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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22)-놀라운 만화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22)-놀라운 만화
  • 교수신문
  • 승인 2019.08.02 1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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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같은 철학을 할 수만 있다면…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나도 만화 좀 봤다. 초등학교 때 만화방에서 속독을 배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봤다. 만화방 아저씨한테 혼나면서도, 빌리려고 고르는 척하면서 웬만한 만화는 다 봤다고 할 정도다. 그리고는 두세 번 봐도 좋은 만화를 빌려놓고 밤새워 연거푸 봤다. 그런 점에서 만화에 대해서 감정이 좋다. 만화나 보고 있다고 야단치는 것에 대해서 여전히 이해를 잘 못한다.

점차 나도 구식이 돼서 그런지, 만화의 수준은 따지게 된다. 웹툰도 좋은 만화가 있는 반면, 그저 야한 만화도 있어서 그렇다. 옛날 같으면 가게에 놓지도 못했을 만화가 어린이들에게 퍼져있어 가슴이 아프다. 

다 커서는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덕에 다시 만화열풍에 빠질 수 있었다. 유학 하느라 놓친 것을 강사 시절에 재밌게 보았다. 우리 학교의 테니스 클럽 이름이 ‘공단’인데, 사람들은 제3공단, 제4공단이라는 공업단지의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테니스를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치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러니까 공포의 외인구단을 재밌게 본 나이 또래가 모여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정치색 없는 386세대의 다른 이름이라고나 할까. 

다들 알겠지만 교육적으로, 학문적으로 훌륭한 만화도 많다. 내가 놀랍게 본 것은 대만 작가 ‘채지충’(蔡志忠)이었다. 고전을 푸는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장자’를 보다가 표현이 심하게 과장되었다는 생각에 찾아보았더니, 원문에는 없지만 주석에서 그런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만화적 상상력의 근원이 주해였던 것이다. 백정이 소 잡는 이야기인 포정해우(庖丁解牛)의 고사에서 ‘살이 다 떨어졌는데도(해체: 해解라는 글자 자체가 소 잡는 것을 말한다) 죽은 줄 몰랐다’는 부분이다. 말년에는 불교 이야기를 많이 냈는데 그의 공력은 믿어도 된다. 학생들 고전 안 보면 그 만화라도 보게 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먹물색이 짙은 작가는 역시 이원복이다. 나는 어려서 그가 연재한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옷이 커서 어깨가 질질 내려오는)을 보았는데, 가끔씩 나오는 명언이 아직도 생각난다. 시관인지, 병호인지 배고파 밥을 먹으면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는 그 맛을 모른다’면서 눈물을 분수처럼 쏴댔다. 우리 시절은 미군이 원조해준 SP480 원조 밀가루로 만든 빵으로 영양을 지키던 때였다. 로망 롤랑이라는 이름을 그 만화를 통해 익혔는데, 나중에 사상가로서 그를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시관이와 병호도 어쩔 수 없다. 나에게는 시관이와 병호가 로망 롤랑과 늘 병렬된다. 

당시에 나는 작가가 누군지도 몰랐다. 공대생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한 참 나중의 일이었다. 이원복의 장형인 이정복 교수가 독일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주역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강사 시절 내가 나가던 학교라서 자주 뵐 수 있었다. ‘내가 독일 먼저 가서, 동생들 다 불렀지.’ 

이제는 학계에 몸담고 있는 이원복 교수가 독일 쪽 잡지를 통해 많은 양의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중국 이야기도 그렇지만, 일본 편이었다. 나는 아직도 일본사로는 이원복의 일본 편을 권한다. 중국도 잘 그려냈지만 근현대에 머물러 있는 반면, 일본 편은 한 권으로 똑 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철학을 하면서 나의 철학이 청룡열차처럼 롤러코스터의 재미를 지니길 늘 희구했다. 그러나 실패다. 근작 두 책도 ‘쉽게, 쉽게’를 외쳤지만 결국 학술적이지도 못하고 대중적이지도 못한 글이 나오고 말았다. 

만화(漫畫)처럼 만담(漫談)이 넘치는 철학을 못한다니, 재주가 재수다. 오호통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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