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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16)-우리 공화국은?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16)-우리 공화국은? 
  • 교수신문
  • 승인 2019.06.24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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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사람도 모르는 공화국 이야기

 

우리 공화국은 제 몇 공화국? 가끔씩 이런 질문을 한다. 학생들에게도 묻고 교수들에게도 묻는다.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수들도 전공자가 아니면 갸우뚱거린다. 

‘우리 공화국’이라고 하니 오해할까 두렵다. 공화국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북녘 사람 덕분이다. 그러나 분명 우리나라는 공화국이고, 그것도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영어(‘Republic of Korea’)에서는 분명하다.

국제적으로는 ‘남쪽’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지만, 정식으로는 ‘코리아, 그것도 공화국’(‘Korea, Republic of’)이다. 북쪽에서는 길게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합쳐(‘DPR Korea’) 쓰니, 독립적인 공화국 명칭은 우리가 선점한 셈이다. 중국과 대만을 구별할 때, 오직 ‘인민’이라는 표현(People’s China)으로 편지를 보낸 것처럼, 북쪽도 오히려 ‘인민’을 강조해야 할 텐데 우리말 용법상으로는 ‘공화국’을 더 내세우니 얄궂다. 아무리 공화국의 이념이 인민을 포함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공화국이라는 용법의 정의다. <제5공화국>이라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인기몰이를 한 적이 있다. 군부독재시절의 정치 이야기인데, 배우가 비슷하게 꾸미고 나와 펼치는 닮은꼴 연기가 화제였다. ‘임자’부터 ‘좋~아’까지. 

우리 헌법은 1987년 개정된 헌법이다. 그해 9월 국회에서 찬성 254표 반대 4표로 통과되고 한 달 후 국민투표에 부쳐져 93.1%의 찬성으로 전격적으로 개헌되었다. 주된 내용은 대통령 간선제에서 국민의 직선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87년 헌법은 6.10항쟁을 기반으로 국민의 염원이 반영된 것이었다. 군부가 대통령을 하더라도 제발 한 번씩만 하라는 것이었고. 장기독재는 결코 안 된다는 국민적 결의였다. 

따져보자. 대한민국 수립이후 우리는 이승만, 장면, 박정희라는 국가지도자를 만났다. 제2공화국은 유일하게 내각책임제와 의회 양원제였기 때문에, 윤보선 대통령이 있었지만 국무총리인 중심이 되었기 때문에 ‘장면 내각’이라는 말로 통용된다. 그런 점에서 문자적으로는 우리는 수상제를 해본 적이 없다. 임금이 없는 까닭도 있지만. 

그리고는 제3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장기집권의 과정에서 헌법을 바꾸는 바람에, 제3공화국의 대통령이 곧 제4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이른바 유신헌법으로 미화되는 제4공화국 헌법인 것이다. 당시 헌법 자체는 이미 총7차례나 개정되었지만, 대통령의 선출방법과 임기 등 정치체제가 변경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간에 벌어진 개헌은 별도의 공화국으로 치지 않는다. 
오늘날 헌법은 9차의 개헌을 거친 제10호 헌법이다. 그렇다면 공화국은? 여전히 제6공화국이며, 헌법도 제6공화국 헌법으로 불린다. 

제6공화국 헌법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벌써 6명에 다다른다. 공화국 수립 이후 국가원수로는 장면 총리 외에는 모두 대통령으로, 장면 내각 당시의 윤보선 대통령을 치면 모두 12명이다. 이승만(3회), 박정희(5회) 그리고 기간으로는 어정찌지만 전두환(2회)을 빼놓고는 모두 단임이다. 현임 대통령이 19대다. 대한민국 대통령 절반이 제6공화국 헌법으로 선출된 것이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제6공화국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헌법이 바뀌지 않더라도 실제상 정치권력의 구조와 국민의 삶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쉽게 바뀌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경성(傾性) 헌법이라 불리는데, 그것은 88년 이후 30년 동안만 체면을 살렸다. 그 전에는 40년 동안 다섯 차례나 크게 바뀌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정치 제도보다는 인간의 수준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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