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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nelogue] 어린이는 어른의 어른
[Cinelogue] 어린이는 어른의 어른
  • 교수신문
  • 승인 2019.09.0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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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워즈워드의 시 [무지개]에는 이런 싯귀가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여기서 아버지는 어른이란 뜻일 거다. 어린이는 어른의 어른, 즉 어린이가 어른 보다 낫다, 어른이 어린이 보다 못하다, 어려서는 순수했으나 어른이 되면서 망가져서 어린이마저 망가뜨린다는 반성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본다. 그래서인지 한국사회는 그 똑똑하다는 어른들이 나라를 다 망치고 어린이, 청소년들까지 다 망친다. 어른들은 반성해야 한다. 두 편의 한국영화 <우리 집>과 <벌새>는 반성하지 않는 오만한 헛똑똑이 엘리트 어른들에게 이제 더 이상 나라를 망치지 말고 인간 본연의 길을 걸어가라는 반성문을 쓰게 만든다. 

윤가은 감독의 <우리 집>은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을 둔 젊은 부부의 가정을 소재로 한다. 주인공은 초등학생 딸 하나다. 그녀는 살기 힘들어 이혼하려고 작정한 부모를 어떻게든 살게 하려고 가족여행을 제안한다. 하나의 시선에서 부모들은 책임감 없는 철면피들이다. 자기만 살려고 가족을 유지하는 데에는 인색하기 그지 없다. 하나가 보여준 희생심은 어른들이 대부분 잃어버린 순수의 마음을 보게 한다. 인간의 순수한 바탕은 자기를 위하기 보다는 남을 향해 더 다가간다. 자기의 목숨 보다도 남의 목숨을 더 소중히 한다. 그러한 이타심이 하나의 말과 행동에 살아있음을 영화를 통해 보게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학생들이 이미 다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만 부족할 뿐이지 인성이나 도덕에 대해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은 없다. 오히려 그것을 말하는 선생들이 위선적이라는 것을 더욱 느낄 뿐이다. 자신들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학생들에게 말과 행동을 강요한다. 그런 도덕적 위선자들이 주로 선생들이다. 인성과 도덕성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교육적으로 어불성설이다. 어른들이 주로 세상을 망쳐놓으면서 학생들에게 훈계를 한다는게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회적 위치라는 것 때문에 학생들에게 항상 정의, 도덕, 인성 등을 떠들어댄다. 교육현장에 서면 가르치기 이전에 나부터 반성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번 한다. 그만큼 학생들은 순수하다. 학생들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는 더 나아가 구체적인 한국의 정치사회시스템을 고발한다. 무조건 일류대학을 가야만 하는 부모들과 선생들의 교육풍토를 비판한다. 여중2학년인 주인공 은희는 자신의 시선에서 한국의 어른들이 얼마나 타락했고 적폐세력인지를 한눈에 알아본다. 어른들이 이런 순수한 아이의 시선을 얼마나 무시하고 탄압하는지를 적나라하게 증언한다. 좀더 자유롭게 친구를 사귀고 노래를 부르고 놀고 싶어도 무조건 일류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만 해야한다고 강압하는 어른들은 언젠가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1994년 그해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그렇게 공부만 한 인성, 도덕성이 타락한 일류대학 출신 어른들이 나라를 망쳐놓으니까 마치 하늘이 천벌을 내려 멀쩡한 다리가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성수대교에 들어갈 철근을 다 빼먹어 다리를 무너지게 만든 엘리트 어른들은 자신들이 빼돌린 돈으로 일류대접을 받아야 했기에 대신 그 천벌을 가난하고 힘없고 열심히 살아보려는 서민들만 받아 희생당하고 만다. 한국사회에선 항상 억울한 일이 벌어진다. 한국영화가 슬픈 이유는 이런 억울한 일이 너무 많고 그 사연에 공감하기에 그렇다. 나쁜 어른들이 벌받는 이야기는 위선적이라 공감대가 없다. 요즘 우리사회에 유행하는 말은 ‘도낀 개낀’ ‘그놈이 그놈’ 아닌가. 누가 누구를 욕한단 말인가. 서민들이 볼땐 이쪽이나 저쪽이나 부도덕하긴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벌새>는 이런 낙후된 한국사회의 후진적 정치사회구조를 한 여중생의 시선에서 풀어나간다. <우리 집>과 <벌새>는 워즈워드의 [무지개]와 같은 맑은 서정시이다.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여성의 시선에서, 억압된 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근본적인 인간의 성찰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눈 있는 자들은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반성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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