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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강 위기에서 인기 강좌로
폐강 위기에서 인기 강좌로
  • 김경애 동덕여대
  • 승인 2003.08.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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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김경애 (동덕여대, 여성학)

‘여성학주제세미나’ 강좌는 매시간 학생들이 발표와 토론을 해야한다는 부담 때문에 기피대상이 되어 번번이 폐강되었다. 처음으로 이 강좌를 맡게돼 걱정이 앞섰지만 30명이라는 많은(?) 학생이 수강신청을 해 안도하며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 강좌의 부제를 ‘내가 바꾸고 싶은 것들’이라 붙이고 자기자신이나 주변의 여성들이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불편하고 억울해 바꿨으면 하는 것을 찾아내고자 했다. 기성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생각을 끌어내고, 실제로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성취해나가는 기쁨을 통해 학생들이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갖도록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던 것이다.  

 

 

첫 시간에 강의 계획을 설명한 후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 수는 줄어 겨우 12명만 남았다. 하지만 교수협의회가 결성되고 학교 당국과의 협상등으로 다행히 이번 학기부터 10명만 채우면 전공과목 강좌를 할 수 있는 규정이 생겨 겨우 강의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첫 몇 주간에는 간략하게 여성운동사에 대해 강의했는데, 이 강의를 통해 학생들이 현재 여성들이 누리고 있는 삶조차도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를 바랐고,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책무에 대해 생각하길 희망했다.

 

 

이어서 과제발굴을 위해 난상토론이 진행됐는데,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관혼상제에서의 남성중심성과 남녀불평등, 직장 내에서의 휴가관련 성차별, 대중교통내의 성추행, 화폐에 여성인물이 없는 것 등을 주제로 발굴하였다. 학생들은 각 주제로 분반을 나누어 조사해 매주 자신들의 연구 과제의 진행사항을 발표했고 문제점을 토론함으로써 연구 진행 방향을 수정, 문제점을 해결해 나갔다.

 

 

또한 대중교통내의 성추행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하면서 한편에서는 대처 요령을 팜플렛으로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안을 만들어나갔다. 또한 보건복지부의 대통령령인 가정의례준칙에 남녀차별 규정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군대에서 조부모와 외조부모의 휴가에서 차별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 부계혈통 중심사회가 여성(어머니)과 그 가계를 차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남성들까지도 차별을 받는다는 실증적 자료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동안 여성학에서 여성해방이 남성해방이라고 설명해도 믿지 않은 남성들을 설득할 수 있는 작은 사례를 발견해냈던 것이다. 

 

 

학생들과 함께 여성부를 방문하여 위의 두 사례를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시정해 줄 것을 청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이 성립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부 부처를 방문하고 안을 제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공공기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그러한 기관이 국민을 위한 것이며 자기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된 것 같다. 결국 가정의례준칙 관련사항은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군대 휴가에서의 성차별은 국방부 장관 앞으로 각각 시정 요청 서한을 보냈고 국방부는 앞으로 시정하겠다는 서한을 보내왔다.

 

 

우리나라 화폐에 여성인물을 넣자는 문제의식을 가진 팀은 한국은행과 조폐공사에 문의해 외국사례를 조사했고 동시에 여성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시행해 일곱명의 여성을 후보로 선정했다. 한편, 전체 수강 학생들은 이를 우리나라 화폐에 여성인물을 넣기 위한 운동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여성인물을 화폐에! 시민연대’를 결성하였다. 그 동안 조사한 자료를 사이버상에 카페를 열어 올려놓고 일반인들의 참여를 유도하면서 정부가 정책으로 채택하도록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학기가 끝난 방학중임에도 불구하고 회원을 확대해 나가고 거리 서명 운동을 하면서 수업이 계속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자신의 실제 능력보다 스스로를 낮춰 생각하는 학생들을 일으켜 세워 자부심을 갖게 하고 활력을 불어넣어준다면 방학중에도 수업이 계속되어도 무방하다. 그러나 갑자기 나의 강의가 인기가 있어 많은 학생이 모여들면 이러한 강좌를 또 다시 하기 어려워질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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