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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수, 또라이 교수, 외계인 교수
좋은 교수, 또라이 교수, 외계인 교수
  • 교수신문
  • 승인 2019.05.2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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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들려오는 갖가지 얘기들에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스승’들에게 감사하지 않는다고 시위한 대학생들에 대한 보도에서부터 스승의 날을 폐지하라는 교육계 종사자들의 청원까지, 나름 설득력 있는 이유와 사연을 담고 있다.

불확실성이 팽배한 요새 대학가에서 확실한 것은 본인은 바람직한 스승으로서 교수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논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교수로 일컬어지기에는 한~참 모자란 탓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 자격 요건들에 대해 알면서도 실천하기는 힘든 ‘좋은’ 교수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는지라, '또라이' 교수와 '외계인' 교수에 대해 설을 풀어본다.

강단에서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매번 급여를 받아 챙기면서, 실상은 내가 가르치는 것보다도 내게 인생과 세상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나의 스승인 학생들에게서 어느 날 ‘또라이 질량불변의 법칙’에 대해 배웠다. 어느 집단, 직장, 사회에서든 일정 비율의 또라이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또라이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그레샴의 법칙처럼 소속된 집단에서 좋은 구성원들을 몰아내는 악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또라이 교수는 허울만 선생이다. 교수라는 권력을 빙자해 지식팔이 장사를 하며 온갖 ‘나쁜’ 짓을 일삼기에 반면교사로서 외에는 배울 것이 없는 이들을 칭한다. 학생들에 대한 부당한 노동력 착취, 부적절한 막말과 성추행, 편파적인 성적과 장학금 부여를 통한 복종 강요와 지배구조 형성 등 온갖 갑질을 행하면서도 잘못을 시인하거나 개선하지 않는 뻔뻔한 교수이다. 사회 엘리트층으로 분류되는 여타 집단보다 상아탑인 대학사회에서 그 위선이 극에 달한다는 점에서 학생들의 공분이 더 큰듯하다. 

외계인 교수는 말 그대로 지구인이 아닌 E.T.이다. 학생들과 같은 시대와 행성과 문명권에서 사는 인간이면 당연히 가져야할 공감능력이 결여된, 다시 말해 동떨어진 감성, 사고, 언어, 태도를 지닌 교수이다. 전체 교수들의 상당수가 해당된다는 외계인 교수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이 당면한 정신적?경제적?사회적 현실에 대해 논하는 언변은 전문가이건만 막상 이를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 외계인 교수는 소싯적부터 ‘지자천하지대본(知者天下之大本)’이라는 교리를 숭앙하며 지식인이 곧 국가와 국민을 대변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이들이다. 과도한 지식/학벌 우월주의로 뒤틀린 한국사회에 살면서 영재, 수재란 부추김을 먹고 성장한터라 온 천하의 중심이 자신이라는 우주관이 워낙 확고해 웬만한 미사일로도 파괴되지 않을 자기중심적 ‘독야청청’ 세계에 산다.
 
예전에 미국 국립연구기관의 동료가 하버드대 교수가 된 후 농담처럼 한 말이 있다. 7개 국어를 구사하며 고대 문헌들을 독파하는 이 친구는 자기 대학 교수들 각자가 연구실이라는 제국에서 왕인 듯 착각하며 산다고 말했는데, 깨닫고 보니 그건 비단 하버드대의 경우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대부분 구미의 대학교수는 한국 교수보다 덜 외계인스러운 듯하다. 우리네 학생들은 교수를 군대나 직장 상사보다 어려워하니 말이다.

물론 외계인 교수도 고충이 많다. 이른바 '포스트(post) 교수 요순시대'인 요즘은 정부정책 탓에 책무가 만만치 않다. 전임교원 강의비율과 강사법 시행을 빌미로 늘어난 과다한 강의시수, 수업 없이 연구만 해도 벅찬 분량(질적 수준은 차치하고)의 연구실적, 행정직 못지않은 온갖 서류작성과 잡무 등 일이 산더미 같다. 가히 초인적인 능력이 요구되니 슈퍼맨 수준의 기대치에 부응하려다가 자칫 학생들을 등한시하는 진짜 ‘외계인’이 되는 셈이다. 이러다가 지구상의 작은 국가 대한민국 내 대학들의 작은 왕국=연구실을 차지한 교수들은 장기집권 왕이 되려는 과정에서 너도나도 ‘외계인’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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