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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 민망한 것이...최상의 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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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 승인 2019.05.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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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23) - 개불
개불
개불

 

우리나라 남해안이나 동해안의 횟집에 가보면 통통하고 길쭉하면서, 거무튀튀하거나(동해안산) 불그스레한(남해안 것은 작고 살색임) 좀 거시기한(말을 꺼내기가 거북하거나 곤란한) 동물을 수조나 바닥의 큰 함지에서 본다. 우스꽝스럽게도 생김새가‘개 불알(음낭)’을 닮았다하여‘개불’이라 불리는 동물 말이다.
  사실 개불은 개의 고환처럼 생기지도 않았는데 점잖은 조상들께서 발칙하고 민망스러워 男根이라 떳떳하게 못 부르고 의뭉스럽고 익살맞게‘개의 불’에 빗대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개불(Urechis unicinctus)은 의충동물문, 개불과의 해산무척추동물로 한 때 분류상으로 아리송하고 어정쩡하여 환형동물(環形動物)로 취급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센털(剛毛)이 적고, 몸마디(體節)가 없이 원통꼴이라 별도의 문(門,phylum)을 만들었다.
 사실 얼핏 보면 동물의 창자를 닮았다하여 중국에서는‘海腸’이라 부르고, 서양에서는 남성성기와 흡사하다하여‘penis fish’라 부른다. 그리고 개불은 입이 납작한 것이 앞으로 쑥 튀어나와 얼핏(설핏) 숟가락을 닮았기에‘spoon worm’이라 한다. 그리고 손으로 어루만지면 미끌미끌한 놈이 화들짝 놀라 몸이 탱탱하게 부풀고, 물 밖으로 건져 올릴라치면 마치 어린애가 오줌 싸듯 찍하고 물을 슬며시 내뿜는다. 그럴 때는 놀랄 정도로 陰莖을 닮았다!
  개불은 우리나라 중부 이남과 일본, 중국연해에만 서식하므로 유독 한국?일본?중국 3국에서 개불을 먹는다. 그런데 외국문헌엔‘개불하면 한국을 대표로 쳐서’어시장의 개불사진, 회 접시에 오른 횟감사진도 모두 한국 것을 인용하였더라! 먹음새(먹새) 하나는 중국 사람들에게도 지지 않는 알아주는 배달민족이니까.
  또 정력에 좋다면 닥치는 대로, 양잿물도 마신다는 우리가 아닌가. 예부터 성기 닮은 모양새 탓에, 도통 시뻘건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개불을 즐겨 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불을 토막토막 내어 초고추장이나 참기름소금장에 찍어먹고, 일본에서도 우리만은 못 하지만 회를 퍽이나 즐기는 편이며, 중국에서 채소와 함께 볶아 먹거나 삶아서 말려 가루 내어 조미료로 쓴다고 한다.
  개불은 행동이 썩 둔하여 꿈틀꿈틀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할 정도인데 그래서 그때그때 크기가 달라지지만 보통 체장 10~25㎝, 굵기 2∼4cm남짓이고, 몸은 소시지모양(원통형)에 가깝다. 겉피부에 젖꼭지(乳頭) 꼴의 자잘한 돌기가 많고, 항문근처를 9~13개의 뻣뻣하고 꺼칠한 털이 에워싼다. 몸 빛깔은 붉은빛이 도는 검은색이거나 황갈색, 또는 살빛을 띠며 내장은 꼬불꼬불한 것이 배배, 돌돌 감겨 있다.
  암수딴몸(雌雄異體)으로 체외수정을 하고, 수정란은 발생 중 환형동물인 갯지렁이유생을 빼닮았고, 둥글면서 몇 줄의 섬모 띠가 몸을 휘감은 담륜자(膽輪子)라는 유생시기를 거친다. 이는 개불이 유전진화입장에서 환형동물과 서로 매우 가까운 동물임을 뜻한다.  개불체액은 헤모글로빈색소라 요리하느라 도마질하면 선홍색 피가 흐른다. 또 눈이 없고, 특별한 감각기관도 없는 하등한 동물 축에 들고, 또 납작한 숟가락주둥이를 쭉 뽑아 흙을 파먹지만 물에 떠있는 부유물이 떨어진 것을 받아먹기도 한다.  개불은 물이 번갈아 밀고 써는 조간대에서부터 수심 100m 바다 밑에 U자형의 구멍을 파고 살지만 보통 우리가 잡아먹는 개불은 드는 밀물에 잠겼다가 나는 썰물 때는 드러나는 모래진흙이 섞인 곳에 산다. 개불은 11월부터 2월이 제철로 이 때면 근해의 개펄에서 개불 잡이가 한창이다. 개불 또한 하도 잡아버려 씨가 말랐다한다.
 요리할 때에는 입과 항문을 싹둑 잘라버리니 주위에 각각 날카로운 가시가 있기 때문이다. 토막 친 회를 닁큼닁큼, 매매 씹으면 달짝지근한 감칠맛이 나고, 특유의 씹히는 식감이 쫄깃쫄깃, 오돌오돌한 것이 일품이다. 오도독오도독 소리까지 난다. 개불 글을 쓰다 보니 속초항횟집에서 소주 한 잔 걸치면서 친구들과 즐기던 생각이 새삼스럽게 나는 구려
  개불은 겨울철 애주가들의 술안줏감으로 인기다. 뿐더러 개불은 고혈압, 천식, 빈혈에 효과가 있다하고, 혈관 속에 피가 굳는 혈전을 용해하는 성분도 들었으며, 알코올대사를 촉진시키기에 숙취해소와 간장보호에 좋단다. 신선한 것은 날로(회)로 먹고, 곱창요리 하듯이 양념을 해서 알루미늄박(포일)을 씌운 석쇠에 굽거나 볶아 먹기도 한다는데 질깃질깃한 회에 비해 살이 한결 부드럽다고 한다.

권오길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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