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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풍경 2019-한국인은 어떤 공기를 상상하고 연구하고 판매하고 있는가
공기풍경 2019-한국인은 어떤 공기를 상상하고 연구하고 판매하고 있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19.06.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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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알려준 '필연' 호흡 공동체

이음출판사에서 펴내는 과학잡지 에피 8호에 실린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에피 공동 기획 기사를 교수신문이 재수록합니다. 

필자: 김성은, 김희원, 전치형 교수 

2019년 1월 16일 경기도 포천 소규모 공장지대에서 굴둑연기를 감시하는 드론(사진=한강유역환경청)
휴대용 공기청정기 '에어테이머' 전시부스(사진=김희원)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

2018년 12월 1일 정오, 서울 종로구의 미세먼지 농도는 44 μg/m³, 초미세먼지 농도는 22μg/m³다. 털모자를 쓰고 패 딩을 껴입은 어른과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미세먼지 대책을 촉구합니다’(미대촉) 인터넷 카페가 주최한 7차 집회가 열린 날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었지만, 집회에 나온 이들은 차가운 바닥에 앉아서 또는 청와대로 행진하며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국회는 미세먼지 사회재난 법안 조속히 통과시켜라!” “정부는 초미세먼지 걱정 없는 숨 쉴 권리 보장하라!” “발암먼지 말고 맑은 공기, 정부는 보장하라!” “공기 잃은 나라엔 미래가 없다.” 이날 집회는 미대촉 이미옥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 게 쓴 서한문을 청와대에 전달하며 마무리됐다.

미세먼지는 지금까지 무색무취하다고 여겨졌던 공기를 뿌옇고 매캐하고 두려운 것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러자 공기 는 더 이상 삶의 당연한 배경이 아니라 하루하루 견뎌내고 회피해야 하는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심지어 대통령이 꼭 응답해야 할 정치적 토론과 행동의 대상이 되었다. 2016년 5월 29일 문을 연 미대촉 카페에는 2019년 5월까지 3년 동 안 10만 명 넘는 사람들이 가입했다. 오염된 공기는 사람들을 압박해 여기저기로 밀어낸다. 공기를 신경 쓰지 않고 살던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 공기가 적힌 팻말을 들고, 공기 정보를 요구하고, 공기 기계를 향한 불평을 쏟아낸다. 먼지가 걷힌 어느 날, 이들은 2019년의 공기를 어떻게 회상하게 될까. 그 공기풍경에는 무엇이 담기고 무엇이 담기지 못했을까. 

1. 두 공기 이야기 

2019년 2월 21일, 서울 서대문구 초미세먼지 농도 81μg/m³. 구름이 거의 없는 하늘인데도 뿌연 공기가 햇살을 가로막았는지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거리에 그늘이 드리웠다. 일산 킨텍스 전시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확인한 고양시 주엽동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64μg/m³이었다. 버스는 공기질 ‘매우 나쁨’인 홍대입구역을 출발하여 공기질 ‘나쁨’ 인 일산 킨텍스를 향해 달렸다. 버스 안 라디오에서 나오는 기상 정보에 따르면, 한국 상공의 대기가 정체되어 있는 상태라 오염된 공기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며칠간 미세먼지는 더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우울한 공기 예보를 들으면서 찾아간 킨텍스에서 맑은 공기를 마실 수는 없었지만, 맑은 공기에 대한 약속이 전시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날 킨텍스에서 열린 ‘클린 에어 엑 스포’는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익숙한 기술과 새로운 기술을 한자리에 모아놓았다. 공기청정기와 패션마스크처럼 이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된 제품들 사이로 생소하고 기발 한 물건들도 제법 나와 있었다. 그중에서도 손가락 두세 개 너비의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목에 걸고 다니는 휴대용 공기청정기 ‘에어테이머’(AirTamer) 였다. 거친 성질을 다스린다는 뜻의 영어 단어 ‘테임’(tame) 을 공기를 뜻하는 ‘에어’(air)에 붙여 만든 이름이었다. 위험한 공기를 다스려서 부드럽고 온순한 공기로 만들어 주는 기계라는 뜻인 듯했다. “미국에서 인정받은 특허 정품입니다.” 에어테이머 부스를 지키던 담당자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걸어왔다. 

2019년 1월 16일 포천 소규모 공장지대에서 굴뚝연기를 감시하는 드론(사진=한강유역환경청)
2019년 1월 16일 포천 소규모 공장지대에서 굴뚝연기를 감시하는 드론(사진=한강유역환경청)

 

부스 뒤에 걸린 플래카드에는 성조기 옆으로 “미국 수입 정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에어테이머를 목에 건 백인 여성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기를 쏘기 때문에 빛보 다 빠른 속도로 공기 중 오염물질을 제거합니다!” “얼굴 주변에 1미터 크기의 클린 보호망을 만들어 이동 중에도 미 세먼지, 꽃가루, 병원균, 매연, 심지어 바이러스로부터 나를 보호해줍니다.” 담당자는 믿기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동원해서 구경하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려 애쓰고 있었다. 에어테 이머 팸플릿을 손에 든 중년 여성과 그 아들로 보이는 남학생이 그 설명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각종 공기 제품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정화 기능을 뽐내고 있었지만, 남학생은 맘을 놓을 수 없었는지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였다. 에어테이머가 약속대로 작동한다면 이 학생도 집과 교실에서 마음 편히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것일까. (2주 후 청와대 국민청 원 게시판에는 교실에서 마스크를 쓰지 못하게 하는 학교를 비난하며, 학교 안 오염된 공기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스크를 쓸 권리를 요구하는 어떤 학생의 글이 올라왔다.) 

에어테이머 부스를 지나서 걷다 보니, 파란 인조 잔디와 빨간 파라솔이 보였다. 파라솔 아래에는 ‘스마트 포그머신’ 이라는 기계가 있었다. 포그머신은 수돗물을 끌어들인 다음, 안개처럼 미세한 물 입자를 만들어내는 펌프식 기계다. 포그머신이 만든 인공 안개는 파라솔의 살을 따라 부착된 니켈 도금 노즐을 통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담당자는 이 물 방울의 직경이 3~7마이크로미터이기 때문에 물을 뿜는 파라솔 아래 서 있어도 옷이 젖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작은 물 방울은 사람의 옷을 적시지는 않으면서 조금씩 증발하여 표면 온도를 낮추어 주는 동시에 미세먼지를 줄이는 공기 정화 효과도 있다는 것이다. 

대전광역시 초미세먼지 농도가 100μg/m³를 웃돌던 2019년 3월 6일, 한 대학원생이 이제 막 택배로 도착한 3M사 방진마스크를 착용해보고 있다.(사진=김희원)
대전광역시 초미세먼지 농도가 100μg/m³를 웃돌던 2019년 3월 6일, 한 대학원생이 이제 막 택배로 도착한 3M사 방진마스크를 착용해보고 있다.(사진=김희원)

 

‘클린 에어 엑스포’와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열린 건축 박람회 ‘코리아 빌드’에도 공기를 다스리려는 기술이 여럿 등장했다. 거대한 모델하우스를 설치하고 새로운 공기정화 시스템을 시연한 경동나비엔의 부스가 단연 눈에 띄었다. 공기정화 시설에 관심이 많은 건물주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홍보 담당 사원이 ‘에어원’이라는 제품을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집안 한쪽에 가구처럼 놓여서 그 주변 공기만 정화하는 기존 공기청정기와 달리 에어원 시스템은 천장 내부로 촘촘히 연결된 환기 통로를 활용해 공기를 실내 전체에서 빨아들이고 깨끗하게 정화해준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걸 설치하면 공기청정기 여러 대가 필요없다는 거죠?” 한 중년 남성의 질문에 그 사원은 모델하우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에어원의 콘솔을 조작하며 숙달된 말투로 대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모든 방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할 필요 없이 에어원 하나만 있으면 집 안 공기는 한 번에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화학전쟁' 방독면
제1차 세계대전 '화학전쟁' 방독면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 비상 상황에서도 일산 킨텍스는 맑은 공기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에어테이머를 목에 걸면 내 코앞의 공기를 다스릴 수 있고, 포그머신을 마당에 설치하면 몇 사람이 같이 마실 분량의 공기를 얻을 수 있고, 에어원 시스템이 있으면 손가락 클릭 한 번만으로도 온 집 안 공기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킨텍스에 총망라된 공기 기술은 이 땅에서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 즉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의 공기 수요를 충족하겠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에어테이머 전시 부스에서 마주친 엄마와 아들처럼 공기 정화 제품을 직접 사서 쓰려는 개인 소비자도 있었고, 건설사와 지자체 관계자,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요양원 시설 담당자도 있었다. 내가 마실 공기를 직접 관리하려는 사람들과 요즘 들어 ‘미세먼지 취약 계층’으로 불리게 된 사람들을 위한 공기 주머니를 설치해야 하는 관계자들이 모두 공기 기술의 고객이었다. 

한 달 전인 1월 16일, 일산 킨텍스에서 50km 떨어진 경기도 포천에 등장한 공기 기술은 ‘클린 에어 엑스포’나 ‘코리 아 빌드’에서 목격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국립환경과학원의 김정훈 연구사 팀은 과학원이 보유한 미세먼지 감시 드론 두 대 중 하나를 들고 와서 소규모 공장 지대를 향해 띄웠다. 드론은 주변 공기를 흡입하는 펌프와 포집용 비닐봉 지를 꼬리처럼 매달고서 공장 굴뚝 위로 뒤뚱뒤뚱 날아가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드론이 굴뚝 연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돌아오자 김 연구사는 자신이 타고 온 개조된 미니밴의 트렁크를 열고 실시간 대기질 분석 장비에 비닐봉지의 좁은 입구를 꽂아 넣었다. 그러자 기체 안을 떠도는 에어로졸을 감지하는 스펙트로미터가 굴뚝에서 뿜어낸 온갖 화합물의 이름과 양을 명세서 뽑듯 줄줄이 읊었다. 기준치를 넘는 미세먼지 농도 측정 결과를 들고 공장주를 찾아가 훈계하는 일은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진과 동행한 한강유역환경청의 감시반이 담당했다.

미세먼지 측정 드론이 포천에 ‘떴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하루 만에 28μg/m³(1월 16일)에서 14μg/m³(1월 17일)로 내려갔다. 굴뚝 연기로 인한 오염을 측정하는 ‘드론감시반’ 활동은 환경부 소속의 과학 공무원들이 한반도 상공의 대기를 살 만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수행하는 다양한 감시 업무 중 하나다. 제철소나 발전소처럼 오염물질을 대량으로 뿜어내는 600여 개 시설에서는 굴뚝에 부착된 관측기가 감시반을 대신해 오염물질 배출량을 측정한다. 일산화탄소,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등을 5분에 한 번씩 측정한 값이 규정치를 넘으 면 각 권역별로 지정된 ‘굴뚝원격감시센터’로 신호를 보낸다.

이곳에서 일하는 환경공단의 과학자는 상황판을 통해 권역 의 대기오염 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자동차 등 이동수단에서 배출되는 오염된 공기는 각 지자체별로 설치된 대기 오염물질 측정망을 통해 감지된다. 이렇게 차곡차곡 수집된 자료는 복잡한 수치 모델링을 거쳐 공기질의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기초 자료로 쓰인다. 매일 아침 ‘에어코리아 앱’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일일 미세먼지 예보도 이렇게 다양한 인간과 센서가 한 땀 한 땀 수집한 정보 덕분에 만들 수 있다. 공기를 담당하는 ‘과학 공무원’이라고 할 수 있는 환경부 산하 기관의 연구자들은 때로는 드론을 대동한 암행어사처럼, 때로는 수많은 굴뚝을 한눈에 내다보는 CCTV 관제요원처럼, 때로는 공기의 거동을 예측하는 기상예보관처럼 일한다. 

미세먼지에 대응하는 공기 기술이라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포천 공장 지대의 굴뚝을 감시하는 드론에는 ‘에어 테이머’처럼 멋진 이름이나 화려한 모델도, 잘 디자인된 전단지도 붙어 있지 않았다. 은밀한 미세먼지 감지 활동은 대단한 홍보나 광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오염 대기의 농도를 분석하는 스펙트로미터는 ‘포그머신’이나 최신형 공기청정기의 매끈한 디자인과 비교하면 투박한 모양이었다. 직경 3~7마이크로미터의 물방울이 가져다주는 소소한 상쾌함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오염물질 배출을 감시하는 기술은 경동나비엔의 에어원 시스템처럼 빠르고 간편하게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았다. 미세먼지를 감지하는 기술은 암행어사처럼 조용하게, 관제요원처럼 꾸준하게, 기상예보관처럼 침착하게 공기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분석한다. 

KORUS-AQ에 사용된 NASA의 대기 연구용 항공기 DC-8. (사진=NASA)
KORUS-AQ에 사용된 NASA의 대기 연구용 항공기 DC-8. (사진=NASA)

 

2019년의 공기 나쁜 두 날에 경기도 두 지역에서 펼쳐진 공기 기술은 우리가 오염된 공기의 공포에 대응하는 두 가지 자세를 보여준다. 한쪽에는 최첨단 공기청정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공기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은 개인이든, 가족이든, 직원이든 구획 지어진 공간 안에 있는 몇몇 인간에게 지금 당장 숨 쉴 만한 한 줌의 공기를 제공하려는 과학기술이다. 각자가 나름의 형편에 따라 숨 쉴 만한 공간을 창출해서 두려움을 달랜다는 점에서 이것을 ‘각자도생의 공기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다른 한쪽에는 공기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향유하는 공공재로 보고, 그 질을 느리게나마 꾸준히 관리하려는 공기 기술이 있다. 이 활동은 단번에 공기를 살 만한 정도로 만들지는 못 하지만 개인의 형편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공기의 조건을 개선하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공기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2019년 한국의 공기풍경에는 공기에 대한 상반된 자세들과 그것을 구현하는 상이한 기술들이 뒤섞여 있다.

2. 공기 공포의 역사 

대한민국을 덮친 공기에 대한 공포는 2010년대의 미세먼지가 처음이 아니다. 1970년 6월의 『경향신문』 기사가 적절히 표현한 것처럼 “기승부리는 현대의 공포”인 대기오염은 “1960년대 초부터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해” 시대에 따라 그 종류와 양태를 바꾸어가며 등장했다. 이에 대한 사회적 반응 역시 오염으로부터 내 몸을 피할 한 줌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일과 공동체의 공기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라는 두 갈래로 늘 나뉘어져왔다. 

1970년 6월에 서울지방법원은 더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공해가 심각해진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사는 30세 최헌민 씨 는 자신이 걸어서 출근하는 무악재 고개 옆으로 매일 심한 매연을 뿜는 버스가 지나다니는 것에 분노해 서울지방법원에 해당 버스의 운행 중지를 청구했다. 법원은 삼미운수 등 3개 시내버스 운수회사에 매연 정화장치인 가스정화기를 달기 전까지 버스 운행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가처분 소송은 법원이 매연으로 인한 시민의 피해를 최초로 인정한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매일 매연으로 고통받는 일을 “인격권의 침해”로 인정하면서, 당시 법원은 대기오염이 대 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가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고 선언했다. 

공해로 인한 피해가 두드러지기 시작하던 1970년대에 바라본 한국의 미래는 더 이상 부국강병의 밝은 전망으로만 차 있지 않았다. 1971년에 한국과학기술연구소가 한국미래 학회와 공동으로 수행한 미래 예측 연구는 2000년에는 대기오염으로 인한 공포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동으로 치료 가능한 병원” “인조육” “교환수 없는 전 자교환기”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기술이 눈에 띄게 발전할 2000년대의 한국은 전통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던 질병, 기근, 노동의 고통이 사라질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산업화와 더불어 더욱 심각해질 대기오염이 ‘핵공포’에 맞먹는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앞으로 공기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2000년에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도시생활을 해야 할 판”이라는 것이 미래학자들의 예측이었다. 심지어 2030년에는 대기오염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추측도 나왔다. 이들은 파국을 막기 위해 공기를 더럽히는 공장들에 “공기세” 를 부과하거나 “비행기가 도시 상공에 정화제를 뿌리”는 등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대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세먼지 대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되고 비행기가 바다 상공에 인공강우를 위한 구름 씨앗을 뿌리고 있는 2019년의 모습은 1970년대 미래학자들의 예측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1970년대에는 가정에서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등장했다. 가령 1978년에 서울시는 당시 80만 채의 가정집 중 4만 채만 사용하던 LPG 도시 가스의 공급을 50만 채로 대폭 확대하는 계획을 세웠다. 석탄을 LPG로 바꾸는 정책은 불완전연소를 줄여 서울을 비롯 한 대도시 대기오염도를 크게 낮추는 데 기여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보다 즉각적인 방법을 찾았다. 바로 “탈공해지역”에 새로운 집을 마련하는 방법이었다. 1973년 10월에 건축설계가 윤봉원 씨는 잡지 『새가정』에 기고한 글에서 공해를 피해 새로운 주택을 마련할 때 집의 디자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연을 곁들일 수 있는 여유 있는 대지를 구입”하는 일이라고 안내했다. 경제력이 충분하지 못 해 새 집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공해를 피할 방법이 없지만, 여유 있는 사람들의 경우 “기계 같은 하루의 생활에 피로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해볼 만한 투자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2016년 5월과 6월에 걸쳐 미세먼지 항공 측정을 실시한 DC-8의 항로. (사진=NASA)
2016년 5월과 6월에 걸쳐 미세먼지 항공 측정을 실시한 DC-8의 항로. (사진=NASA)

 

도시 거주자 대다수에게 윤봉원 씨가 제안한 “탈공해 지역”으로의 도피는 상상하기 어려운 해결책이었다. 그 대신 비즈니스맨들은 공해가 덜한 지역으로 출장을 나갈 때 잠시나마 대기오염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인천시 동구 송현2동에 사는 비즈니스맨 조룡일 씨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1985년에 서울 본사에서 근무하던 조룡일 씨는 제주도로 근무지를 옮긴 후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비교 체험했다. 서울에서는 단 하루 만에 때에 찌들던 와이셔츠가 제주도에서는 일주일을 입어도 멀쩡했다는 것이다. 3년 뒤 다시 서울로 돌아왔을 때 조 씨는 대청소를 한 다음 불과 2~3일 만에 집 안에 먼지가 가득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가 새로 산 “고성능 전기청소기”도 사방으로 침투하는 대기오염을 막아줄 수는 없었다. 조룡일 씨 같은 대도시 시민들은 온몸이 공기의 센서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1980년대 후반에는 정부의 미온한 환경정책에 대한 불만이 예술작품의 틀을 빌려 뿜어져 나왔다. 1984년 7월에 극단 ‘연우무대’는 날이 갈수록 심해 지는 공해에 대한 풍자 마당극 <나의 살던 고향은>을 처음 무대에 올렸다. 아황산가스, 매연, 수은 등 유독가스를 의인화한 등장인물들이 서로가 얼마나 독한지를 겨룬다는 내용의 이 창작극은 당시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수도권 대기 정화에 총력을 기울이 던 전두환 정권의 미움을 샀다. 이 공연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 당시의 국민가요이던 <아! 대한민국>을 “아! 공해민국” 으로 개사해 부르자(“하늘엔 유독가스 떠 있고 / 강물엔 중 금속이 흐르고 / 도시는 매연으로 뒤덮여 / 농촌은 농약에 찌들어 / 공해로 사라지는 곳 / 아아 공해민국 사양하리라”) 연우무대는 연극 사상 처음으로 6개월 공연 정지 처분을 받았다. 민주화 운동과 공해 추방 운동의 열기가 함께 뜨거워진 1987년 9월이 되어서야 이 연극은 공해반대시민운동협 의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해 다시 무대에 올랐다. 

오염된 대기와 물에 대한 공포로 생활습관을 바꾸는 사람이 늘어나자, 그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고려병원 신경 정신과장을 역임한 이시형 박사는 오염된 공기와 물쯤은 “좀 먹어도 괜찮다”며 ‘공해 노이로제’를 겪는 현대인들을 달래려고 시도했다. “인간은 그만큼 영리하고 또 강하게 창조되 었기 때문”에 “에스키모가 추위에 잘 견디듯” 도시인도 대기오염에 적응되어 살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한편에 서는 공해에 대해 과도하게 수선을 떠는 것을 공동체를 해치는 일로 여겨 비판하기도 했다. 『경향신문』은 “가족끼리만 정화된 물이나 생수를 먹는” 행위, “농약이 무서워 농촌에 사둔 땅에 무공해 쌀을 재배”하는 행위, “공기가 맑은 교외에 집을 마련하고 사는” 행위를 콕 집어 공해에 대한 “개인주의적 몸부림”이라고 칭했다. 이런 공해에 대한 ‘각자도생’의 몸부림이 이기적인 이유는 개인의 수준을 넘어서는 공동의 대응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공해에 대해 사람들이 심리적 공황을 느낄 때 사회 전체에는 공 동의 대응보다는 개인주의적 행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마련”이라는 게 『경향신문』의 진단이었다. 공기나 물을 가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애초에 만든 산업화와 고도성장이라는 “신기루”를 없애는 일이었다.

1990년대에는 석탄 같은 값싼 연료에서 나오는 아황산 가스와 비산먼지는 줄었지만 자동차에서 주로 발생하는 질소산화물이 늘어나면서 오존 농도가 높아졌다. 소위 선진 국형 대기오염으로 불리는 ‘LA 스모그’가 서울에서 발생하여 충격을 주기도 했다. “후진국형 대기오염에서 벗어나 선진국형으로 진입했다”는 『매일경제신문』의 보도에서는 자동차 보급과 산업화의 결과에 대한 묘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선진국이라면 한 번쯤 감당해야 할 공포라는 것이다. 이 무렵 대기오염을 논하는 사람들은 서울의 오염된 공기를 전 세계적인 환경오염의 일부로 인지하게 되었다. 한국의 스모그는 미국의 산성비, 중국의 황사, 남극의 오존층과 나란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환경 파괴를 상징하는 현상이었다. 그래서 서울의 스모그는 한국에 국한된 공포가 아니라 세계 의 종말, 심지어는 “지옥의 묵시록”을 연상시켰다. 대기오염은 “단순한 특정 지역, 특정 국가, 당 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를 포함한 모든 지구 생명체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으며 “오늘날 지구촌의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공해는 전쟁보다 더 가공할 공포심을 인류에게 안겨주고 있 다”는 것이었다. 대기오염은 ‘지구촌’이라는 거대한 공동체에 대한 감각을 일깨우는 역할도 했다. 

2000년대 들어 심해진 황사에 대한 공포는 대기오염 이 경계를 초월하는 탈지역적 문제라는 사실을 더욱 확연하게 드러냈다. 중국과 몽골에서 기원해서 서풍을 타고 한국 과 일본으로 넘어오는 ‘누런 공포’는 어떤 국가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한 김진 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은 2005년 1월 13일자 『한국경제 신문』에 실은 칼럼에서 “한국 혼자서 파라다이스를 지킬 수 없다”고 하면서, “중국 근대 성장이 전 지구적 재앙이 되지 않도록 하는 대안의 모색”을 위해 세계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 사람들은 단군 덕분에 지진, 해일 같은 자연재해의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김치 덕분에 2003년에 기승부린 사스(SARS) 같은 질병의 공포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재해와 질병을 피했다고 해서 한국이 파라다이스로 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늘을 덮으면서 들어와 도저히 막을 수가 없는 황사는 한국을 중국 근대화 “최일선의 피해자”로 만들었다. 김진현 이사장은 황사가 세계적 재앙이 되지 않도록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구 공동체적 이성과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2000년을 전후해 한중일 삼국은 김진현 이사장이 염원 한 “지구 공동체적 이성”을 구축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1999년 1월 13일에는 최재욱 환경부 장관, 시에젠화 중국 환경보호총국 장관, 마나베 겐지 일본 환경청 장관 등 삼국의 환경 담당 장관들이 서울 조선호텔에서 만나 ‘1차 환경장 관회의’를 갖고 국제 협력을 강화해나가자는 내용의 공동발 표문을 채택했다. 한중일은 또 2000년부터 황사를 비롯한 여러 대기오염물질의 장거리 이동을 추적하는 공동연구를 시작해서 질산염의 국가별 기여도를 산출해내기도 했다. 동북아를 하나의 ‘호흡 공동체’로 묶어내려는 정치적, 과학적 시도는 20년 동안 계속되면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매년 열리는 환경부 장관들의 만남은 각국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연구를 위한 데이터를 서로에게 제공하지 않는다거나 결과 발표에 반대하는 등 각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연구가 지지부진해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1979년에 제네바에서 33개국이 ‘장거리 대기오염물질 이동에 관한 협약’을 맺고 공기질 관리에 대한 합의를 이루어낸 유럽 의 경험과 대비된다. 

공기 공동체를 유지하려는 정치적, 과학적 작업이 더디게 나아가는 동안, 황사 속에서 자기 몸을 지키려는 각자 도생의 공기 기술이 빠르게 성장했다. 황사가 기승을 부린 2003년 봄에는 공기청정기 보급률이 1년 만에 두 배로 급증하면서 공기 가전 시장이 역대 최대의 호황을 맞았다. 황사와 세균을 막는 특수 마스크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당시 신세계 이마트 관계자는 “황사철이 다가오는 데다 사스 발병 우려까지 겹치자 황사 전용 특수 마스크가 반짝 특수를 누리며 물량이 조기 매진돼 추가 주문을 해놓은 상태”라며 매출 급증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코오롱스포츠는 마스크(mask)와 머플러(muffler)의 합성어인 마프 (Maff)라는 이름의 제품을 내놓았다. 야외에서 마스크처럼 착용하면 황사를 막아줄 뿐 아니라 얼굴과 목을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해주고 꽃가루 알레르기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했다. 또 실내에서나 황사가 심하지 않은 날에는 턱밑으로 내려 멋스러운 머플러로 연출할 수 있다고도 했다. 공기 공 포는 점점 더 수익 창출이 가능한 형태로 전환되어왔다. 

3. 각자도생의 공기 

2019년의 미세먼지 사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공기 공포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동시에 과거보다 더 극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위험한 공기를 피해 잠시라도 안전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려는 지식과 기술은 이번에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오염된 공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마스크부터 찾는 것은 비슷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부직포로 만든 황사 마스크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강력한 방진마스크를 일상에서 착용하기 시작했다. 사상 처음으로 엿새 연속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시행되었던 2019년 3월 초에는 방진마스크의 인기도 절정에 달했다. 저감조치 시행 닷새째였던 3월 5일에 인터넷쇼핑 포털사이트 옥션이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2월 25일부터 3월 3일까지 일주일 동안 옥션을 통해 거래된 방독/방진마스크 물량은 전 주 대비 75%, 전년 동기 대비 25% 증가했다. 옥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세먼지 대 비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열어 영국 GVS와 3M의 방진마스크를 열심히 홍보했다.

좌우로 필터가 하나씩 달린 방진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방독면을 쓴 병사들이 대거 전쟁터로 나가던 제1차 세계대전의 공기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의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는 20세기의 전쟁에서는 적군의 몸을 직접 공격하기보다 그 주변 환경을 겨냥하는 전술이 중요해졌다고 지적한다. 미세한 입자의 독성 먼지를 공기 중에 흘려보내 적군의 공기를 위협하는 근대식 ‘화학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공기를 호흡하는 것 자체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낀 병사들, 살아남기 위해서는 방독면을 써야만 했던 병사들처럼, 미세먼지의 공습에 맞닥뜨린 사람들은 가장 좋은 필터가 달린 마스크를 찾아서 자기 얼굴 앞 공기를 외부로부터 분리하려 한다. 

2010년대는 얼굴을 꼼꼼히 덮으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마스크를 만드는 기술 개발이 특별히 활발했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특허청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5년 간 미세먼지 마스크 특허 출원은 연평균 134건으로, 그 이전 5년간(2009~2013년) 연평균 출원 건수 60건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마스크의 성능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새로운 제도도 운용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08년부터 ‘황사 마스크’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마스크의 품질 검증을 위해 안면부 흡기저항 시험, 분진포집 효율 시험, 누설률 시험을 시행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마스크 시험에서는 얼굴과 얼굴 바로 앞의 공기가 집중적인 분석 대상이 된다.

가령 누설률 시험에서는 매끄럽게 면도를 한 피시험자가 마스크를 쓰고서 염화나트륨 에어로졸이 든 작은 방에 들어가 러닝머신 위를 걷는다. 피시험자가 지시에 따라 고개를 돌리거나 말을 하는 동안 마스크 안과 밖의 염화나트륨 농도를 측정하고 이를 공식에 대입해 누설률을 계산한다. 마스크의 필터 효율을 측정하는 것 못지않게 마스크가 얼굴을 빈틈없이 덮을 수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마다 다른 코와 귀의 모양, 광대의 튀어나온 정도에 맞게 마스크를 조정할 수 있도록 코 지지대와 끈 조절 기능을 추가해야 한다. 내 코앞의 공기를 제대로 걸러내려는 수요를 과학적으로 충족시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미대촉 8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아이의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김희원)
미대촉 8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아이의 발언을 듣고 있다.(사진=김희원)

 

새로운 특허, 품질 인증, 편안한 디자인으로 무장한 2010년대의 마스크는 미세먼지를 두려워하는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2019년 4월에 경기도 판교 현대백화점에서 열린 미세먼지 제품 특별전 ‘그린에어마켓’에도 촘촘한 4중구조로 “철통방어”를 약속한 ‘더스트케어’부터 연예인들이 즐겨 사용할 정도로 화려한 ‘르마스카’까지 온갖 마스크들 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띈 것은 전원 없이도 산소를 발생시킨다는 믿기 힘든 주장을 내세운 ‘오투엠’사의 마스크였다. 마스크에 부착된 캡슐이 15m 높이의 소나무가 내는 것과 맞먹을 정도의 산소를 뿜어내면서 이산화탄소도 제거한다는 이 제품은 일반 마스크를 쓰면 숨쉬기가 힘든 노인, 아이, 건설 현장 근로자에게 적합한 물건이라고 했다. 마스크를 쓰기에는 너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을 방문한 고객들은 유모차에 부착하는 휴대용 공기청정기인 ‘에어 토리’ 매대 앞에 멈춰 섰다. 휴대용 선풍기에 미세먼지 필터를 접목한 이 제품은 미세먼지 걱정 많은 부모들도 안심하고 어린아이와 함께 외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약속했다. 에어토리를 설치한 유모차에 방한용 커버를 씌워서 안과 밖을 분리해주면, 공기질이 나쁜 날 밖으로 나가더라도 아이 만큼은 안전한 공기주머니 속에서 숨을 쉴 수 있을 터였다. 

이날 그린에어마켓에 전시된 11종의 미세먼지 상품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지리산의 공기를 알루미늄 캔에 담은 제 품인 ‘지리에어’였다. “별빛을 담은 지리산의 장엄한 숨결”을 캔 속에 담았다는 이 제품은 미세먼지에 시달리는 도시인에게 “잠시나마 산에 온 듯 기분 전환”을 제공해준다고 했다. ‘지리에어’를 직접 사용해본 『한겨레』 기자는 한 캔에 9,900원이라는 가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2,000~3,000 원 정도로 내린다면 장거리 운전 등으로 피곤할 때 사용할 법한 물건이라고 평했다. 미세먼지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자신과 아이의 몸을 지리산 공기 캔 같은 황당한 제품으로나마 지켜내야 한다는 절박함을 영리하게 이용한 공기 마케팅이었다. 

마스크와 더불어 공기 기술, 공기 마케팅을 이끌고 있는 것은 공기청정기다. 2019년 초부터 4월까지 공기청정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11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되었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크게 놀랄 만한 수치는 아니다. 이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변화는 다른 여러 가기기가 공기청정기를 중심으로 하는 미세먼지 대응 제품군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가전제품 전문 매장인 롯데하이마트가 2019년 3월과 4월에 걸쳐 전국 460여 개 매장에서 실시한 ‘미세먼지 철벽 방어’ 판촉 행사는 이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행사 기간 동안 일선 하이마트에 배포된 LG전자 전단지는 자사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의 하루 일과가 얼마나 미세먼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강조했다. 아침에는 LG디오스 전자레인지로 “유해가스 배출 없이 빠르고 건강한 식사”를 하고, 점심 에는 LG 코드제로 청소기의 “5단계 미세먼지 차단 시스템으로 건강하게 청소”를 하고, 저녁에는 LG트롬 건조기의 “2 중 안심필터로 먼지까지 해결”한 다음, 옷에 남아 있는 먼지는 LG 스타일러로 깨끗하게 없애면 된다는 식이다. 

가전제품 제조사들은 시민들의 공기 공포를 공기 기술 개발과 판매를 위한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공기청정기가 텔레비전과 냉장고에 버금가는 생활필수품이 되면서 가전 기업들은 앞다투어 공기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기술에 투자하고 있다사내에 공기 연구를 전담하는 연구소를 차리는 것은 가전업계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었다. LG전자의 ‘공기과학연구소’를 시작으로 삼성전자의 ‘미세먼지연구소’, 코웨이의 ‘공기연구소’ 등이 대표적 사례다. 

그중에서도 코웨이 공기연구소는 각 가정의 사물인터넷 기기에서 생성된 공기질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들이 실제 거주하는 환경의 공기질을 상세하게 파악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코웨이 연구팀은 무려 110억 개의 실내 대 기오염 정보를 상세히 분석하여 같은 실내 공간이라도 시간대, 공간 구조, 활동의 종류에 따라 공기오염의 종류가 다르 다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한다. 활동량이 많은 거실에는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높은 반면 체류 시간이 긴 안방에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높게 나타난다는 식이다. 연구 결과 를 정리한 ‘에어랩 리포트’는 “나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 해서는 우리 집의 공간,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딱 맞 는 공기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독자에게 당부한다. 물론 코웨이 시스템은 아이가 거실에서 뛰어놀 때 가까운 곳을 빠르게 정화하는 ‘멀티순환’ 모드와 엄마가 주 방에서 요리할 때 먼 곳을 강력하게 정화하는 ‘집중순환’ 모드를 함께 지원한다. 

LG전자가 설립한 공기과학연구소는 쉽게 구할 수 없는 정밀한 실험 장비로 실내 환경을 연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집진’ ‘탈취’ ‘제균’ ‘임상’ 등 네 개 분과로 나누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이 연구소에는 실내 공간에서 발생하는 먼지, 유해가스, 미생물 등을 세밀하게 측정하는 실험 장비들이 들어섰다. 연구원들은 이런 실험 장비를 가지고 집 안이라 는 공간을 더욱 잘게 나눈다. 거실과 주방의 공기가 어떻게 다른지 연구하고, 침실과 옷방에 어떤 오염이 특수하게 발 생하는지 규명한다. LG전자의 트롬 스타일러는 심지어 옷방 안 공기를 더욱 세분화해서 옷장 안 공기와 옷장 밖 공기로 나눈다. 그 결과 LG전자 공기청정 기술의 소비자들은 더 작은 단위의 공기를 더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한시적인 공기주머니를 만들어서 미세먼지를 피해보 겠다는 접근은 마음 급한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성난 시민을 만족시켜야 하는 정책 입안자들에게도 매력적인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 학교 내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학부 모들의 거센 압박에 직면한 교육부는 2018년 4월에 ‘학교 고농도 미세먼지 대책’을 세우고 2020년까지 전국 모든 유치원과 초등학교, 특수학교에 공기청정기와 미세먼지 측정 기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향후 3년에 걸쳐 10만 946개 교실에 공기정화장치를 보급하는 데에는 무려 2,200 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었다. 교실이라는 신시장을 기회로 인식한 공기청정기 업계의 후발주자 LG전자는 발 빠르게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전국의 초·중·고교에 150억 원에 상당하는 LG전자의 대용량 공기청정기 1만 대를 무상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LG전자는 자사의 공기청정기가 교실과 같은 큰 공간도 충분히 정화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할 뿐만 아니라 AI스피커를 통해 원격 제어도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러 언론이 “통 큰” 선행으로 보도한 LG전 자의 기부는 이 회사가 국내 여러 공기청정기 조달 사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공장을 가동하며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주체라는 사실을 가려버렸다. 

실내 공기질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교실을 공기주머니로 만들려는 교육부의 계획이 과연 실효성 있는 것인지 의문을 품었다. 조영민 경희대학교 교수 연구진은 2018년 2월 20일에 열린 ‘깨끗한 학교 실내 공기 마련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경기도 교육청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초등학교 교실 내 공기정화장치의 효과에 대한 현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2017년 11월부터 12월까지 공기청정기가 가동된 35개 초등학교 61개 교실의 공기질을 분석한 결과 정화장치의 효과가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고 설명했다. 공기청정기가 줄일 수 있는 실내 미세먼지는 최대 30% 정도에 불과했지만, 미세먼지를 막겠다며 장시간 창문을 열지 않을 경우, 교실 내 이산화탄소 수치가 위험할 정도로 급증하는 심각한 역효과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광주지부는 이러한 실험 결과를 두고도 “공기정화기 설치 숫자 늘리기에만 급급”한 교육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공기청정기를 설치하는 것은 “학부모의 미세먼지에 대한 불안감을 이용해 대기업 배만 불리는 졸속행정”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일선 현장에서는 교육 현실과 맞지 않는 공기청정기 보 급계획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왔다. 갑자기 관리해야 할 기기 숫자가 늘어난 학교에서는 공기청정기의 필터를 갈고, 비품을 구매하고, 망가진 부분을 고치고, 켜고 끄는 시점을 관리하는 일이 보건교사의 소관인지 행정실의 소관인지를 두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업무추진 과정에 필요한 인 력 수요도 고려하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하여 학교 현장의 업무 갈등은 증폭되었다”고 주장한 전교조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업에 신경 쓰지 못하고 시설 구매 등 추가 업무에 눌려 병가를 신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보고했다. 학교라는 장소의 공기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것도 예상치 못한 정책적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아파트와는 달리 학생들이 끊임없이 드나들며 먼지가 수시로 발생하는 교실에서는 외부 공기가 자주 유입되어 공기청정기의 정화 효과가 떨어질 뿐 만 아니라 필터를 훨씬 자주 갈아주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전교조는 “냉난방기 비용을 충당하기도 벅찬 학교 입장에서 공기청정기 필터는 새로운 부담”이 되었다고 하소연했다. 전교조는 학교 공기질이 문제라면 정화장치 숫자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노후학교 리모델링이나 학교 녹지율 향상 같은 복합적인 대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미세먼지를 교실 안의 문제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학교가 위치한 지역사회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자는 말이었다. 

미세먼지를 얼굴과 거실과 교실 단위의 작은 공기에서 몰아내려는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세련되게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손이 미치고 경제력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를 동원하여 미세먼지 사태를 살아 넘기려 한다. 또 미세먼지 공포 속에 생활하는 국민에게 공기정화 시설을 갖춘 작고 쾌적한 공기주머니를 제공하는 일은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우선적이고 어쩌면 유일한 대책으로 상상된다.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는 단지 생활 제품, 가전제품이 아니라 정부의 중요한 미세먼지 정책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미세먼지 사태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은 거기서 멈출 수밖에 없는가? 마스크와 공기청정기와 건조기와 스타일러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의 미세먼지, LG전자와 삼성전자와 코웨이의 공기연구소가 연구하지 않는 더 큰 공기는 누구의 손에 맡겨지고 있는가? 

 

4. 호흡 공동체를 위한 공기 과학 

어린이날인 2016년 5월 5일의 미세먼지 농도는 21μg/m³, 초미세먼지 농도는 64μg/m³으로 ‘나쁨’ 수준이었다. 미세먼지와 함께 옅은 황사가 예고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봄 황금연휴를 맞은 가족 단위 여행객들은 전국 곳곳으로 나들이에 나섰다. 특히 이날 전국 야구장에는 11만 4,058명이라는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관중이 모였다.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경기를 벌인 송파구 잠실야구장 역시 만원이었다. 연장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LG는 채은성의 끝내기 득점으로 두산에 8:7로 승리했다. 

서울 시민들이 야구 경기를 즐기기 위해 잠실구장으로 향하던 송파구의 하늘 상공에는 미항공우주국(NASA) 마 크를 단 더글라스사 DC-8 항공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비행기는 서울시 광진구와 구리시 사이에 위치한 아차산 상공으로부터 남쪽으로 천천히 하강하며 한강과 올림픽공원을 지나 성남시에 있는 서울공항으로 향했다. 서울의 동쪽 지역 하늘을 위아래로 훑으며 땅에 가까워진 이 비행기는 여느 항공기처럼 활주로에 안착하나 싶더니, 지상에서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기수를 올려 공중으로 떠올랐다. 이상한 비행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착륙 직전 공중으로 다시 떠오른 기체는 이번에는 남동쪽으로 기수를 틀어 서울공항에서 20여km 떨어진 경기도 광주시 태화산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상림리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학술림 상공에 도착한 뒤, 숲 위에서 빙글빙글 나선을 그리며 솟구치기 시작했 다. ‘스파이럴’ 상승을 하던 비행기는 7km 상공에서 회전을 멈추고 오산 공군기지로 날아갔다. 

이날 서울과 경기도 상공을 마치 곡예비행을 하듯이 날아다닌 것은 나사가 보유한 DC-8 기종의 대기 연구용 항공기였다. 200명을 너끈히 태울 수 있는 동체에 승객 대신 스물여섯 개의 기체 분석 장비를 빼곡히 채운 DC-8은 비행하면서 대기 중에 비산된 다양한 화학물질의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어서 ‘날아다니는 실험실’이라고 불린다. 극지방의 오존 농도나 대서양의 허리케인 같은 극한 상황의 대기를 연구해온 이 최첨단 비행기가 대한민국 서울 도심에 등장한 것은 국립환경과학원과 나사가 공동으로 실시한 한미 공동 대기질 연구(KORUS-AQ: Korea-United States Air Quality Study)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극심한 미세먼지가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지는지 상세히 규명하려는 이 연구에는 한국과 미국의 130여 개 기관 소속 대 기과학자 약 580명이 참여했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미세먼지 관측 연구다.

한국 미세먼지 중 70%는 산업시설 등에서 직접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태양빛을 받은 화합물이 반응해 만들어지는 ‘2차 생성 미세먼지’다. 따라서 미세먼지 생성기작을 충분히 이해해야 예보 모델을 개선할 수 있고, 미세먼지 저감 정책을 과학적으로 고안할 수 있다. 즉 어떤 물질에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2018년에 정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기술개발 로드맵」에 따르면 미세먼지의 생성·변환·소멸 기작을 규명하는 연구에서 한국의 기술력은 미국이나 중국의 60~70% 정도에 불과했다. KORUS-AQ는 한국 상공의 미세먼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권위 있는 지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대규모 연구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중국, 일본과 미세먼지 문제를 협의할 때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도 생성 기작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DC-8을 포함해 KORUS-AQ에 참여한 항공기 3대는 대한민국의 대기 전체를 거대한 실험 대상으로 삼아 2016년 5월 2일부터 6월 10일까지 총 23회 측정 비행을 실시했다. 5월 5일 DC-8이 수행한 비행경로 역시 서울 대도시권 상공의 미세먼지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자들이 세심하게 계산한 것이었다. 서울 동북부에서 성남 서울공항을 향해 천천히 하강하는 ‘서울 스테레오루트’ 항로는 스모그가 짙게 깔린 도심의 대기를 연구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태화산 부근에서 나선을 그리며 상승하는 ‘태화 스파이럴’ 항로는 북 서풍으로 인해 남동쪽으로 밀려나는 서울의 대기오염물질이 고도에 따라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 파악하기에 적합했다. 연구자들은 또한 DC-8이 훑고 지나갈 송파구 올림 픽공원과 태화산 학술림에 지상 관측소를 설치해 공중 측정 결과와 비교 분석하는 실험도 수행했다. 같은 시간과 장소의 공기를 지상 관측과 항공 관측이라는 상호보완적 방식으로 측정함으로써 연구자들은 어느 때보다도 상세하게 한국의 대기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KORUS-AQ를 총괄한 NASA의 수석 과학자 짐 크로포드 박사는 이러한 다각도의 측정 활동을 통해 연구진이 “관측사상 가장 완전한 공기질 의 현황”을 그려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서울 스테레오루트’와 ‘태화 스파이럴’이 주로 서울 대 도시권의 공기질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나머지 비행은 이보다 넓은 지역의 공기들이 서로 복잡하게 뒤섞이는 역동적인 과정을 포착했다. DC-8은 서울을 중심으로 제주, 부산, 포항 등에 이르는 하늘길을 다양한 고도로 비행하면서 한반도 전역의 대기 중 오염물질 농도를 측정했다. 수도권 공기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기만의 화학단지와 발전 시설들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도 이루어졌다. 서풍이 크게 일어 중국으로부터 공기 유입이 예상되는 날에는 DC-8이 서해 상공으로 출동하기도 했다. 특히 상하이에서 발생한 대기오염이 강한 바람을 타고 빠르게 유입될 것이라는 기상 예보가 나온 2016년 5월 25일, DC-8은 인천 앞바다부터 상하이 근처 동중국해에 이르는 500여km 거리를 북에서 남으로 비행하는 ‘벽 샘플링’ 조사를 수행했다. 한국의 기상 관측용 선박 ‘온누리호’와 ‘기상1호’는 DC-8이 서해 상공을 가로지르는 동안 바다 위에서 같은 시간의 공기 를 측정해 정확도를 높였다. 이렇게 바다의 위와 아래에서 얻어낸 측정 결과는 대기오염물질이 국가적, 지리적 경계를 쉽게 뛰어넘어 복잡하게 뒤섞인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KORUS-AQ가 2017년에 발간한 예비종합보고서에는 연구진이 알아낸 중요한 사실들이 적혀 있다. 가장 충격적인 결과는 대기 오염 배출원 조사 목록(인벤토리)이 허술하게 관리되어왔다는 점이다. 연구 기간 중 충청남도 서산시 상공을 비행한 킹에어 항공기는 대규모 화학 공장이 많이 분포된 이 지역에서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몇 배나 높은 화학물질 농도를 측정했다. 연구진은 항공 측정 결과와 모델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공단 지역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었다고 진단했다. 이 지역의 휘발성 유기화합물 배출량을 새로 추정하니, 기존에 보고된 연간 20,000여 톤의 3배에 달하는 연간 60,000톤의 화합물이 배출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기환경학회장 을 역임한 김동술 경희대학교 교수는 이러한 실험 결과를 해설하며 한국의 대기오염 감시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은 100종류가 넘는데 한국은 그 중 25종만 관측해왔으며, 관리 대상인 사업장도 매우 적다는 것이다. 어디서 무엇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확인하는 가장 근본적인 미세먼지 대책조차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이 KORUS-AQ를 통해 드러났다. 

KORUS-AQ 연구진은 미세먼지 질량 분석기로 한반도 상공 미세먼지의 구성 성분을 분석해 국내에서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물질이 미세먼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또한 알아냈다. 이러한 측정 결과는 미세먼지를 저감하려면 무엇보다도 다양한 유기물질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연구진은 또 유기물질이 오존의 발생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 했다. 대기 중의 오존은 2차 미세먼지 생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물질이다. DC-8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수행한 결과 방향성 탄화수소, 그중에서도 건설용 페인트에 많이 쓰이는 톨루엔이 오존 생성에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연구진은 여러 미세먼지 유발 물질 중에서도 톨루엔을 규제하고 관리하는 일이 가장 효율적인 미세먼지 저감 정책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KORUS-AQ는 또 자동차와 발전 시설이 주로 배출하는 물질인 질소산화물이 오염물질 오존과 ‘비선형적’ 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측정 결과 서울 대도시권의 상공에는 질소산화물이 이미 포화된 상태로 과다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줄이는 정책은 대기오염 저감에 즉각적인 효과가 없으며, 심지어 단기적으로 오존을 증가시켜 수도권의 오염도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물론 질소산화물은 장기적인 공기질 관리를 위해 꾸준히 감축 해야 하지만, 대기오염이 심각한 날에는 저감 대상으로 삼는 데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연구진의 결론이었다. 이렇듯 직관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복잡한 광화학적 과정 을 반복적인 관측으로 규명한 KORUS-AQ는 대기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이 참고하면 유용할 다양한 사실들을 알아냈다. 

그러나 KORUS-AQ가 밝혀낸 사실들은 국내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2017년 9월에 정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종합대책에는 톨루엔과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에 대한 대책을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이 종합대책의 일부 는 KORUS-AQ가 찾아낸 사실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정률 낮은 석탄발전소 4기의 LNG 등 연료전 환 추진 협의”, “노후 석탄 발전 임기 내 폐지 및 환경을 고려한 봄철 일시 가동중단 실시”, “노후 경유차 임기 내 77% 조기 폐차 등 저공해화”, “친환경차 보급 확대” 등의 대책은 모두 KORUS-AQ가 과잉이라고 지적한 질소산화물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둔 대책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공학한림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 2018년 1월 공동으로 발간한 미세먼지 보고서도 이 문제를 지적했다. “KORUS-AQ를 포함한 기존 국내외 연구에서 수도권은 질소산화물이 과다하게 배출되어, 질소산화물 배출만을 줄일 경우 미세먼지와 오존 농도가 올라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질소산화물 배출 저감은 매우 강력하게 추진되는 반면 휘발성 유기화합물 배출 저감 대책은 구체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세먼지 정책이 공기 과학 연구의 결과와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었다. 

내 코앞의 공기, 각자도생의 공기가 아니라 한반도의 공기, 호흡 공동체의 공기를 다루는 과학은 비싸고 느리다. LG전자, 삼성전자, 코웨이의 공기연구소에서 하는 발 빠르 고 화려한 연구와 비교하면 투박하기 그지없다. 공동체의 공기를 연구하는 과학은 내 코앞과 내 집 안의 공기를 맑게 지켜주겠다는 식의 매력적인 약속을 내놓지도 못한다. 한국 의 하늘과 바다와 땅을 휘젓고 다니며 측정하고 분석해도, 그 결과가 실행 가능한 정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난관이 많다. 그래서 KORUS-AQ처럼 중요한 대규모 공기 연구도 대중의 관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개인과 기업이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로 작은 공기를 다스리는 데에 집중하는 동안 거대한 공기의 문제를 감당하려는 과학과 정책은 방향을 찾지 못한다. 

 

5. 엇갈리는 응답 

각자도생의 공기는 바깥 공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걸어 잠그고, 손쉽게 통제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면서 유지된다. 공동체의 공기를 지키는 일은 이렇게 획득한 각자도생의 공기를 모두 더하는 것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공기오염을 잘 측정하고, 오염물질을 잘 거를 수 있는 헤파필터를 개발하고, 정교한 시뮬레이션 기술을 갖춘다고 해서 내 방, 우리 집의 범위를 넘어서는 우리 동네, 우리나라, 혹은 ‘동북아 호흡 공동체’의 공기를 잘 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최첨단 공기청정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 외에도 국내외 관계자가 협력하는 사회적, 정치적 기술이 필요하다. 협상과 협력은 공기를 공유하고 있는 사 람들이 모여 머리를 맞댈 때, 그래서 안과 밖,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시작된다. 

지난 2월 21일에 ‘클린 에어 엑스포’가 열리고 있던 킨텍스의 3층 그랜드볼룸에서는 미세먼지 정책 설명회가 있었다. 환경부의 이정용 미세먼지 대응책 TF 과장이 연단에 올라 공공의 공기를 깨끗하게 관리하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그는 행사 프로그램에 발표자로 적혀 있는 김법정 국장이 한-중 환경부 장관 회의 준비로 참석할 수 없게 되어 그 자리를 급하게 대신한다는 사정을 들려주었다. 환경부에서 준비한 정책 설명이 끝난 다음 여덟 명의 토론자가 무대에 올랐다. 대기환경학자, 화학생명공학자, 시민단체 대표, 보건환경연구원 원장, 환경재단 소속 변호사, 서울연구원 연구위원, 지속가능경영원 환경정책실장이 각자의 관점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 환경 전문가의 참여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 초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있었다. 이 문제는 과학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외의 모든 과학적인 수단을 동원하자는 주장도 있었고, 더 체계적인 관리와 정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경험, 배경, 전문성이 다른 토론자들의 생각은 한 방향으로 모이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 열띤 토론이 진행 중이던 오후 5시 16분, 사람들의 핸드폰이 일제히 울렸다. 환경부가 다음 날 시행 될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를 보냈기 때문이다. 미세먼지 특별법이 통과된 후 정확히 일주일 만의 일이었다. 어떤 공기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달랐지만, 거기 모인 토론자와 청중 모두 하나의 재난문자 통신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호흡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다. 

나흘 뒤인 2월 25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제 1회 미세먼지 국민포럼: 미세먼지, 얼마나 심각하고 무엇이 문제인가>에서도 ‘미세먼지 이슈’와 ‘해결책’은 단일하지 않았다. 미세먼지가 발생하는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발제자마다 짚는 문제가 판이하게 달랐다는 뜻이다. 대기과학자는 미세먼지의 정의와 실체를 물었고, 환경정책 담당자는 미세먼지를 관리하는 정책과 제도를 물었다. 이후 언론과 대중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미세먼지 시대를 살아가 는 태도, 미세먼지와 건강의 연관관계에 대한 발표가 한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포럼에서 확인한 것은 인간의 몸, 인간의 사회, 그 사회를 조정하기 위한 정책 등 모든 문제가 미세 먼지와 엮일 수 있다는 점이다. 

미세먼지 오염은 환경부에서 ‘미세먼지’라는 용어를 채택한 2014년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이정용 환경부 푸른하늘기획과 팀장은 미세먼지 문제를 중국과의 관계로 해석하는 대신 과거 한국 사회의 우연과 필연이 누적되어 생긴 결과로 보았다. 즉 재난 수준인 현재의 미세먼지는 경제 발전과 개발을 우선시하는 정책, 미세먼지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기에는 부족한 과학, 오염원을 실질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관행, 미흡한 환경 제도 등이 오랜 시간 층층이 쌓여 생긴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장영기 수원대학교 에너지공학부 교수도 “우리의 미세먼지 개선은 획기적인 대책이 없어서 잘 안 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대책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는지 제대로 점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패널로 선 이들은 눈길을 끄는 화려하 고 쉬운 답을 선뜻 제시하지 않았다.

공기청정기와 마스크를 권하지도, 원인을 중국 탓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대신 과거와 현재에 한국에서 펼쳐진 공기풍경을 다시 돌아보고 있었다. “따뜻한 가슴 대신에 정확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냉철한 머리보다는 같이 협업해서 서로 지혜롭게 해결합시다.” 문길주 국무총리실 미세먼지특별대책위원회 공동 위원장이 포럼 축사에서 한 말이다. 과학기술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장담하는 대신 이해관계자들의 협업을 요청하는 해결책은 느리고 답답하다.

각자도생의 공기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공기를 연구하고 관리하는 기술에 더 많은 공적 자원을 투입하는 결정은 그래서 더 어렵다. 국민포럼 발제를 맡은 장임석 국립환경과학원 대기질통합예보센터장은 한국과 중국이 같은 대기를 공유하고 있고, 중국의 오염원 분석 기술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이제는 우리가 응답할 때”라고 말했다. 과학기술과 인간과 지구의 관계를 고민하는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의 말처럼 무엇에 응답하는 능력 (response-ability)이 곧 책임감(responsibility)을 뜻한다면, 오염된 공기에 대한 응답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얼마나 책임지려 하는지를 드러낼 것이다. 

6. 공기 공포의 미래 

2019년 4월 15일 정오, 미세먼지 농도는 47μg/m³, 초미세 먼지 농도는 15μg/m³였던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꽃놀이를 떠나도 될 만큼 맑은 날이었지만 미대촉 회원들은 다시 광장에 모였다. 8차 집회였다. 3월 13일에 미세먼지가 공식적으로 사회재난으로 규정되었지만 이들은 3월 초 전국을 뒤덮었던 고농도 미세먼지의 충격을 잊지 않았다. 기준이 바뀌고 법이 개정된다 해도 미세먼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집회에 나온 이들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미세먼지는 발암먼지, 정부와 국회는 숨 쉴 권리를 보장하라!”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숨 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 “회색 스모그 아웃, 파란 하늘을 보고 싶다!” 

7차 집회 때와는 달리, 8차 집회 참가자들은 청와대로 행진하는 대신 무대에서 각자의 경험을 풀어놓았다.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이사를 간 가족, 미세먼지로 인해 놀이터의 즐거움을 모르는 아이의 이야기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특히 인상적인 발언자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몰래 공기오염 수치를 재고 온 학부모였다. 그는 공기청정기를 틀어놓았는데도 쉬는 시간에 문을 여는가 하면, 선생님들이 공기청정기를 조작하는 매뉴얼을 잘 알지 못하고, 사용 중인 공기청정기 유지보수가 제대로 되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 공기청정기가 없어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들려 보낸 경험을 말하고, 아이가 다니게 될 어린이집 등에 공기청정기를 들여놓기 위해서는 “일 년 전부터 조직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조언을 남겼다. 어떻게 관리되는지 확신할 수 없어도 공기청정기는 이미 공기 관리와 미세먼지 대책의 핵심이 되어 있었다. 공기청정기가 아직 없는 공간은 그 자체로 아이의 건강에 무책임한 곳, 그래서 부모들의 행동과 정부의 조치가 필요한 곳이 되었다. 

이날 집회에 참여했던 한 미대촉 회원은 네이버 카페에 후기를 남겼다. “정말 공기가 중요하다면 집회도 직접 체험을 해보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그것만이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됩니다.” 그 ‘빠른 길’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 그 길의 끝에서 만날 세상에 만족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교실마다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고, 오염된 공기가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창문을 이중 삼중으로 밀봉하고, 미세먼지 기준을 선진국보다 높이면 맑은 공기를 찾아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아이들이 천식으로 고생하지 않고 놀이터에서 맘껏 뛰놀 수 있게 될까. 파란 하늘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러면 우리는 공기를 덜 무서워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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