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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넘어 혼과 정보가 압축된 ‘작품’
지도를 넘어 혼과 정보가 압축된 ‘작품’
  • 교수신문
  • 승인 2019.10.07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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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장 속의 대동여지도 읽기(국립중앙박물관)
오호~대동여지도!
10리마다 짧은 선…거리·시간 가늠
물길 두 줄기, 배 운항 가능한 표식
다양한 기호 사용해 많은 정보 압축
에너지 넘치는 굵은 선은 백두대간
톱날 같은 수많은 삼각형은 금강산
대동여지도 진열장. ⓒ박찬희
대동여지도 진열장. ⓒ박찬희

박물관에서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유물을 만날 때가 있다. 유물 그 자체가 매력적인 것도 있고 전부터 자주 보고 들어서 실제로 보기도 전에 익숙해진 유물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실의 유물 가운데 대동여지도가 딱 그렇다.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는 위인전과 역사책에 꼭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라 대동여지도를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정호의 불굴의 의지, 대동여지도의 과학성과 정확성, 쓰러져가는 조선을 비추던 한 줄기 빛과 같은 극적인 요소가 어우러져 어느 순간 신화가 되었다. 

박물관에서도 대동여지도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한 진열장 전체를 대동여지도로 꾸몄다. 대동여지도는 모두 22층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가운에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한 6개 층을 넓은 벽면에 붙였고 그 앞에는 대동여지도와 관련된 설명문을 제시하였다. 진열장 왼쪽에는 대동여지도 목판 세 장과 설명문을 잘 볼 수 있도록 세워서 전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대동여지도와 목판을 함께 전시한 유일한 곳이 아닌가 싶다. 

그럼 관람객들은 대동여지도 진열장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 조선실을 둘러보다 대동여지도를 발견하면 그 앞에서 우뚝 멈춰 선다. 그리고는 “대동여지도다.”라며 나지막이 말한다. 목소리에는 전설 같은 대동여지도를 직접 봤다는 떨림이 살짝 깃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어떤 이들은 지도를 잠시 바라보다 다른 곳으로 가고 또 다른 이들은 꼼꼼하게 설명을 읽고 목판을 살펴본다. 체험학습을 온 아이들은 대동여지도 앞에서 사진 찍기 과제를 하느라 사진 찍기에 바쁘다. 같은 진열장이지만 관심에 따라 진열장을 대하고 읽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 

다시 대동여지도 진열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신화가 된 대동여지도와 전시 보조물에서 무엇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전시된 대동여지도는 대동여지도의 일부인 6개 층으로 이루어졌다. 대동여지도 전체는 가로 3.8m, 세로 6.7m에 이른다. 대동여지도를 모두 펼치려면 상당히 높거나 넓은 공간이 필요해 전면을 펼친 곳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여러 층으로 나눈 이유는 무엇일까? 대동여지도 한 층을 담은 책의 크기는 대략 가로 20㎝, 세로 30㎝로 당시 일반적인 책 크기와 비슷하다. 지도를 사용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기거나 두루마리처럼 둘둘 펴는 것이 아니라 병풍처럼 펴고 접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보관하기 편하고 원하는 부분을 펼쳐보기에 알맞은 구조로 사용자를 고려한 결과였다.

대동여지도의 한양 부근. ⓒ박찬희
대동여지도의 한양 부근. ⓒ박찬희

이제 대동여지도의 세부로 들어가 보자. 사진은 한양 근처의 모습이다. 한양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간 건 길이다. 그런데 길은 비교적 곧으며 길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선을 찍었는데 왜 그랬을까? 길을 곧게 만들어 구불구불한 물길과 혼동하지 않도록 했고 또 한눈에 알아보도록 했다. 길에는 10리마다 짧은 선을 찍어 손쉽게 거리와 소요 시간을 가늠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물길은 두 줄로 표시된 곳과 한 줄로 표시된 곳으로 구분된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두 줄은 배가 갈 수 있는 곳이고 한 줄은 배가 갈 수 없는 곳이다. 김정호는 배의 운항 여부를 기준 삼아 물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지도에는 다양한 기호들이 보인다. 김정호는 왜 기호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을까? 기호를 사용하면 같은 공간 안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고 사용자 입장에서도 많은 정보를 빨리 파악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기호 덕분에 13,000여개의 정보를 담을 수 있었다. 진열장 아래에는 대동여지도에서 사용한 기호 모음인 지도표를 제시하여 이해를 도왔다.

대동여지도의 금강산 부근. ⓒ박찬희
대동여지도의 금강산 부근. ⓒ박찬희

이번에는 동쪽인 동해안으로 가보자. 지도 위아래를 관통하는 유난히 굵은 선은 무엇일까? 백두산에서 뻗어 내린 백두대간으로 국토의 척추에 해당한다는 당시의 믿음답게 힘차게 묘사되었다. 국토 곳곳을 휘감은 산줄기는 마치 꿈틀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지도 속 백두대간 중간 부분에는 톱날처럼 수많은 삼각형이 좌우로 뻗어나갔다. 이곳은 어디일까? 일만 이천 봉으로 널리 알려진 금강산으로 금강산의 험준하고 웅장한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이런 점에서 대동여지도를 지도라는 틀을 뛰어넘은 뛰어난 예술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번에는 진열장 왼쪽 검은 목판에 주목해보자. 오랫동안 정체를 몰랐던 이 목판이 발견되면서 어떤 일이 생겼을까? 우선 그동안 베일에 싸였던 진실이 드러났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자 국가 기밀을 누설한다며 흥선 대원군이 김정호를 잡아들이고 목판은 불살랐다는 이야기다.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로 뛰어난 김정호와 한심한 정치가들을 대비해 조선의 무능함을 부각시키려는 일제의 불순한 의도가 깊숙하게 개입되었다. 이 이야기는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를 신화로 만든 강력한 장치로 작동하였었다.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데 모두 60여 매의 목판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호는 왜 목판을 만들고자 했을까? 목판은 만들기는 힘들지만 일단 만들어 놓으면 많은 양의 지도를 찍어낼 수 있다. 만약 대동여지도를 손으로 그렸다면 제작할 수 있는 수량이 적을 수밖에 없다. 대동여지도가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전해져 널리 활용되기를 바란 그의 의도와 의지가 목판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것뿐 만일까? 지도의 생명은 무엇보다 정확성이다. 손으로 그리고 쓰는 지도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이 실수가 생긴다. 만약 처음부터 오류가 없는 목판을 만든다면 정확한 지도를 만들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김정호가 시간과 비용을 무릅쓰고 목판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다. 현존하는 대동여지도 목판을 살펴본 연구자는 일부 목판에서 오류가 생긴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기존 글자를 파내고 새로운 글자를 끼워 넣은 흔적을 찾기도 했다.

진열장 가장 앞쪽에는 대동여지도의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설명문이 있고 그곳에는 당연히 김정호라는 이름이 들어갔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두 발로 전국토를 누빈, 열정 넘치는 길 위의 지도학자로 알고 있다. 정말 그럴까? 그러나 그는 현장이 아니라 방 안에서 엉덩이로 지도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꽤 높다. 그곳에서 수많은 지도와 지리 정보를 검토하고 수정하고 내용을 보강하였다. 필요에 따라 현장을 누비기도 했겠지만 그의 주무대는 방 안이었고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국토를 편집했다.

현재 설명문의 김정호 이름 옆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만약 김정호의 이름 옆에 한 줄을 더 넣는다면 무엇을 넣으면 좋을까? 아마 김정호를 도와준 사람들이지 않을까? 김정호가 대단히 뛰어난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를 도와준 사람들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그는 없다. 고급 지도를 제공해준 신헌이나 오랜 벗 최한기, 지리지를 같이 만든 최성환이 그들이다. 또한 대동여지도는 끊임없이 이어진 지도 제작의 전통과 지리 정보 축적의 결과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 새로운 지도 제작의 획기적인 방법을 마련한 정상기 역시 한 자리를 차지해야한다. 그리고 김정호의 이름 바로 옆에는 “지도를 사랑해 지도에 미친 사람”이라는 한 줄 평을 더하면 어떨까? 

설명문에 쓰인 대로 대동여지도가 처음 세상에 나온 해인 1861년이다. 왜 이때였을까? 이쯤에서 다시 지도표를 보아야한다. 지도표에는 무엇보다 군사정보가 많다. 당시 중국으로 제국주의 세력이 급격하게 들이닥쳤고 이러한 국제 정세를 일부 지식인들은 심각하게 인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의 국토를 제대로 알아야 유사시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그들은 믿었다. 그래서 일부 연구자들은 대동여지도를 변화하는 현실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로 보고 있다.

지도학자들은 말한다. “지도는 읽어야 한다.” 그래야 보인다고. 마찬가지로 대동여지도 진열장도 읽어야 한다. 질문하며 읽을 때 신화속의 대동여지도가 눈앞의 대동여지도로 바뀐다.

글 박찬희(박물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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