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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엄성의 이름으로 ‘도둑맞은 손’
인간 존엄성의 이름으로 ‘도둑맞은 손’
  • 허정윤
  • 승인 2019.09.11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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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손' |저자 장-피에르 보 |역자 김현경 |이음 |2019.08.30.

‘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가 자신에게 온전히 있다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가령 장기이식을 통해 몸에 들어온 장기는 누구의 것인지, 타인의 신체를 구입하면 그것이 구매자의 소유가 되는지에 대한 답이 혼재해 있다. 독립연구자이자 인류학자 김현경이 옮긴 장-피에르 보의 <도둑맞은 손>은 “타인의 잘린 손을 주워 자기 뜻대로 처분한 사람은 과연 도둑인가?”라는 질문으로 독자들의 이목을 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92년 프랑스 법은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한 남자가 목공일을 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목공일을 하다가 실수로 자신의 한쪽 손을 톱으로 자르고 만다. 놀란 남자는 기절했고 평소 그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이가 남자의 손을 소각로에 넣어버렸다. 깨어난 남자는 자신의 손을 찾았지만 이미 손은 소각로의 한 줌 재가 된 뒤였다. 손을 버린 사람의 죄는 절도죄일까, 중상해죄일까 고민할 수 있겠지만, 앞서 말했듯 ‘무죄’다. 당시 프랑스 법은 “몸이 곧 인격”이라는 논지로 이 같은 판결을 냈다. 몸은 물건이 아닌 인격이고, 인격은 존엄한 만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잘린 손은 몸 전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물건이 되고, 이는 법적으로 주인이 없는 무주물(無主物) 상태가 된다. 처음 발견하는 사람이 물건의 주인이 되고 그 손을 소각로에 넣은들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학자인 작가는 이 이야기를 마친 후 자신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해서 밝힌다. “이 모든 혼란이 인간에게 자신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게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자. 터무니없다고? 물론이다. 바로 그래서 내가 이 책을 쓰는 것이다.” 이야기는 1985년 프랑스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각색한 것이다. 당시 자넬 다우드라는 수감자가 항의의 뜻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랐다가 그것을 교도관에게 압수당해 반환 소송을 했지만 패소했다. 또 미국에서는 존 무어라는 환자가 의사들을 상대로 자신의 희귀 세포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지만 수차례 법적 공방 끝에 의사와 생명공학 회사 측이 승소했다. 그들이 무어의 세포를 몰래 이용해 개발한 의약품이었지만 과정이야 어찌 됐든 수익은 그들의 것이었다.
이런 법적 결정의 핵심논리에 ‘인간의 존엄성’이 있어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책은 이런 아이러니의 역사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전문성을 가지고 집요하게 탐구한다. 침해당할 수 없는 ‘인격’은 세속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고 심지어는 거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물건’과 엄격히 구분된다. 몸이 지닌 물건으로서의 속성을 포괄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개념으로는 현실사회의 다양한 논쟁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책이 비판하는 중점적인 내용 이자 분석이다.

법 안에서는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격의 존엄성을 위해서 인간의 몸이 ‘물건’이 아니라고 기본전제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몸을 소유할 수 없다는 논리는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내는 아이러니로 이어졌다. 18세기 교회법의 노예제를 보면 “인간은 자기 생명의 주인이 아니며, 신의 처분에 달린 생명을 맡아서 사용할 뿐”이고 “이는 인간은 원한다면 자유를 팔고 노예가 될 수 있다”라는 궤변으로도 이어진다.

관료화와 자본화 속에서 인격과 몸에 대한 사유는 유효하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생명윤리법이 제정된 1994년 직전에, 생명윤리에 대한 논쟁 촉발을 위해 출간됐다. 장-피에르 보는 산업화와 생명공학의 폭발적인 발전, 공공 보건 개념과 사회보장 제도의 도입, 몸을 대상화하는 대중문화와 자본주의 메커니즘 아래에서 몸이 관련된 쟁점들이 점점 첨예해지고 있다고 보았다. 그 첨예한 논쟁 속에서 저자는 생명의 주제인 ‘인간’이 무엇이고, 인간을 이렇게 정의하고 해석하는 ‘사회’는 무엇인지 묻는다. 이런 관점으로 저자는 몸을 ‘물건’으로 인정해야 하고, 이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온갖 위협에 노출된 몸을 지닌 인간의 생명을 보장해주자고 서술한다. 

허정윤 기자 verit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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