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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15)-이청준의 시대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15)-이청준의 시대
  • 교수신문
  • 승인 2019.06.1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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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먹먹하게하는 그의 '이데올로기 프레임'

정세근/충북대 철학과 교수 

이청준은 한 번 씌워진 굴레는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슬펐다. 아니, 이청준을 슬퍼하기보다는 그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슬펐다.  (발문)

소설가 이청준에 대해 한마디하고 싶다고 생각한지 벌써 반년 가까이 된다. 쓰자니 마음이 무거워서 저어했던 것 같다.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용기를 내본다. 
‘이청준’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이청준의 시대’라는 제목이 ‘이 청춘의 시대’로 읽히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이’ 청춘의 시대에는 이청준이 시대정신이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시대의 순서로 본다면 80년대에 인기몰이를 한 이문열은 이청준의 아류라고 말해도 크게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다. 이청준은 당시의 최인훈과 더불어 한 시대를 풍미했으니 말이다. 이청준의 단편가운데는 90년대 것도 있고, 하다못해 1983년의 KBS의 이산가족 찾기를 소재로 삶은 85년의 단편도 있으니 시대로만 보자면 긴 세월 동안 소설을 써온 정말로 묵직한 작가다. 최인훈이 1936년생, 이청준이 1939년생, 이문열이 1948년생이니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젊은이들에게 알려진 이문열과는 10년의 차이는 나는 셈이다. 
이문열에게도 이데올로기 강박증은 있다. ‘콩밭을 돌아 사라진 아버지’의 월북에 대한 콤플렉스가 곳곳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반작용으로 보수의 기치를 들고 있는 것도 시대상황에서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청준에게 이데올로기라는 장치가 참으로 견고했고, 그의 글을 읽은 내내 내 가슴도 먹먹해졌다. ‘아직도’라는 확인이 주는 슬픔이었다. 
부산에 있는 교수가 청주의 중고책방에 이청준 문학전집(약30권) 가운에 중단편소설 제9권으로 <숨은 손가락>을 사달라고 부탁이 왔다. 다른 부탁이라면 어정쩡했겠지만, 서생이 책을 탐낸다는 데 마음이 동해서 주말에 시내에 나가 책을 구했다. 그리고는 연락했더니, 벌써 구했단다. 싱겁기는. 
덕분에 이청준의 7편 중단편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중고 책 싸긴 싸더라. 3300원. 부산의 그 양반은 아마도 전집 욕심을 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한 질에 빠져있는 한 권에 대한 애착으로 급하게 연락을 한 것으로 이해가 됐다. 
고등학교 시절에 이청준 것을 재밌게 봤다. 최인훈은 좀 답답했지만 이청준은 다루는 부분이 넓었다. 탐미적인 것도 즐길만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이청준은 이데올로기스트였다. 거기서 한 걸음도 못 벗어나온 것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그래도’를 연거푸 물어보았지만 ‘아직도’였다. 사람이라는 게 변하기 힘들다. 그걸 요즘은 프레임이라고도 부르지만, 한 번 씌워진 굴레는 쉽게 벗어버리지 못한다. 나는 그것이 슬펐다. 아니, 내가 곧 그러고 있는 것 같아 슬펐다. 이청준을 슬퍼하기보다는 그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내가 슬펐다. 80년대 이데올로기 과잉시대에 청춘을 보냈던 나와, 50년대 전쟁의 폐허를 10대 때 경험했던 소설가의 정신세계가 자꾸만 중첩되고 있었다. 
전쟁, 이념논쟁, 모두 네 탓, 한계상황, 남을 죽이고 나 살아나기, 말을 아무리 돌려도 결국은 시대에로 귀결되는 이야기였다. 읽으면서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젊은이들이 이런 글을 어떻게 읽을까하고. 표제작인 <숨은 손가락>의 검은 제복과 푸른 제복이라는 설정이 올림픽을 앞둔 1985년에도 통용되다니. 
이산가족 찾기가 동기가 된 <흰철쭉>은 시대의 아픔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감정선이 연결되어 자연스러웠다. 가장 좋았던 것은 <개백정>이었다. 비록 1969년 작이고 6.25를 배경으로 하지만(작가가 서른이다) 강아지로 은유한 것이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고 있었다. 1985년 6월에 쓴 작가노트에는 바로 그 시절을 ‘백정시대’라고 꼬집어 말하고 있지만, 역시 어린 시절의 직접적인 경험이 담겨있어 개를 사람만치 사랑하는 젊은이들도 동감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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