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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뭘까? 불투명 유리너머의 신비감-한국의 얼굴
저게 뭘까? 불투명 유리너머의 신비감-한국의 얼굴
  • 교수신문
  • 승인 2019.09.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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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희의 박물관 여행
박찬희 박물관 칼럼니스트
‘공간은 어떻게 반가사유상을 만들었을까?’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만약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단 한 점의 유물을 봐야한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농경문청동기, 신라 금관, 기마인물형토기, 대동여지도, 단원 풍속도첩, 청자과형화병이 당당히 이름을 올리겠지만 국보 78호,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두 점은 오랫동안 국립중앙박물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혀왔다. 특히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일찍이 국가 대표로 선발되어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전시에서 우리나라의 얼굴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면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반가사유상을 어떤 공간에 어떻게 전시했을까? 대개 박물관에서는 중요한 유물을 부각시키기 위해 진열장 한가운데 다른 유물보다 높이 전시하거나 단독 진열장에 이 유물만 넣어 따로 전시한다. 이런 방법보다 더욱 극적인 것은 아예 한 전시실에 단 한 점의 유물만 전시하는 것으로 그 유물이 홀로 전시실을 감당할만한 힘과 그만한 가치를 지녔을 때 가능하다. 이곳에서는 반가사유상을 전시실에 홀로 전시하는 방법으로 승부를 걸었다.

승부의 결과를 알려면 박물관 3층 불교조각 전시관으로 가야한다. 이곳은 여러 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졌으며 눈을 돌리는 곳곳에서 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유물들을 만난다. 이 유물들 사이로 홀연히 낯선 전시실이 나타난다. 그런데 유물은 정확하게 보이지 않고 뿌연 유리 너머 어슴푸레 희미한 윤곽만 보일 뿐이다. ‘저게 뭘까?’라는 호기심으로 자연스레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윤곽의 정체가 드러난다. 사진으로만 보던 국보 83호 반가사유상! 이 전시실은 국보 78호와 국보 83호 반가사유상만을 위한 전시 공간으로 두 상이 교대로 전시되는데, 요즘은 주로 83호 반가사유상이 전시되고 있다.

사각형의 반가사유상 전시실은 크게 세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이 상을 볼 수 있는 앞 공간, 진열장이 놓인 공간, 그리고 진열장을 둘러싼 복도와 같은 공간이다. 앞쪽 공간을 여유롭게 만들기 위해 진열장은 전시실 중심에서 뒤로 조금 물러났다. 대표 유물에 걸맞게 진열장은 상당히 널찍하며 유물을 받친 받침대 역시 높은 편이다. 상 자체의 높이가 93.5㎝이기 때문에 얼굴을 보려면 살짝 올려봐야 한다.

반가사유상 전시실. 사진=박찬희
반가사유상 전시실. 사진=박찬희

세 공간 가운데 진열장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반가사유상 앞쪽 넓은 공간에서는 날마다 야단법석이 벌어진다. 박물관의 대표 유물답게 인기가 높아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릴 때면 고요하던 공간이 여러 소리들로 뒤섞인다. 놀라고 감탄하고 관찰하는 소리들이다. 그 소리들로 왁자지껄한 순간에도 이 상은 천 수백 년 동안 계속된 고요한 미소를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풍경이다. 그런데 박물관에서는 단순한 소품으로 이 공간의 성격을 색다르게 바꿔놓았다. 전시실 입구 쪽에 반가사유상이 앉은 의자를 본 딴 나무 의자 세 개를 놓았다. 이 의자는 마치 ‘속’의 세계에서 ‘성’의 세계로 이끄는 길잡이와 같다. 야단법석이 벌어지는 바로 앞이 ‘속’의 세계라면 의자가 있는 이곳은 부처로서의 반가사유상을 만나는 ‘성’의 세계다. 

만약 의자를 발견했다면 다리가 아파서든, 앞에서 더 오래 보고 싶어 해서든, 반가사유상처럼 자세를 잡아보고 싶어서든 일단 의자에 앉는다. 그런데 의자에 앉는 순간 생각하지 못한 일이 펼쳐진다. 앞에 서서 볼 때보다 좀 더 높은 곳에 반가사유상이 위치해 관람객은 이 상을 올려다봐야하는데 그 사이 마음은 차분하고 경건해진다. 이 마음으로 이 상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던 눈길은 어느새 살며시 미소 짓는 얼굴로 집중된다. 단순하고 간결한 신체와 손이 만들어내는 운동감은 시선을 얼굴로 이끄는데 한몫한다. 미소를 만나는 그 순간 관람객의 마음에 미소가 번진다. 방금 전까지 소란스런 관찰 대상이었던 유물이 굳은 마음을 녹여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부처로 바뀐다.

모나리자가 신비한 미소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면 반가사유상은 깊은 사유에서 우러나는 고요한 미소로 사람들을 끌어당겼다. 어떤 이들은 이 미소를 불교의 입장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미소로, 적멸의 순간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그럴까, 이 미소는 지금도 관람객의 마음을 열어 속 시끄러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도록 만든다. 어느 순간 폭풍우처럼 일렁이던 마음에서 툭 떨어져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의 소란이 가라앉는다. 이런 점에서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며 그 달은 관람객 자신이다. 

작은 의자가 관조의 공간이라면 진열장 둘레는 낯선 것을 발견하고 놀라는 공간이다. 반가사유상의 정면에 있던 관람객들은 이제 이 상 옆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대부분 시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돌면서 이 상의 여러 면들을 살펴본다. 관람객들이 접한 사진들은 대부분 정면이나 측면에서 촬영한 것이 많아 다른 면을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러나 꼭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다른 면을 보고 싶은 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욕구다. 이곳은 다른 유물들이 전시되지 않아 다른 곳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오로지 이 상만 볼 수 있도록 되었다. 시선이 집중되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안다고 생각한 것도 새롭게 보인다.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뒷모습. 사진=박찬희
국보 83호 금동반가사유상 뒷모습. 사진=박찬희

긴장감 넘치는 오른발 엄지발가락, 긴 귀와 뚫린 귓불, 아이들이 “칼이 꽂혔어요!”라며 놀라거나 “이거 태엽처럼 돌리면 일어나서 움직일 것 같아요!”라는 광배 꽂이, 뺨에 뗀 듯 붙인 듯 보이는 오른손 손가락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다시 한 바퀴를 돌면 이번에는 위치마다 느낌이 다른 미소를 만난다.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똑같은 미소가 아니었다. 이렇게 보다보면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앉아서 바라보는 곳이 관조와 성찰의 공간이라면 마주하거나 돌아보는 공간은 관찰과 분석과 발견과 놀람의 공간이다.

반가사유상을 부각시키는 노력은 공간에서 끝나지 않는다. 조명발이라는 말처럼 조명에 따라 유물이 부각될 수도 있고 뛰어난 유물도 평범해질 수 있다. 이곳은 어떤 방법을 썼을까? 연극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처럼 반가사유상만 빛나도록 하고 주위는 어둡게 만들었다. 그래서 전시실 밖에서 전시실 안으로 들어왔을 때 별처럼 빛나는 이 상을 만나게 된다. 만약 다른 전시실처럼 전시실 전체를 밝게 했다면 어쩌면 반가사유상의 첫인상은 평범했을 가능성이 있다.

소소한 장치라도 놓치지 않을 때 공간이 달라진다. 다른 곳이라면 유물 앞 잘 보이는 곳에 이름표가 있겠지만 이곳은 전시실 입구 한쪽 벽에서 볼 수 있다. 관람객이 반가사유상을 스쳐지나갈지 모를 경우를 대비하거나 전시실 내에서 체험 학습을 온 학생들이 이름표 앞에서 이름을 적느라 북적거리는 일을 우려했을 가능성이 있다. 덕분에 전시실이 덜 붐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유물도 유물에 알맞은 공간에서 빛을 발한다.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은 그 자체로 빛나는 작품이지만 알맞은 전시실에 있을 때 더욱 빛난다.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는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감상하고 살펴보고 관조하고 생각하고 미소 짓는다. 그리고 감동한다. 사람들은 다가가고 멈추고 앉고 돌고 침묵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전시실은 단지 무엇이 전시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움직여 유물과 교감하는 곳이다. 

만약 사람이 적은 수요일 저녁이나 토요일 저녁, 이곳에 가면 그 공간은 오로지 나의 것이 된다.

글 박찬희(박물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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