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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동향 : 2003년 상반기 학술계 정리
학술동향 : 2003년 상반기 학술계 정리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07.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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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안에 쏠린 학계의 눈길...'학문정책' 논의 진전

올 상반기 학술계의 화두는 개혁이었다. 새 정부가 워낙 개혁의 흐름을 타고 정권을 잡은 터라 학계는 미뤄뒀던 개혁과제를 앞다퉈 제시하느라 연초에 학술대회와 각종 토론회가 빗발쳤다. 대통령 공약사항 중 많은 지지를 얻었던 지방분권과 관련해 행정수도 이전 및 지역문화 개선방안에 관한 토론회도 행정학회, 도시환경학회 등을 중심으로 많이 열렸다.

하지만 국가정책에 대한 제안들은 기존 시민사회에서 논의됐던 사항들을 리바이벌 하는 수준이었고, 본격적인 학술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급박한 한반도 정세를 새정부가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가, 정부요직의 물갈이 및 학계인사 대거 유입과 관련해 앞으로 국내의 이념적 지형도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였다.

그 다음 학계 내부의 가장 큰 이슈로는 학술진흥재단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학문지원정책 및 학문평가를 둘러싼 논란이었다. 학술진흥재단에 대해서는 학문이 다양한데 왜 하나의 잣대로 평가하느냐 라며 국어국문학회 등 인문계 교수들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항의가 이어졌다. 대교협의 학문평가 또한 학문을 대하는 도식적이고 권위적인 태도에 경제학계, 물리학계가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이런 반발은 학술단체협의회, 학술단체연합회 등을 중심으로 학문지원정책의 바람직한 방향, 학술용어 통일의 필요성 제기와 맞물려 학문의 위상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회과학 분야
한반도 정세분석에서 최대 현안은 북핵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정착하는 문제였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북한학회 등을 중심으로 해서 북핵 논의가 상반기 내내 지속됐다. 주요한 쟁점들은 북미관계 개입을 통해 민족주의적, 주체적 외교력을 되찾을 것인가 아니면 국익을 위해 미국의 입장을 존중할 것인가였다.

하지만 이런 쟁점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지원 문제 등과 겹쳐지면서 본질이 흐려지고 말았다. 6월에 접어서면서 학계의 여론은 북미간 외교 대결에 직접 참여하기보다 동북아 제3국을 활용해 '전쟁'을 막는 게 급선무라는 여론으로 급선회해 학계의 무성한 논의들이 상당부분 무산되는 풍경도 연출했다.

이런 한반도 위기는 정전 50주년을 맞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로 이어져서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이라크전 파병과 관련해 학술단체협의회가 열었던 반전평화토론회, 시민사회 평화운동, 학계의 평화포럼, 틱낫한 방한을 계기로 한 대중적 평화담론이 역할을 했다. 평화학 논문들이 단행본으로 묶이거나 번역소개되는 풍경은 우리 인문사회과학의 주요 의제로 평화가 등장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동북아 프로젝트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동북아 담론은 지지부진했다. 기본모델 구상 단계에서 학계의 방향모색이 있었을 뿐이다. 우정은 미시건대 교수(정치학)가 '창작과비평' 여름호에서 "금융중심국은 현실적으로 무리이고, 물류중심국도 세계기준에 맞춰 대도시 인프라의 대규모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라며 지적해 동북아 설계에 대한 심층토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새만금 사업과 청계천 복구사업은 학계의 개입이 절실한 사안이었으나, 제대로 검토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최근 법원이 내린 새만금 사업 중단은 앞으로 국가의 밀어붙이기 식 정책추진은 줄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국내 생태환경운동이 국민적 공감대를 상당 부분 잃어버리는 데도 일조를 할 것 같다.

한편 현실에서 물러나 지식인의 자화상을 그려보려는 논의들이 크고 작게 이어졌다. 한국정치연구회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 손호철 서강대 교수 등 국내 사회과학계의 진보 학자들을 대상으로 연속토론회를 열어 진보의 새얼굴을 모색했는가 하면, 학술잡지를 통해서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 새로운 내용에 대해서 특집들이 쏟아졌다.

학자들은 한국 보수주의의 불임성을 통박하는 한편 수구보수와 다른 신보수의 출현 속에서 새로운 자유주의 이념의 등장을 엿보기도 했다. 맑스에 대한 학술적 조명도 진보의 자화상의 한쪽 풍경이었다. 맑스주의자들의 문화축제 '맑스코뮤날레', 냉전 이후 동아시아 각국의 공산주의 전개를 검토하는 학술대회 등이 연달아 열려 한국의 왜곡된 이념지도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 외에 서동만 상지대 교수(국정원장)의 색깔론 시비, 파워엘리트의 세대론·권력이동론, 싱크탱크로서 국내 학술단체들에 대한 새로운 주목, 지식인들의 정치웹진 창간 붐이 사회과학계의 화젯거리였다.

인문과학 분야
인문학 분야는 역사, 철학 쪽이 활발하게 이슈들을 생산해낸 반면, 문학, 예술 등의 분야는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철학과 역사 쪽은 자그마한 논쟁들이 많았지만 지난해의 쟁점이 이월된 것이 주류였고, 내부에서 맴돌고 확장되지 못해 아쉬웠다. 친일파 청산논쟁, 고대사 논쟁, 동양철학 논쟁, 자생적 근대화론 논쟁 등이 대강의 목록이다.

'역사학보'에서 안병직 서울대 교수가 "친일파 청산 문제는 단죄론적 시각으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라며 프랑스, 독일 등의 청산사례를 들고 유연하고 열린 시각을 요구해 박찬승 충남대 교수, 이진모 한남대 교수와 논쟁을 벌였다. 이런 과거청산과 역사서술 문제는 확실히 학계에 뚜렷한 두 목소리를 형성시켰다.

고대사 논쟁은 백제유물 시기논란과 함께 신라 화랑세기 논쟁이 있었다. 고고학적 발견이 고대사 통설과 다르고, 이것이 국내 소수파 학자들의 이론과 맞아떨어져서 고대사학계는 갈수록 혼란정국을 맞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계속 지속될 전망이다. '화랑세기' 진위논쟁은 일본에서 발견된 화랑세기 관련 기록 때문에 다시 재론이 벌어졌는데, 그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논의가 끝났다.

자생적 근대화론은 그동안 어렵게 명맥을 유지해왔지만, 낙성대연구소가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조선후기 경제현실이 '자생'이란 수식어를 붙이기엔 민망할 정도로 형편없었다는 실증적 분석을 내놓아 그 위상이 심각하게 흔들렸다. "모든 가치를 배제한 경제결정론적 시각"이라는 반박이 있었지만, 사실 경제구조가 근대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볼 때 전자가 더 설득력이 있었다. 아무튼 그 속에선 탈국가주의 시대의 어떤 표정이 스쳐갔다.

철학계는 한국철학회가 50주년을 맞아 학술대회를 열어 한국철학의 서양수용 및 전개사를 점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 또한 '철학 연구 50년'이란 단행본을 펴내 분과별 철학연구사를 결산했고,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는 '철학 원전 번역과 우리의 근대' 프로젝트의 중간발표가 열려 주목을 끌었다. 개화기에서 1950년대까지 철학용어 성립과정을 실증적으로 다뤘지만 후속반응은 미진했다.

근대성 논의는 이런 우리학문의 역사적 출발점을 보려는 움직임 속에서 일본과의 비교연구 등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였다. 이를테면 한 학술대회에서 신기욱 스탠퍼드대 교수가 주장한,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파시즘'에 근거한 게 아니라 식민조합주의에 의해 체계적으로 진행됐다는 說, 한중일 근대 서구사상 수용과정을 비교하기 위해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가 개최한 국제학술대회는 모두 이런 근대성 논의의 방향선회의 예감 속에서 음미할 만한 움직임이었다.

자연과학·문화 분야
과학 분야는 특정한 학술적 화두가 없는 상황에서 SCI의 실제적 위상과 관련해서 양적평가에서 질적평가 시대로 도약해야 한다는 학계의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 외에 실험실 안전문제, 복제양 돌리의 죽음, 이공계 위기설, 이공계 글쓰기 문제 등 주변적인 것들이 드문드문 논의의 도마에 올랐다. 새정부의 과학정책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한 게 6월말 이후인지라 오히려 하반기에 주요 이슈들을 놓고 갑론을박이 펼쳐질 전망이다. 과학기술부의 위상, 5대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과기부의 평가제 도입이 주요 이야깃거리를 제공할 것이라 생각된다.

예술 분야도 새로운 사조의 흐름이나 지적 유행이 눈에 띄진 않았다. 다만 새정부 출범 이후 문예진흥원 예산의 공백문제 및 문화관련 예산낭비 문제, 경제관료가 제기한 스크린쿼터 축소·폐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학계 인력이 동원되는 수준이었다. 스크린쿼터 문제는 항상 문화주권의 차원에서 이야기되지만, 이것은 경제우선주의의 대항논리로만 사용될 뿐, 문화주권의 내용적 차원을 어떻게 확보해나갈 것인가는 좀처럼 논의되지 않는다.

한가지 덧붙일 것은 대중사회에 힘에 대한 지식인들의 분석적 논의가 월드컵, 촛불시위, 대선을 지나면서 올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문화과학'에서 시도한 '지적대중' 논의가 그것인데, 대중파워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실감에 비해 그 실체를 명확하게 그려내는 건 여전히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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