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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모임을 찾아서(1)과천연구실
연구모임을 찾아서(1)과천연구실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08.23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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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좌파이기를 거부하다
‘진보’ 진영은 더 이상 소외계층이 아니다. 너도나도 진보의 흐름에 동참하고,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주류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새삼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되묻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세인들의 말처럼 ‘바뀐’ 세상과 ‘바뀐’ 이념의 산물일 수 있다. 그러나 법석이는 세상사와 무관하게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이론을 위한 중장기적이며 초정파적으로 이론 연구를 하는 모임이 있다. 1994년 6월에 출범한 ‘과천연구실’(이하 과연)이 그 주인공.

과연의 출발은 1980년대 말 학술운동과 무관치 않다. 산파격인 윤소영 한신대 교수(경제학)가 한국사회경제학회에서 서울사회과학연구실(이하 서사연)로 활동무대를 옮긴 것은 199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1991년 서사연 연구원들이 공동 집필한 ‘사회주의 이론, 역사, 현실’(민맥, 1991) 때문에 5명의 연구원이 연행된 이른바 서사연 사건이 터졌고, 서사연은 해체됐다. 이후 윤 교수는 서사연에 참여했던 몇몇 연구원들과 함께 과연의 문을 열었다. 기존의 연구집단들과 학문적 의견차가 있었던 터라, 독자적인 행로를 모색한 것이다.

지금 과연을 꾸려나가고 있는 이들은 윤 교수를 제외하고 12~13명 정도이다. 대부분이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반 학번인 학문후속세대들. 권현정 씨, 이미경 씨 등이 페미니즘 연구를 통해 점차 알려지고 있는 소장연구자들이다.

이들의 활동은 일견 매우 단촐하다. 매주 1번씩 여는 세미나가 이들을 엮어 주는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연구원들이 세미나를 열고, 그 결과물이 책으로 나오면 봉천동에 있는 ‘아침해 가득핀 땅’이라는 카페에서 대학원생과 시민운동가를 상대로 강의를 한다. 그밖에 대외적인 활동은 거의 없다. 과연의 정적인 활동은 소수파로 구성됐던 라캉의 세미나를 떠올리게 한다. 과천연구실은 1년에 2권씩 지금까지 총 20권의 책을 펴냈다. ‘마르크스주의 전화와 인권의 정치’를 필두로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대안세계화운동’이라는 가장 최근의 책에 이르기까지 출판한 책들은 모두 초기의 문제의식,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에 관한 것이다.

과연에서 생산하는 책들은 주류 사회학은 물론, 진보적 사회이론과도 관점이 다르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사회상의 변화에 따라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이론적 노선을 바꿔 나갔지만, 과연은 마르크스주의를 심화할 수 있는 도구로 알튀세르를 선택했다. 그런 까닭에 “너무 이론적인 작업을 하고 있어서 사회학의 다른 영역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학 내부에서 영향력이 감소된 것이 아니냐”라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이 사실을 그다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진보진영이 주류 사회로 편입해 나가면서, ‘운동’의 개념을 흐리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윤 교수의 마르크스주의적 비전은 단호하기까지 하다. 자본주의에 비롯한 국제정세 등 현대 사회의 갈등이 점차 심화돼 최후의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운동’ 밖에 없다는 것.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성원의 시선은 미래를 향해 있다는 것.

새삼 재정문제가 궁금해졌다. 돈이 되지 않는 학문의 배고픔을 상상했기 때문일까. 그러나 윤 교수의 대답은 의외였다. “생각보다 돈 많이 들지 않는다”고. 자신들의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아다니다가 아예 출판사 ‘공감’을 만들었다. 더 이상 마르크스의 책을 출판하겠다는 곳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득이었다. 책들이 십년 간 꾸준히 팔리고 있어서, 적자는 면하고 있는 셈. 그 외 관리비며 술값은 윤 교수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수익을 바라는 일이 아니기에 이 정도 운영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한 가지 더. 과천연구실은 과천에 없다. 설립 후 첫 1년간은 과천에 있었지만, 치솟아버린 전세금 때문에 사당동의 19평짜리 아파트에 자리잡은 지 어느새 9년이 흘렀다. ‘서울’이니 ‘한국’이니 하는 지명을 넣지 말자고, 또 그만한 대표성도 없다는 생각에 골라낸 것이 당시 자리를 잡고 있었던 ‘과천’이었다. 그 정도가 적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하도 이름에 얽힌 사연을 묻는 사람이 많아서 ‘과학적 실천’의 줄임말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책을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전하고 소통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 이들의 실천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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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균 2003-08-28 18:17:51
서사연 사건이 발생하고 난뒤 서사연이 해체된 것이 아니라 당시까지 소속되어있던 연구원 내지 회원들이 많이 자진 퇴출한 것입니다. 그 뒤에 다른 많은 연구자들이 모여서 활동하다가 2001년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