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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 프로테스탄티즘이 빚어낸 사실주의, 혹은 덧없음
미술비평: 프로테스탄티즘이 빚어낸 사실주의, 혹은 덧없음
  • 서성록 안동대
  • 승인 2003.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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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회화의 시대, 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을 보고

 안동대/ 미술학과

중세가 끝나고 남유럽에 르네상스가 번성했다면, 얼마 안 있어 북유럽에선 화란파(Dutch School)가 부흥했다. 르네상스 미술이 여전히 로마 가톨릭의 간섭 아래 자유롭지 못했다면, 프로테스탄트가 뿌리내린 화란에서는 교회의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고 창의적인 미술문화가 융성했다. 

화란은 16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통치아래 있었으나 그들이 신봉하던 로마 가톨릭의 타락과 사치, 허례허식 등으로 주민들의 원성을 샀다. 남부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방을 중심으로 새로운 질서운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통치자들은 조세부담 강화 등으로 핍박 및 수탈을 계속해갔다.

이같은 통치는 네덜란드의 많은 정당과 지역에서 칼빈주의를 강화시키는 한 요인이 됐다. 스페인 군대가 남부 네덜란드를 장악하자 많은 시민들과 지식인들, 그리고 예술가들은 스페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북부 네덜란드로 빠져나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찬란한 문화를 건설,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나라에서는 여전히 호화로운 교회미술이 주종을 이루었으나 여기서는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장르화 등 질적으로 새로운 미술의 탄생을 보게 된다.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은 순수한 형태의 미술을 낳았다. 위대한 세계관이 위대한 예술을 낳았던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 아래 화란파는 역사상 가장 참된 예술 및 기독교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데, 이 시대 미술이 ‘황금기(Golden Age)’라 불리는 것은 17세기를 관통한 높은 정신적 가치관 때문이다.  

초상화부터 살펴보자. 종전에 미술의 주인공들이 교회지도자들이나 성인들, 귀족, 왕족으로 제한되었다면 화란파에서는 상인들, 서민, 의사, 가정부, 농부, 사냥꾼 등이 등장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의식 아래 그들은 신분高下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인정받았다. 사람은 누구나 존귀하며, 행복을 영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삭 반 오스타드, 얀 스테인, 하브리엘 메추, 베르미어, 피터 드 호흐, 헤리트 다우 등은 모두 이런 맥락에 닿아 있다. 프란스 할스는 자연스런 표정을 넣어 인물의 생동감을 주었다.

풍경화는 신성의 계시로 자리매김 된다. 하늘이 넓고 크게 그려졌는데 이는 물론 화란에 산이 없기 때문에 대지에 비해 하늘이 유독 광활하게 묘사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을 크게 그림으로서 그들은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며 창조주의 세계는 무한히 광대하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이 시기 활발한 해상무역으로 해양화라는 독특한 장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풍경화를 제작한 화가로는 야곱 반 루이스달을 위시하여 호버마, 얀 반 호이엔, 얀 보트 등이 있다.

정물화 역시 일상적 삶의 부유를 표현하는 동시에 심오한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다. 스페인의 통치에서 벗어난 화란은 해상무역으로 큰 번영을 구가했다. 그들의 무대는 지중해, 신대륙,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까지 뻗어갔다. 화란의 화가들은 외국의 수입품들(베니스산 유리잔, 중국 도자기, 지중해산 복숭아와 레몬, 그리고 인도산 카펫 등)을 정물화에 넣었다.

그들에게 유리잔은 깨어지기 쉬운 인생, 반쯤 벗겨진 레몬은 감각적 욕망을, 꽃은 어떤 영화라도 오래가지 못함을, 시계는 세월의 덧없음을, 해골은 모든 육체는 영구하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정물화를 ‘바니타스 정물화(Vanitas Still Life)’ 즉 헛된 정물화라고 부르는데 이 말의 유래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이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 1:2)는 성서에서 나왔다. 정물화에서는 지상적 삶의 덧없음과 죽음의 피할 수 없음, 그리고 영원한 축복에 대한 소망을 각각 담고 있다. 피터 클라스존, 빌럼 헤다, 코르넬리스 드 헤임, 아브라함 미뇽 등이 포함된다. 

장르화에선 일상생활의 교훈을 담았다. 뜨내기 의사에게 이를 뽑는 사람, 상사병에 걸린 아픈 소녀를 의사인체 가장하고 찾아온 사내(얀 스테인), 애완동물을 돌보고 있는 듯하나 실은 엉뚱한 데에 욕심을 품고 있는 사내(프란츠 반 미리스), 담배 피우는 한량과 술마시는 임산부(피터 드 호흐) 등 강한 도덕심을 나타낸다. 경제적으로 번영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해이와 방종에 빠지지 않으려 했던 건강한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압권은 역시 렘브란트이다. 그는 화란파의 선두에 선 화가일 뿐만 아니라 북유럽 미술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화가다. 젊었을 때 현란한 장식과 색깔을 선호했다면 중년 이후에는 인간의 내면을 심오하게 통찰해냈다. 그의 심리묘사는 그의 자랑인 바로크적 명암법을 능가한다. 허름한 복장의 ‘노인’(1650)에서 보듯이 머리카락은 눈이 온 듯 허옇고 얼굴은 구릿빛으로 그을려 있으나, 그의 표정에서 묻어나듯이 외길을 걸어온 순수하고 의연한 영혼의 고귀함을 응시하게 만든다. 인간의 나약함 가운데서 인간의 참된 모습을 찾으려 했던 거장의 진면목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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