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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무덤기행] 무덤마저 사라질 때…무덤은 ‘덤’을 떼어내고 참된 ‘無’가 된다
[최재목의 무덤기행] 무덤마저 사라질 때…무덤은 ‘덤’을 떼어내고 참된 ‘無’가 된다
  • 교수신문
  • 승인 2019.06.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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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 ‘無의 덤’을 생각하다
성철스님 사리탑
성철스님 사리탑

 

1. 무덤에서 삶을 생각하게 된 ‘계기’

삶을 정리하는 방향에 서서

지난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나는 삶의 허망함 때문에 ‘죽음에서 삶을 생각한다’는 화두를 붙들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서서히 나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방향에서, 인생 공부를 좀 해보고자 일부러 주제를 그렇게 정한 것이다. 이제 비로소 철이 든 것이다. 언젠가 나는 이 지상에서, ‘지금?이곳’이라는 상대적 ‘시공간’을 잃고, 영원 그 ‘절대’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니 그 절대라는 시공간도 결국은 사람들의 ‘기억’ 속 이미지나 기호로만 남아 ‘추상적’으로 떠돌다가 영영 물거품처럼 흔적을 지울 것이다. 무덤이라는 표식마저도 끝내 사라져버린다면 무덤은 ‘덤’을 떼어내고 참된 ‘무’(無)가 되는 셈이다.

‘시’(時)라는 것

표식은 공간적 좌표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그것(=공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분절화하여 기억하고 추억한다. 공간적 매개 없이는 시간을 붙들어낼 수가 없다. 
참고로 ‘시’(時)라는 말이 시간(日)을 ‘손’(寸←手)으로 ‘딱 붙드는=캐치하는’(土←止) 것 즉 타이밍을 의미한다. 시절은 시간(時)의 마디마디(節)이다. 그 마디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분절화해야 한다. 시계는 시침, 분침, 초침으로, 보이지 않는 시간을 명확하게 공간 속에서 숫자로 바꾸어 그 ‘경과’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알 길이 없다. (말이 나온 김에) 그렇다면 ‘시’(詩)라는 것은 무엇인가? 언어(言)의 사원(寺)이니 신전이니 제단이니…온갖 수사가 있으나 나에겐 납득이 잘 안 간다. 앞서 말한 시(時)처럼, 시(詩)는 어떤 대상에 대해서 마음속에서 옹알이하며 맴도는 뜻(의지)을 직관해서 말(言)로 ‘딱 붙드는=캐치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워딩’이다. 마음을 ‘딱 붙드는’데에는 언어-문자라는 ‘보이는 것’을 매개로 해야만 한다. 생일 축하 파티, 달력, 무덤이라는 표식, 별 자리 이동에 관련한 천문학 등등은 모두 보이지 않는 무한 시간을 보이는 상대적 시간으로 분절화 해내어 기억, 추억, 회상, 설계, 희망하려는 인간적 노력들이다. 참 눈물 나게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들이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나는 집요하게도 삶 쪽에서 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쪽에서 저쪽을 쳐다보며, 저곳을 어둡고, 두렵고, 무서운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마 살아있는 자들은 대다수 ‘지금?여기’의 관점에서 ‘이 다음?저기’를 구분하고 상대화시키며, 전자보다 후자를 낮추거나 배제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관념일 뿐,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지금?여기’에 ‘이 다음?저기’는 그림자처럼 딱 붙어있어 뗄 수가 없다. 전자가 갑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후자가 갑이고 전자는 을이다. 저쪽에서 이쪽을 기다리며, 어서 오라고 항상 손짓하며 부르고 있다. 그 손짓이나 부름은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나 잘 보고 잘 들으면 잘 보이고 잘 들린다. 천지의 허공과 땅, 산천초목이 다 손짓이고 부름 아닌가. 우리가 돌아갈 곳, 함께 만나 섞이며 영원히 같이 해야할 존재들이 그것 빼고 무엇이 있겠는가. 늘 친구처럼 대화하고 감사하고 고마워해야 할 것이 바로 허공과 땅과 만물들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저쪽(=죽음)의 절대적 시공간에서 이쪽(=삶)의 상대적 시공간을 집요하게 한번 탐구해보려는 것이다. ‘생에서 사를’이 아니라 ‘사에서 생을’이라는 식의 관점 전환이다.  
 
‘죽음?무덤?현재적 의미’

최근 나는 이곳저곳으로 떠돌며, 이 세상을 살다 떠난 사람들의 ‘무덤’ 앞에 서 본다. 어떤 느낌으로 내가 그 앞에 서 있는지 내 내면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이런 일들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무서운 무덤이 아니라 한 마디로 ‘즐거운 무덤 탐방’이다. 특정 종교나 이념에 상관없이, 내가 가서 보고 싶은 곳을 정해서, 자유롭게 발걸음을 옮겨 다니며 죽은 자들의 흔적을 대면하는 것이다. 그냥 여행이 아니다. ‘죽음을 찾아다니는 여행’이거나 ‘죽음 공부가 있는 유랑’이다. 마땅히 그렇게 불러야 하리라. 

죽은 자들을 내 앞에 다시 불러내어, 내가 그들에게 듣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그들이 살아있는 나에게 전해주는 무언의 충고, 가르침 같은 것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대부분 사자의 ‘글’=‘문자사리’(文字舍利), 작품, 유품, 나아가서는 그 사람의 생애 속에 ‘살아계신다’. 여기 안계시지만 그분은 거기에 진실로서 계신다. 그 나머지는 산 자들의 기억이나 술회 속에 남아 건재하다. 그리고 여기서만 그치지 않는다. 무덤의 형식이나 그 주변의 환경들, 사자의 행적이나 흔적, 유적을 둘러 싼 사업들마저도, 그 사람이 통제했거나 못했거나 간에, 모두 무언의 충고와 가르침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사자들은 여기에 없으나 이런 저런 방식으로 흩어져서 살아 있다. 이렇듯 ‘죽음→무덤→현재적 의미’라는 방식만이 아니라 ‘죽음←무덤←현재적 의미’이라는 방식도 가능하다. 

무덤은 지나간-잊혀진 사건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 현재와 현재의 대화이다. 일차적으로는 ‘나 자신과 사자’의 대화를, 심층적으로는 ‘나 자신과 내 내면’과의 대화를 뜻한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후자라고 생각한다. 왜냐고요? 죽음은 남의 문제가 아니다. 평소 나 자신의 문제로서 껴안고 있다. 그러니 내가 내 죽음을 ‘알고 있고, 해명하고, 말해야 하는’ 사건인 것이다. 

“문이 닫히는데…”

무덤 앞에 서서 나는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내 생각의 흐름을 좇아가면서 내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정리하고 고심해야만 한다. 그것은 결국 내가 나를 만나 대화하는 길로 접어드는 과정을 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어느 신문에서 성철스님의 상좌 원택스님(해인사 백련암 주지)과 만남을 가졌다. ‘죽음은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문이 닫히는 순간입니다. 이쪽 세계도 모르고 저쪽 세계도 모르는 순간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살아서 하나씩 둘씩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죠. 문이 닫히는데 뭘 기억하고 뭘 챙겨서 가겠어요.” 쉽고도 간명한 말씀이다. 

‘문이 닫힌다’는 것은, 밝았던 날이 저물어 밤이 되는 것, 그래서 훤했던 것들이 깜깜해지는 것, 그래서 모든 것이 제로, 무(無)로 가는 길을 뜻하리라. 봄이 오면 다시 그것이 가버리고 여름이 오듯, 여름이 오면 다시 가버리고 가을이, 겨울이, 다시 봄이 오고 가듯, ‘온 것은 반드시 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간 것들의 흔적은 끝끝내 다 지워진다. 간 뒤에 남는 것, 그 자리에 덧보태는 것은 ‘덤’이다. 

그렇다면 무덤은 액세서리(장식품, 치장품)의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무덤을 ‘무(無)의 덤’이라 읽는다. ‘덤’을 사전에서는 ‘제 값어치 외에 거저로 조금 더 얹어 주는 것’이라 한다. 삶의 값어치 외에 남은 자들이 ‘거저 조금 더 챙겨 준 것’이 무덤이다. 덤이라면, 사실 무덤은 만들어도 되고, 안 만들어도 된다. 기어코 만들지 않아도 되지만, 이왕 덤으로 만든다면, 작으면서도 소박한 편이 낫다. 높아진 봉분, 거대한 비석들, 넓은 묘 터는 모두 살아있는 자의 욕망과 권력과 콧대와 체면과 위상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잘 빗은 머리칼, 날 세운 양복, 빛나는 구두, 돈 들여 탱탱하게 당긴 주름살, 당당한 덩치나 키, 큰 목소리처럼, 그것은 하나의 정치이다. 죽은 자를 산 자들의 욕망-논리로 재해석해낸, 이른바 산 자들의 ‘에고의 얼룩-때-그림자-자국’이다. 더 이상, 더 이하도 아니다.

2. ‘성철스님 사리탑’을 찾다: ‘무언-침묵’=‘가르침’이라는 형식 

* 이 내용은 성철선사상연구원에서 발행하는 『고경』06(2018 Vol.62)에 실렸던 글을 보완하여 연재함을 밝혀 둔다.

4월, 어머니가 떠나고

지난 해 4월 한창 꽃 피던 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태어남에(人之生也), 우수와 함께 살아간다(與優俱生)’(『장자莊子』 「지락至樂」)고 했던가. 자식들이 많아 평생 고생만 하시다가 가신 어머니. 죽어서야 비로소 꽃 산천에 허리 쭈욱 펴고 편히 쉬시리라. 이제 꽃이거나 저 하늘의 별이 되셨으면. 아니 차라리 훨훨 나는 새가 되시기를 빈다. 안부를 여쭈러 무심결에 눌러대던 전화도 걸 길이 없어, 황사 자욱한 길 위 흐드러지게 핀 이팝나무 조팝나무 밑에서 서서, 나는 서러워 펑펑 울었다.

5월 1일 노동절 아침, 허망 속에 흔들리는 본밑 마음을 달래고자 딸아이를 꼬드겨 데리고서 해인사를 찾았다. 생전에 독실한 불자로 사셨던 어머니도 못난 자식 따라 함께 하셨으리라. 
1992년, 김국환이 부른 노래, ‘타타타’를 중얼대며, 타박타박 흐린 날의 산길을 밟고 오른다. 이 풍진(風塵) 세상∼, 바람과 먼지만 떠도는 길. 계곡의 푸른 수륜(水輪) 밑으로, 내 마음은 흔들리며 풍륜(風輪) 속을 넘는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 비에 젖어 사는 거지/그런 거지~ 음음음 어 허허~
산다는 건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우리네 헛짚는 인생살이 한세상 걱정조차 없이 살면/무슨 재미~ 그런 게 덤이잖소…”

노래가 노래로 들리지 않는다. 타타타(tath?t?). ‘있는 그대로’. 진여(眞如), 여여(如如), 진실(眞實)을 생각한다. 노래를 듣다보면, 눈물도 덤이고, 아픔도 웃음도 기쁨도 근심걱정도 모두 덤이 되는 것 같다. 그래, ‘희노애락애오욕’의 칠정이 지어내는 그림들, 그거 모두 수지맞는 장사이고, 한 탕 건진 것 아닌가. 허, 허! 허탕(虛蕩)은 아니란 말인데…, 그 뜻을 위로 삼아 걷는다.

허망에게도 ‘감사’를

성철스님 사리탑 설명문

 

“신이여 내가 없으면 당신은 뭣 하시겠습니까?(Was wirst du tun, Gott, wenn ich sterbe?)”라고,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오히려 신을 위로하는 시를 쓴 적이 있다. 시 속에서 그는 ‘내(인간)가 있으므로 당신(신)이 있지 않냐?’고 다그친다. 인간이 요란스레 찾아대는 위대한 신이 어쩐지 찌질해 보인다.    

그렇다. 몸이 있기에 영광도 오욕도, 신(神)도 희망도 사랑도 있는 법. 몸이 없으면 없었을 이 지상의 역사와 종교, 숱한 계율과 가르침들. 몸은 결국 ‘썼다가 지우는’(sous rature) 것이리라. 고로 관념도 역사도, 종교도 희망도, 사랑도 미움도, 몸 따라 나선 그림자들, 지워지고 말 생각의 얼룩들이다. 

애당초 불교에서는 몸을 땅[地] 물[水] 불[火] 바람[風] 즉 사대(四大)가 화합이라 했다. 사대는 각기 다 여의고 마는데, 허깨비 같은 이 몸은 무엇인가? 어느 곳에 자리해 있는가? 이렇게 묻는다. 잘 보라, 머리카락, 털, 손톱, 치아, 피부, 근육, 골수, 살점, 때, 색(色)은 땅[地]으로, 침, 눈물, 피, 콧물, 정기(精氣), 소변, 대변은 물[水]로, 체온 같은 따뜻한 기운은 불[火]로, 움직임은 바람[風]으로 모두 다 돌아가는 것 아닌가.(『원각경(圓覺經)』 참조) 세상을 여읜 자들은 모두 ‘있는 그대로’가 되는 거다. 그래서 어느새 내 곁에, 지금 여기 눈앞에, 떡 하니 스스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꽃으로, 나무로, 먼지로, 햇살로…, 인연의 고리를 좇아 출렁이며 생겨났다 여의고, 여의었다 생겨나는 것이라면, 가신 나의 어머니도 지금 여기 와 계신 것이리라. 아차! 잊고 말았구나! 땅에도 물에도 바람에도 ‘감사하다!’는 두 손 인사를. 환영(幻影)과 허망(虛妄)에게도, 그저 두 손 모아 ‘감사합니다!?’. 예를 차려본다.

성철스님 사리탑 앞에서, 뜬금없는 ‘부도’ 생각 

어느새 대웅전을 오르는 길목, 일주문 근처의 퇴옹당 성철스님(1912년~1993년)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舍利塔) 앞에 선다. 퇴옹(退翁)은 호이고. 성철(性徹)은 법명이다. 1993년 11월 4일 열반 후, 다비를 하여 여기 진신사리를 수습해두었다.

사리탑을 부도탑(浮屠塔)이라고도 한다. 부도(浮屠)라. 뜰 부, 죽일(도살할) 도. 아니, 신성한 탑에 이런 글자를 왜 붙였던가? 한자 뜻으로 보면 이해가 잘 안 된다. 그래서일까. 부도의 죽일 ‘도’ 자를 그림 ‘도(圖)’ 자로 바꿔 쓰기도 한다. 사실 부도는 붓다(Buddha)의 음역(音譯)이기에, 새길 필요도 새겨서도 안 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의 ‘남무’를 산스크리트어 ‘나마스’(namas: 歸命, 歸依)의 음역인줄 모르고 ‘남쪽에는…없다’고 번역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부도(浮屠)는 중국어 발음으로는 푸투(futu)이다. 붓다(Buddha)의 음역이라는 설 외에, 스투파(stupa)의 음역인 솔도파(率屠婆)나 탑파(塔婆)의 전음(轉音)이라는 설도 있다. 어떻든 부도는 불(佛), 탑(塔), 승(僧)을 다 의미하는 것으로 쓰인다. 여기서 부도가 붓다(=불)와 탑 공용으로 연결되어 쓰이는 것은 이해된다. 왜 그런가. 불교 내에서 붓다가 입멸한 뒤, 그 진신사리를 모신 탑이 신앙 대상이 된 다음 역사적 몸의 그분(=붓다)이 지금 여기 안 계시니, 붓다의 ‘사리탑’이 곧 ‘붓다’ 그 자체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사리탑으로 대치(代置)된 붓다 즉 ‘환유’(換喩)의 방식을 통해 이제 그분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위대한 정신적 존재인 ‘붓다’를 그 물질적 흔적이 ‘사리탑’과 좀 구별할 필요가 있다면, ‘부도’에다 ‘탑’ 자를 일부러 붙여서 부도탑이라 강조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부도’와 ‘부도탑’이 같이 쓰이는 것도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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