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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무덤기행] 한일관계 재정립 '가네코-박열' 본보기 돼야
[최재목의 무덤기행] 한일관계 재정립 '가네코-박열' 본보기 돼야
  • 교수신문
  • 승인 2019.05.1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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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코 후미코' 편 마무리 기획
아나키스트 가네코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나키스트 박홍규(영남대 명예교수)와의 특별대담

<최재목의 무덤기행>‘가네코 후미코 편을 마무리하면서, 필자인 최재목(영남대철학과)의 사회로, 평소 자연자유자치의 3() 사상을 실천하며 생활하는 아나키스트 박홍규 명예교수(영남대교양학부)와 특별 대담을 가졌다. 잘 알려진 대로, 박홍규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진보적 지식인으로, 그동안 인문예술 등 다방면의 많은 책들을 선보였다. 이번 대담은 아나키스트인 박홍규 교수가 가네코 후미코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또 우리 사회 및 한일관계에서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를 어떻게 읽어내면 좋을지를 되짚어보고자 마련한 것이다.

최재목 교수(오른쪽)과 박홍규 교수가 영남대 캠퍼스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재목 교수(오른쪽)과 박홍규 교수가 영남대 캠퍼스 벤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재목(이하 최): 선생님, 그동안 잘 계셨죠? 정년을 하시고 난 뒤에도 여전히 저술 활동에 열정을 쏟고 계십니다. 선생님의 쉴 틈 없는 다양한 저술 작업에 대해 저는 솔직히 후배로서 부럽기도 하고, 존경스럽게 생각하기도 하고, 여하튼 감동하고 있습니다. 요즘 어떻게 생활하시고,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지요? 제가 보기는 지금까지 선생님께서 해 오신 작업의 중심에는 역시 아나키즘의 발굴과 천명(闡明)이 있는 듯 합니다만.

박홍규(이하 박): . 역시 잘 보시네요. 정확하게 보신다는 뜻과 함께 보잘 것 없는 자를 잘 보아주신다는 뜻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말 부끄럽게 살고 있습니다. 올 가을부터 인물과 사상에 매달 아나키스트 열전을 5년 정도 연재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16세기 뮌처부터 현대의 촘스키까지 아나키즘 사상사인데 저는 그것을 새로운 현대사상사로 쓸 생각입니다.

: 저는 최근 교수신문<최재목의 무덤기행>이란 제하에 이런 저런 사람들의 무덤을 탐방하며 기행문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천리포수목원의 민병갈(칼 페리스 밀러) 무덤, 소록도의 만령당(萬靈堂), 청산도의 풀무덤’, 가네코 후미코의 무덤을 연재해왔습니다. 다른 지면에서는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이 묻힌 곳을 찾아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답답한, 재미없는 현실을 건너가는 저 나름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사실 무덤 기행이라 하니 사람들이 좀 꺼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즐겁습니다. 죽은 자들을 호출하여 기억해주면서 거꾸로 제 삶의 의미와 방향을 되짚어 보게 됩니다. 이제 막 연재를 시작한 터라 마무리하기 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저의 이런 허접한, 부질없는 작업에 대해 한 마디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 선생님의 작업은 숭배 차원에서 무덤을 찾는 것은 아니고 그곳에 묻힌 사람들의 삶을 되짚어보기 위한 노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무덤을 찾는 일조차 잘 못하지만 몇 년 전 가네코 후미코의 무덤은 찾은 적이 있습니다. 상주에 귀농한 제자 집을 가는 길에 부근의 노근리 평화공원을 들렀다가 그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잘 몰라서 물어물어 찾아갔어요. 지금 무덤이 있는 박열기념관 옆으로 이장하기 전입니다. 아마도 무덤 앞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것은 톨스토이 무덤과 가네코의 무덤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제 몸에 전류처럼 흘렀습니다. 최선생님도 그런 감격으로 연재를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공감을 계속 가지신다면 저절로 좋은 글이 되겠지요.

: 선생님께서는 수많은 곳을 다니시고 또 다양한 인물들의 글을 쓰고 계신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저에게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무덤이 있으신지요? 그 이유는 무엇이신지요?

: 저는 무덤을 일부러 찾은 적은 거의 없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무덤만은 일부러 찾았지요. 동생 테오와 함께,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함께 묻힌 마을 공동묘지를 몇 번이나 찾아갔어요. 파리의 페흐 라쉐즈 공동묘지에 갔다가 파리코뮌 전사들의 벽을 본 적이 있는데 낮은 벽돌벽에 작은 현판 하나였습니다. 거창하지 않은 공동묘지가 좋더군요. 톨스토이 무덤은 그가 평생 살았던 야스나야 폴랴나 숲속에 있습니다. 묘석도 없이 너무나 소박한 무덤이어서 그 삶이 그대로 느껴졌고 무엇보다도 그 무덤이 제가 살아가야 할 길까지 가르쳐주었습니다.

: 제가 지난달까지 가네코 후미코에 대해서 5회 정도 글을 썼습니다. 그녀는 일본의 아나키스트이고, 독립운동가인 박열의 동지이자 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싸우다 23세의 나이로, 우쓰노미야 형무소 도치기 지소에서 목매달아 죽었습니다. 그녀의 생각과 사상은 옥중수기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をこうさせたか)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선, 선생님의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기억(특히 아나키즘)과 평가가 있다면 어떤 점인지요?

: 제가 가네코를 잘 모릅니다만, 대단한 지식인이 아니라 그야말로 고통 받은 인민의 한 사람이었기에 스스로 아나키스트가 되어 자신의 자유와 함께 조선의 자유를 추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근대화의 모순을 한 몸에 타고나 어려서부터 불우한 가정과 빈민 사회의 희생인 여성으로서 또 다른 희생인 식민지 조선의 해방에 온몸으로 공감해 천황암살에 가담했고 감옥에서도 아나키스트로 저항하다가 자살했습니다. 해방후 박열의 행적과 비교하면 가네코가 더 순수한 아나키스트였습니다.

: 최근 한국과 일본의 경색된 외교 관계를 생각하면 좀 안타깝습니다만, 가네코 후미코가 남긴 역사적 메시지를 한일 간의 새로운 관계 정립, 지식인 교류에 살려낼 수 있다면 어떤 점인지요?

: 지식인 교류라기보다 민간 교류, 그야말로 시민 차원의 공감과 연대가 한일관계 확립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가네코과 박열의 관계는 그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일본의 지식인들, 특히 사회주의 지식인들은 제국주의자들인 경우가 많아서 지식인간의 교류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이 아닌 순수한 인간적 교류라는 측면에서는 지식인 교류도 필요한데, 그 경우에도 가네코와 박열의 순결한 휴머니즘의 공감과 연대 관계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가네코와 박열이 그 모범이지요.

: 일본의 많은 지식인 가운데 우리가 기억하거나 눈여겨 볼만한 인물들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 저는 아나키스트들을 좀 더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국가주의를 넘어선 거의 유일한 일본 지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일본만이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나라들, 특히 유럽에서 그렇습니다. 물론 일본 아나키스트들 중에도 우익으로 전향한 자들이 있지만 그래도 일본제국식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극복하려면 아나키스트들의 초국가주의적인 코스모폴리타니즘을 보아야 합니다. 특히 일본에는 오스기 사카에니 고도쿠 슈스이 같은 정형적인 아나키스트들 외에 이시카와 준이나 츠루미 준스케 같은 다양한 아나키스트들이 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같은 지식인들에게도 아나키스트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저는 자유-자치-자연이라는 저 나름의 아나키즘관에 포함되는 많은 진보적 지식인들에 대한 조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서양이나 동양, 일본이나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은 대부분 과거 일본의 역사적 행적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편한 생각들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좀 더 가까운 관계로 만들어 갈 수 있을는지요? 발상의 전환이랄까, 어떤 대안이랄까? 식민 경험이 있는 외국의 예를 들어주셔도 좋겠습니다.

: 한국과 같은 유교권에 속하는 베트남의 실용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접근이 하나의 사례일 수 있습니다. 베트남에 비하면 한국은 너무나 관념주의적이고 감상주의적입니다. 우리가 일본에 엄청난 은혜를 주었는데 침략을 한 배신자니 하는 식의 사고는 버려야 합니다. 임진왜란을 비롯하여 수없이 왜구의 침략을 받았는데 우리는 한 번도 침략한 적이 없다는 식의 수난주의적 사고도 버려야 합니다. 서로 대등한 관계로 인정하되 당당하게 맞서고 자유로운 교류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와 일본은 긴 역사 속에서 그렇게 지내왔고, 앞으로는 더욱더 그러해야 합니다.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

 

박홍규 영남대교양학부 명예교수/저술가

1952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영남대학교 법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오사카시립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법대·영국 노팅엄대학 법대·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학·고베대학·리쓰메이칸대학에서 강의했다. 현재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로 전공뿐만 아니라 정보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문·예술학의 부활을 꿈꾸며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회장을 지냈으며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그동안 아돌프 히틀러, 누가 헤밍웨이를 죽였나, 카프카, 권력과 싸우다, 복지국가의 탄생, 헤세, 반항을 노래하다, 제우스는 죽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조지 오웰, 니체는 틀렸다, 인문학의 거짓말, 왜 다시 마키아벨리인가, 내 친구 톨스토이, 함석헌과 간디, 독학자 반 고흐가 사랑한 책, 독서독인, 마르틴 부버, 이반 일리히, 디오게네스와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다시 보기, 반민주적인, 너무나 반민주적인,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윌리엄 모리스 평전,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생각하라, 자유인 루쉰등을 집필했다. 아울러 존 스튜어트 밀 자서전, 유한계급론, 군주론, 산업 민주주의, 간디가 말하는 자치의 정신, 간디, 비폭력 저항운동, 유토피아, 이반 일리히의 유언, 학교 없는 사회, 자유론, 간디 자서전, 오리엔탈리즘, 사상의 자유의 역사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최재목 영남대·철학과/시인

영남대 철학과 졸업. 일본 츠쿠바(筑波)대학 문학 석·박사. 전공은 양명학·동아시아철학사상. 동경대·하버드대·북경대·라이덴대 객원연구원 및 방문학자. 한국양명학회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 동양철학자 유럽을 거닐다, 언덕의 시학, 상상의 불교학외 다수가 있으며, 시집으로 나는 폐차가 되고 싶다, 해피 만다라등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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