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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속 삶의 변화에 관한 단상
배움 속 삶의 변화에 관한 단상
  • 교수신문
  • 승인 2019.09.0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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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격랑에 온몸을 맡기던 학부 시절, 정확히 어떤 이유였는지 기억은 희미하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1학년 때 중도 포기했던 교양 영어를 3학년이 되어서야 마칠 수 있었다. 당시 발표 과제로 준비했던 제인 오스틴 원작의 이안 감독 영화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그때의 난 사랑에도 옳고 그름이 있다고 고집스럽게 믿었고, 엘리노어가 아닌 마리엔만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그럼에도 세상은 언제나처럼 순수하지 않기에 마리엔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으며 결국 타협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하여 미학을 전공하면서부터 12년 남짓 지난 지금 시간을 돌이켜보면 비단 사랑에 대해서만 이렇게 생각했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학부에서 공학을 전공하고 취직 후 연구원으로서 프로젝트 관련 논문들을 읽고 실험을 반복했던 그때, 내 삶은 명확한 목표 없이 예술에 대한 막연한 동경,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에 관한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을 맴돌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이른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슬로건과 같은 의미는 아니겠지만, 일과 삶의 불일치 속에서 나의 웰빙을 위한 “옳은” 선택은 삶의 방향에 일을 일치시키는 것이었다.

미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배움을 추구하고 그것을 나의 직업으로 삼게 되기까지 그 과정은 <센스 앤 센서빌리티>에 대한 소싯적 의견을 포함하여 ‘옳음’에 대한 생각에 이르기까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물론 인문학을 하건 공학을 하건 그 선택 자체가 한 사람의 믿음이나 기질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변화 중에서 학문후속세대로서 현 시점에서 드는 생각 몇 가지를 얘기해보고 싶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 문제제기, 조언 등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생각보다 꽤나 어렵고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는 점이다. 글이나 말의 형태로 엄밀하게 혹은 격의 없이 교환하는 여러 생각들조차 필요와 맥락에 따라 상당한 노력이 뒤따라야 비로소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경우들이 많았다. 특히 학위논문과 후속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은 마치 엘리노어와 마리엔이 서로의 다름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알아가는 일처럼 지난한 시간과 인내를 요구했다. 우리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을 덕목으로 여기고 살지만, 어쩌면 어떤 특별한 실수들은 본인이 직접 겪어보아야만 그 가르침을 새길 수 있는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경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의 변화이다. 본격적인 경쟁의 장은 학위 이후에 한국연구재단의 과제에 선정되거나 강의를 얻거나 임용을 준비하는 과정 등등에서 일어나는데, 그런 일들은 표면적으로는 경쟁이지만 실제로는 ‘경쟁’이라는 말보다 ‘경쟁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단지 남과 겨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려는 노력과 축적된 성과가 경쟁의 장에서 “운이 좋은 경우”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교육에 대한 애정과 건강한 마음이 앞의 두 가지 변화들에 동반되는 스트레스를 악순환의 고리가 아닌 선순환의 동력으로 이끌어주는 원천이 된다는 사실이다. 매학기 학생들에게서 배우고 감탄하고 감사하고 보람을 느끼며 교훈을 얻는 과정이 내 연구를 더욱 소중한 것으로 여기게 만들고 경쟁 속에서도 잠시나마 쉴 수 있게 하는 쉼터이자 자양분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지만, 오늘도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는 다양한 분야의 동료 선생님들과 한 번쯤은 이런 속내를 공유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홍 서울대학교 미학과 강사
서울대학교에서 영미미학(비평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중앙대학교, 조선대학교 등에서 미학과 관련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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