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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다의 반대말은?
감사하다의 반대말은?
  • 교수신문
  • 승인 2019.07.22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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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면서 유학도 어학연수를 다녀온 경험도 없다. 단지, 영어권 국가인 미국에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두어 번 가본 것이 전부였다. 영어로 일기 한 번 써보지 않았고, 그나마 대학원에 와서 논문의 초록 정도를 영문으로 써본 일이 영작 경험의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교수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영어로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에 나는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우리 연구실에는 유학생 출신이거나 해외거주 경험이 있는 몇몇 후배들이 교수님과 함께 SCI논문 투고를 목표로 연구를 진행하던 중이었고, 내가 국내 학술지 투고를 주로 담당했었기 때문에 학위논문도 당연히 국어로 쓸 생각이어서, 그 제안은 뜻밖이었다.


평소 BK연구사업단을 비롯하여 여러 신진연구자 사업에 참여하면서 단순히 SCI급 논문을 써야 한다는 생각보다 국내저널이든 해외저널이든 영문으로 논문을 투고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국가 간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글로벌 시대에 내가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얻었더라도 국내 연구자들만 읽을 수 있다면 연구 본연의 목적과 사회기여는 축소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여러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하면서 한국의 청소년 문제가 국제 이슈를 대변하기도 하고 해외 연구자들의 관심거리가 되는 것을 체험하였다. 즉, 국가 간 학술연구 교류 협력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대에 국제적 수준의 연구는 연구자들에게 필연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내 연구에 대한 글로벌 연구자들의 다양한 피드백이 논문의 질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역량에도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 지를 체험했기에, 막연한 미래에 영어로 논문을 써야한다는 은근한 압박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의 아니게 나의 목표는 ‘글로벌 연구에 참여하는 연구자’였으니 말이다.


영어로 학위논문을 쓰고 바로 국제학술지에 투고하면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못하겠습니다’ 아니면 ‘고민해보겠습니다’ 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그 순간 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해보겠습니다” 였다. 권위주의적이거나 교수님의 요청에 거절을 못하는 경직된 분위기도 아니었는데, 순간 해 보겠다고 대답해 버린 것이다. 얼떨결에 당면한 상황은 나에게 고통의 시간이었다. 수많은 인용문을 찾아보았고, 수십 번 같은 문장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 했다. 알고 있는 단어 하나조차 참고 가능한 모든 사전을 찾아보았고 난생 처음 관련 영문법 인터넷 강의도 들어야 했다.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영어로 직접 표현하는 일은 생각자체를 뒤죽박죽 만들었다. 그렇기에 일주일에 고작 한 페이지 정도 간신히 써 내려갔다. 논문을 쓰는 사람 모두 그렇겠지만, 단 하루도 연구주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고 떠오르는, 하고자 하는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를 밥을 먹으면서도, 잠을 자면서도 고민했다.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풀어내려고 하니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파일명에 ‘__최종’이라고 입력했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읽으실 순 있을까? 얼마나 황당하실까?’ 하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지도교수님께 피드백을 받기 위해 메일을 보내고 1주일 뒤 회신 받은 파일은 검토 기능으로 꼼꼼한 수정이 가득했다. 교수님은 학위논문을 심사일이 다가올 때 까지 나를 그저 가만히 기다리며 응원하실 뿐이었다. 종종 밥도 사주시며 나의 정신과 건강을 챙기셨고, 영작할 때 무료로 기본적인 문법을 교정해주는 유용한 어플리케이션을 추천해 주시거나, 내가 도움을 청하면 흔쾌히 도우셨다. 그렇게 교수님은 나를 최종 심사까지 이끌어 주셨고 그렇게 작성한 논문을 현재 SCI급 저널에 투고하여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연구에 대한 열정이 뛰어난 지도교수님 덕분에 다양한 연구에 참여하면서 5년을 함께했다. 교수님께서 제자들을 지도하는 방식, 제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한 단계 더 앞선 도전을 하게 하는 교수님만의 지도 방식을 경험하며 배웠다. 교수님은 본인이 노력해서 얻은 지식이나 정보를 제자가 반복해서 그 정보를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기 보다는 스승으로부터 약간의 팁이나 도움을 받아 더 멀리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적극적 조력자였다. 성공했던 자료를 공유하고 그것을 활용해 제자들이 더 높은 도전을 하게 했고, 실패했던 자료를 공유하며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가르치셨다. 도전과제를 주실 땐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가이드를 해 주셨고 제자 혼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교수님도 함께하셨다. 특히 자신 없어 주저하는 게 특기인 나에게 교수님은 기회를 주실 때 마다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 추천해요’, ‘자료도 많이 있고 내가 도와주면 되니까?’ 라며 용기를 주셨다. 무엇보다 교수님은 걱정이나 주저하는 마음 없이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가장 든든한 자원이었다. 그런 도움으로 박사과정 동안 다양한 연구방법을 배워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국제학술대회에도 참여하며 한 학기에 한 편식 논문도 투고 할 수 있었다.


교수님께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이 말 뿐이다. “저도 교수님 같은 선배,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교수님으로 인해 연구하는 방법을 비롯해서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배웠다. 그리고 가만히 기다리며 응원하는 법을 배웠다. 이것이 힘든 시기를 지나는 제자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된다는 것을 교수님은 아셨을까? 나는 위기에 놓인 아동과 청소년을 상담하고 그들에 대해 연구한다. 내가 스승으로부터 배운 대로 두려움과 좌절의 위기에 처한 청소년들에게 가만히 기다리며 응원하는 것부터 실천한다면, 교수님이 나와 소통하셨듯이 진정성 있게 그들과 소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디선가 감사하다의 반대말은 ‘당연하다’ 라고 들은 적이 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그래서 내가 지도교수님을 만난 것이 감사하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영어 논문쓰기를 하고 있고 어떤 분야에서는 ‘당연한’ 영어로 논문 쓰기 경험을 이렇게 거창하게 써본 이유는 이러한 도전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렵고 불가능할 거라 믿었던 도전을 끝까지 해낼 수 있게 용기를 주신 교수님께 감사하고 나 자신에게도 고맙기 때문이다.


끝으로, 개인적 경험으로 초보 영어논문쓰기에 도전하는 연구자에게 사소한 팁을 공유한다면, 첫째, 아이디어를 국문으로 쓰고 다시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은 추천하지 않는다. 언어는 문화이기에 영어식의 사고가 익숙하지 않지만, 생각하는 바를 영어로 직접 풀어내는 일이 두 번의 작업을 거치지 않아 시간적으로도 더 효율적이다. 둘째, 나는 국어로 논문을 쓸 때도 의미 전달을 명확히 하려다 보니 글을 길게 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영어로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가능한 간결하게 쓰려고 애를 많이 썼으며, 그렇게 함으로 오히려 내가 의도한 바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능한 짧게 쓰고 이후 의미 전달이 약하다 싶을 때 보완하라. 셋째, ‘영어로 논문쓰기’와 같은 책이 초기에 도움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통용 되는 학술적 영어표현과 실제사례들이 주제별로 제시돼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기본적인 문법을 교정해주는 무료 프로그램 또는 어플리케이션을 초기에 사용하는 것도 유용하다.  
              
김신아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상담원
성균관대학교 아동청소년학과에서 청소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소년의 ‘Online Risk Behavior and Citizenship’을 주제로 논문을 썼으며, 현재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서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문제와 관련하여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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