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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더 철저히 시행하라
금융실명제 더 철저히 시행하라
  • 전용덕 대구대
  • 승인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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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세평

전용덕 / 대구대·경제학

김영삼 前 대통령이 1993년 8월 12일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동,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금융실명제가 시작되었다. 1983년 장영자·이철희 사건에서 실명제가 처음 논의된 이래 10년 만에 실명제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우리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다. 금융실명제를 실시한지가 강산도 변한다는 '그 10년'(장·이 사건으로부터 20년) 즉, 긴 세월이 지나간 것이다. 만약 실명제가 없었다면 지난 번 정몽헌 전 현대 회장이 몇 백 억 원의 현금을 직접 전달하는 매우 위험한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명제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렇게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실명제는 아직도 제대로 정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전두환 前 대통령은 본인 소유의 재산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흉내낼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가명 또는 차명의 계좌가 있음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일이 어찌 전 前 대통령에게만 일어나고 있겠는가. 사흘이 멀다하고 터지는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는 실명제 위반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실명제를 제대로 실시하고 있다면 어찌 의혹을 남겨둔 채 사건이 종결되겠는가.
금융실명제는 금융거래의 투명성 못지 않게 고객의 각종 금융 정보를 금융기관은 물론 관련 국가 기관이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 조중동을 중심으로 언론사 세무조사가 강도 높게 진행된 적이 있었을 때, 이 당시 세무조사 받는 한 언론사의 고위직에 있었던 언론인은 세무관서가 영장 없이 자신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음을 필자에게 불만스럽게 말한 적이 있다. 이 사례는 고객의 금융 정보에 대한 국가 기관의 횡포가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무엇보다 계좌추적권을 가진 국가 기관이 많다.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등 7개 국가 기관이 계좌추적권을 가지고 있다. 또 이론적으로 타당하지 않는 경우에도 계좌추적권을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위원회는 재벌의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조사하기 위하여 비록 한시적이지만 계좌추적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당초 내부거래를 위하여 설립되는 조직이기 때문에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잘못된 거래로 규정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틀린 것이다.
현재의 금융거래 보호법은 사실상 금융기관의 고객 정보 보호가 국가기관의 압력으로부터 매우 취약한 것처럼 보인다. 고객 정보를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법원의 영장을 발부 받도록 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계좌추적권과 같은 예외는 최대한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다.  
금융실명제의 목적은 정치 자금과 기업 운영의 투명화, 고소득 계층의 탈루소득 봉쇄로 인한 조세형평성 제고 등을 통하여 부정부패와 비리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한 마디로, 금융거래의 정상화로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국민의 준법정신과 함께 국가 기관도 고객 정보를 보호하는 원칙을 지켜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금융실명제 관련 법 위반 시에는 양쪽 모두에게 강력한 벌칙이 가해지도록 해야 한다.
집단별로 나누어 보면, 서민과 중소기업은 고위층과 대기업에 비해 실명제를 위반할 자원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센티브도 없다. 공개 거래보다는 비공개 거래가 실명제 위반 가능성이 크다. 결국 실명제의 성공여부는 고위층, 대기업, 비공개 거래에 달려있다. 당국도 이 점을 고려하여 그들을 감시·감독하는 일에 자원을 집중하여야 할 것이다. 
금융실명제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외과용 메스에 비유할 수 있다. 금융실명제를 제대로 실천하는 것은 좋은 메스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환자가 면역력이 약해 병에 잘 걸리는 체질이라면 아무리 좋은 메스가 있더라도 무용지물이다. 병을 찾아 메스를 대기 전에 환자의 체질을 강화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큰 정부는 각종 부정부패와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크다. 즉 큰 정부는 면역력이 약한 체질이라는 것이다. 면역력이 강한 사회 즉,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길은 작은 정부 하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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