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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26- 강아지풀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26- 강아지풀
  • 교수신문
  • 승인 2019.08.1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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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록새록 추억의 풀…상처·버짐에도 효능
강아지풀 ⓒ허정윤

밭들에 나는 잡풀 중에서 키다리에 해당하는 강아지풀은 외떡잎식물, 벼과(화본과)의 한해살이풀로 유라시아가 원산지이다. 복슬복슬한 잔털들이 한가득 달려있는 원통꼴의 통통한 풀꽃 송이가 개꼬리를 닮았다고 하여 ‘강아지풀’이라 하고, 일본은 구자초(狗子草), 중국은 구미초(狗尾草)라 부른다. 
이 풀은 전국의 농촌들녘·길가·빈터·텃밭·묵정밭·둑 등지에서 난다. 줄기는 뿌리에서 여러 포기가 뭉쳐나고, 잔가지를 치며, 40~70cm 높이로 곧추선다. 줄기에는 여러 개의 도드라진 마디가 있는데 마디가 꽤나 길다. 잎은 줄기마디마다 1장씩 달리고, 길이는 10~20cm이며, 너비는 5~17mm정도이다. 뿌리는 수염뿌리이고, 잎맥은 나란히맥(平行脈)으로 전형적인 외떡잎식물(單子葉植物)이다. 


강아지풀(Setaria viridis)의 꽃은 한여름에 피고, 원기둥꼴의 꽃 이삭은 길이 2∼5cm이다. 줄기는 약간 적색을 띠고, 줄기는 칼집모양으로 싸는 잎집(엽초)으로 완전히 둘러싸였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길쭉한 줄기를 쑥 쑥 뽑아서 논들에서 잡은 벼메뚜기의 목을 줄줄이 꿰었다. 메뚜기의 가슴부위를 뚫어 꿰는 것을 말하는데, 비닐봉지도 없고 유리병도 아주 귀한 때라 강아지풀줄기는 잡은 메뚜기를 모아 가져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리고 강아지풀은 장난감이란 모두 자연에서 얻었던 그 시절 우리에게 너무나 친근했던 풀꽃이다. 꽃 이삭을 뽑아 손바닥에 올려놓고 ‘오요요, 오요요’ 강아지를 부르면서 손바닥을 좌우로 흔들면, 이삭은 보드라운 털을 세우고 몸을 흔들며 꼼작거린다. 다시 말해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듯 놓는 방향에 따라 기어가기도 하고 오기도 한다. 오늘도 밭뙈기에서 대파를 옮겨 심으면서(잠시 아린 허리를 펴는 동안에) 강아지와 놀았다.


줄기 있는 곳을 팔뚝 쪽에 두고 좌우로 흔들면 팔목 쪽으로 달려오고, 반대로 놓으면 손가락 쪽으로 슬금슬금 기어간다. 씨알 낟알에 붙은 털이 줄기 반대쪽으로 비스듬히 누운 탓이다. 그리고 이삭을 뽑아들고 몰래 또래 동무들의 귀나 목에 문질러 간지럼을 타게 했던 강아지풀이다. 말 할 수 없는 애옥한 삶을 살았어도 어린 그때 그 시절이 참 좋았다. 그래서 모든 과거는 아름답다고 하던가!
꽃 이삭은 줄기 끝에 달리고, 이삭꽃차례(한 개의 긴 꽃대 둘레에 여러 개의 꽃이 이삭 모양으로 피

는 꽃차례)로 피는데 가득 달린 긴 털들이 강아지꼬리털처럼 부드럽다. 이렇게 이삭은 동물(개) 꼬리처럼 생겼고, 가운데에(中軸)에 백색 털이 빽빽하게 나며, 이삭의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3mm 안팎이고, 검은 종자가 하나씩 들어 있다.  


강아지풀(green bristlegrass/green foxtail)과 비슷한 종으로는 바닷가의 바위틈에서 자라는 강아지풀보다 작은 ‘갯강아지풀’, 조(서숙)와 강아지풀의 잡종인 물가에서 잘 자라는 ‘수강아지풀’, 꽃 이삭에 달린 억센 털(bristle)이 자줏빛인‘자주강아지풀’, 그것이 황금색인 ‘금강아지풀’따위가 있다. 이삭빛깔은 처음에는 녹색이었다가 익어가며 여러 색으로 변해간다. 


그런데 강아지풀은 주로 농촌에 살지만 금강아지풀은 그보다는 좀 더 도시 가까이에 산다. 다시 말해 강아지풀은 땅이 건 농촌 밭 흙에서 사는데 금강아지풀은 모래나 자갈이 많이 섞인 더더욱 열악한 생육조건까지 산다. 그리고 강아지풀은 금강아지풀보다 키가 크기 때문에 쑥, 명아주, 망초와 같이 키가 큰 풀(고경초본, 高莖草本)이 속에서 어우러져 살지만 금강강아지풀은 그런 조건에서는 밖으로 밀려난다.  또한 강아지풀을 조(粟, Setaria italica/foxtail millet)의 야생종(原種, wild antecedent)로 본다. 가을날 잘 여문 강아지풀 이삭을 꺾어 손으로 부비면 낟알이 좁쌀처럼 잘 떨어지고, 곡식으로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굵직하고 먹음직스럽다. 예전에는 강아지풀 씨를 받아서 죽을 끓여 허기를 메우기도 했으니 강아지풀도 배곯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먹었다. 그리고 강아지풀 씨앗을 거두어들여 쌀, 보리나 조와 섞어 밥을 짓거나 죽을 끓여 먹을 수 있고, 갈아서 쌀가루와 섞어 떡을 해먹어도 좋다. 아마도 새 모이로 써도 될듯하다. 이렇게 강아지풀은 굶주림을 면하는 구황식물로 쓰였고, 민간에서는 9월에 뿌리를 캐어 촌충구제용으로 썼으며, 한방에서는 여름에 전초(全草)를 캐어서 말린 것을 약용으로 썼다. 더위 때문에 생기는 열독(熱毒)을 풀어주고, 종기, 옴, 버짐이나 상처가 났을 때도 썼다한다. 이름도 귀여운 강아지풀이 이렇게 쓸모가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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