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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계쟁점:대한민국학술원의 운영과 구성
학계쟁점:대한민국학술원의 운영과 구성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8.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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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에 '명예'는 있는가?

대한민국학술원(원장 이호왕, 이하 학술원)은 학계에서 가장 명예로운 학술기관이다. “학술원 회원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학을 졸업하고 학술연구의 경력이 30년 이상인 자로서 학술발전에 공적이 현저한 자”라는 규정에서 볼 수 있듯이 학덕이 높은 원로학자에게 자격이 주어진다. 그러나 학술원이 그 위상에 비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비판이 그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학술원이 학계의 어른으로서의 역할이 부족하다는 것.

                                학술원, 학계의 어른인가

 학술원 설립의 의도는 “학술발전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학자를 우대․지원하고 학술연구와 학술진흥에 관한 정책 자문 및 국내외 학술교류 등을 통해 학술발전에 이바지한다”였다. 그러나 실제로 일반에게 알려진 활동은 대한민국학술원상 운영과 지난해부터 시작한 ‘우수학술도서 선정 지원’ 사업 정도다. 매년 국제세미나를 개최하고,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알고 있는 학자는 드물다. 또한 학문발전의 방향에 대해 이렇다할 공식적인 견해도 제시하고 있지 않아 실제로 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거의 없다. 한 교수는 “학술원에서 이렇다할 연구성과를 내는 것이 있느냐”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술원에 대해 학자들이 특별한 기대를 갖지 않는다. 30~40대 젊은 교수들은 학술원이 “편하게 개인연구를 하면서 노년을 소일하는 곳” 아니냐는 입장이다. 또한 “각 분과마다 1~2명의 원로교수들만이 있으니, 학제간 대화는 가능할 지 몰라도 솔직히 학문적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라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에 이혜순 국어국문학회 회장(이화여대 국문학)은 “젊은 학자들은 학술원에 무관심한 경우가 많지만, 중견학자들의 경우에는 학술원이 굉장히 명예로운 곳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의견을 밝혔다. 즉 학술원의 의미는 ‘명예로운 곳’에 정박하는 이상으로는 없다는 것.

학술원 회원의 전공별 구성비율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현재 회원 구성은 198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인문사회과학부회와 자연과학부회에 각각 75명의 회원수가 할당돼 있다. 문제는 전공별 회원배당이 형평성이 없거나 몇몇 전공의 경우 아예 누락돼 있다데 있다. 누락된 전공으로 대표적인 게 신문방송학과 사회복지학. 노기영 한국언론학회 총무이사(한림대)는 “신문방송학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팽창했음에도, 학술원 분과에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은 학술원이 현실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학회 차원에서 구체적 변화를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학술원 총무과 김지홍씨는 “예산 확보와 법조항 개정 등과 맞물려 진행이 쉽지 않다”라고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회원 배정에서 ‘손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요구를 무시하고만 있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회원 선출과정 투명하게 공개해야

일부 학자들은 회원 선정과정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대의 한 교수는 “학술원 회원 선정과정이 지나치게 폐쇄적인 것은 아니냐”라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현재 학술원회원의 보충은 기존 회원의 궐위시(사망 등) 이루어진다. 결원이 발생하면 관련 학술단체나 회원의 추천을 받아, 분과와 부별 두 차례 심사를 거쳐, 마지막 총회 투표로 통해 결정한다. 각 단계에서 의사결정은 과반수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이뤄진다.

올해 학술원 회원 예상 충원인원은 10명이었고, 11개 학회에서 총 19명을 추천받았다. 그런데 2차 심사를 통과한 사람은 3명에 불과했고 그들 모두 총회에서 최종 선정됐다. 낮은 선정율을 볼 때 전반적으로 엄정한 심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탈락자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이번에 탈락된 한 원로교수는 “현행 선정과정에서는 기존 학술원 회원들과 학문적 경향을 달리하는 학자들은 회원이 될 수 없는 구조”라며 회원 선정과정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분과별로 이뤄지는 심사의 경우 10명 내외의 기존 회원들에 의해 자격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사실과 무관하게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계 원로인사들은 점차 늘어가고 학술원 문은 고정된 상황에서 선정과정에 대한 논란은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학술원의 태생적 성격 자체를 문제시하는 시각도 생겨난다. 학술원이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지면서, 학술적 업적과 덕망이 높은 학자들보다는 친정부적 인사들로 헤게모니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학술원에 불만 많은 교수들은 “학술원이 학계의 어른으로서 권위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학문적 우월성과 도덕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많다”고 비판한다. 학술원의 ‘적절하지 못한’ 구성으로 인해 학술원이 학계의 어른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학술원 내부 구성원들은 이런 외부의 평가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보다 학술원의 구성과 역할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진홍 학술원 인문사회 1분과 회장(서울대)은 “학술원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생산성이 떨어지지만 아주 상징적인 존재”라는 정의를 내렸다. 따라서 학문발달사를 집필하고 우수학술도서를 선정하는 등의 역할들이 더 의미 있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인 학술 업적을 내는 일보다 학술원의 권능에 부합하는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으로 읽힌다.

학술원은 학자에게 커다란 훈장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훈장’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들다. 학술원의 운영과 역할이 아직 적절한 위치에 가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대로 간다면, 학술원의 상징적인 위상조차도 점차 학계에서 잊혀질 위기다. 학술원은 명예의 전당으로 그  명맥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며 명예를 걸맞은 역할을 재정립할 것인가 선택을 고민할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so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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