단절된 나만의 공간/그곳에서 나는 그동안 돌보지 않고 위로해 주지 않은/순수한 나와 만나서 너무 좋다.” ‘나만의 공간’ 모든 이의 평범하지만 보편적인 꿈이다. “민원전화, 하루걸러 만나는 민원인들/점심 먹고 사무실 인근 꽃집 겸 카페에 앉았다/낯설고 반갑게도 평화롭다/그래서 카페 알바생에겐 안 들리게 혼자 얘기해 본다/그냥 나도 카페 알바생하고 싶다.” 이 시의 제목은 <뺨 맞을 소리>이다. 그렇다. 이 뺨 맞을 소리를 쓴 사람도 알고 있다. 이 투정은 알바생이 들으면 뺨 맞을 소리임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이라면 뺨 맞을 소리를 혼잣말로 하고 싶은 이 사람의 감정을 누구나 헤아릴 수 있다. “오늘 점심은 뭘 먹나/늘 고민이다/생각나는 음식이 없으면/두부/내 어릴 적 새벽 2시면 일어나/두부를 만드시던 두 분.” 거의 모든 이에게 부모님은 이런 분이셨고, 이런 부모를 둔 자식의 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보통 감정이 모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룬다. 세상파악은 객관화된 과학의 언어를 통해 사회분석으로 격상되어야 하지만, 표준적 감정을 감지하는 예민한 촉수 없이 공감이 설득력으로 변신하는 사회분석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세속의 사회학은 당대의 보편적 감정을 과학의 언어로 기록하는 지진계이고자 한다. <나에게 시가 왔습니다>는 그 지진계에 신호를 보냈다.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노명우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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