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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망'이 만든 문명 흥망의 갈림길
'야망'이 만든 문명 흥망의 갈림길
  • 교수신문
  • 승인 2019.05.0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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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세계사: 일본, 유럽을 만나다』 (신상목 지음, 뿌리와이파리, 2019.04)

 

한국에서는 역사를 국사와 세계사로 분리하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역사’인 국사는 역사의 ‘왕관 보석’ 같은 존재로 각광받지만, 세계사는 자국 역사와 연관성이 미약한 ‘타자의 역사’로 인식돼 관심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인문학 붐 속에서도 세계사는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역사를 자신의 역사와 타자의 역사로 분리해서 인식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또는 바람직한 것인가? 이 책에 따르면 답은 ‘아니오’다. 직업 외교관 출신의 저자는 외교관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가 고립되고 폐쇄적인 역사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역사는 서로 다른 문명 간의 인력과 반발력이 상호작용하는 양방향의 진화 과정이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역사를 알고자 한다면 타자의 역사를 알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 전편에 걸쳐 자신의 주장을 독특한 구성으로 전개한다.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의 역사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일본의 유럽 교류사를 일종의 가상 체험 교재로 활용한다는 아이디어이다. 저자는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에 걸친 한 세기 동안 생각보다 강한 변화의 추동력을 동반한 농밀한 이문명 간 교류가 일본 땅을 무대로 펼쳐졌다고 주장한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유럽 간 교류의 연원과 과정이 흥미를 자아내고, 당시 조선에는 누락된 유럽의 동아시아 진출 역사를 일본을 통해 간접 체험하는 재미도 신선하다.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유럽이 일본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유럽의 역사를 압축해 살펴본다는 점이다. 저자는 일본-유럽 교류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조망하기 위해서는 ‘유럽은 왜 일본에 왔는가’, 그리고 ‘유럽은 어떻게 일본에 올 수 있었는가’라는 근원적 의문에 답을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2000년에 이르는 유럽 역사를 축약하면서 저자는 결과가 아니라 동기와 과정에 서사의 강조점을 둔다, 저자는 중세 후기까지 대등한 수준이었던 동아시아 문명과 유럽 문명이 분기한 것은 문명의 ‘수준’이 아니라 ‘욕망’의 차이였다고 주장한다. 즉 동아시아는 서방 진출에 흥미가 없었지만, 유럽은 어떠한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동방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강한 의욕이 있었으며, 이러한 욕망의 차이가 서로 다른 발전 경로를 진행하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동방 진출을 견인한 동기를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 빗대 ‘료料, 금金, 신神’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는 발상이 흥미롭다.
뿌리와이파리 박윤선 주간은 "책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어려울 수도 있는 내용을 빠른 정보 처리가 가능한 스토리텔링으로 구성하거나, 마치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듯 텍스트가 이미지화돼 정보가 처리되는 인상을 주는 서사 스타일도 인상적"이라며 "외교 현장에서 느낀 경험과 자각이 바탕이 돼 형성이 된 탓인지 책 전편에 흐르는 저자의 역사관은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이다. 책을 읽다보면 잔인하리만치 냉엄했던 국제관계의 역사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고 말했다. 과연 현대 국제사회는 그러한 속성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 것인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이어지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의 하나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망 속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역사의 원리와 과정을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는 저자의 희망이 흥미로운 소재와 흡입력 있는 문체에 잘 배어 있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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