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7-01 17:55 (금)
교육부, 간섭이 '불씨', 자율 평가 모색을
교육부, 간섭이 '불씨', 자율 평가 모색을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3.07.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교협 평가 거부 논란, 무엇이 본질인가

올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회장 김우식, 이하 대교협) 학문분야 평가의 연내 시행이 점차 불투명해지고 있다. 경제학 분야의 교수들이 무기한 평가 연기를 요구한 데 이어, 물리학·문헌정보학 분야까지 올해 평가 대상인 학문 분야 모두가 대교협 평가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교협을 전면에 내세워 보이지 않게 평가의 전반을 관여하고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의 간섭도 문제가 되고 있다. 논란의 시작은 '평가 편람' 내용과 평가 결과 활용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에서부터 촉발됐지만, 이제는 대교협 평가 자체에 대한 문제로 이어지고 있어 논란의 불씨가 쉽사리 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은 애초 평가의 목적이 퇴색돼 버린 '평가를 위한 평가'에는 참여할 수 없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 대교협 평가가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평가냐는 것이다. 최근 올해 평가를 받게 된 문헌정보학 분야 교수들은 "대교협 평가는 각 학문분야의 연구와 교육수준을 제고하고 내실화를 기한다고 하는 대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교육부의 일방적 정책에 휩쓸려 대학의 위기를 부채질하는 또 하나의 장치로 작용하고 있다"라며 대교협 평가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과의 한 교수는 "평가 대상 학과가 연구·교육 등에서 전체 대학교육에서 요구되는 질적·양적 수준을 갖추었는가를 인증하고, 개선할 점을 권고하는 것이 평가의 목적일 테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평가는 획일화된 기준을 토대로 대학을 서열화하는 데에 관심이 더 많다"라면서 "평가의 본래 취지를 살릴 것"을 대교협에 제안했다. 대학 서열화를 통한 '경쟁 유도'가 목적인 평가에 '자발성'을 기대하기란 힘들다는 말이었다.

대부분 외국의 대학 혹은 학문분야 평가가 '자발성'을 토대로 진행되고, 대학 서열화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은 올해 우리나라에서 빚어진 학문분야 평가 거부 논란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피평가자의 '자발성'이 전제되지 않은 채 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논란은 충분히 예측가능한 사건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일례로 우리나라 대학평가의 모델이 되고 있는 '미국 평가인증제'는 자체평가와 현장평가를 병행하는 등 평가인증의 절차와 과정에서 거의 동일하지만, 평가를 둘러싼 정부·평가인증위원회·대학·학과 간의 관계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평가의 주체가 정부나 정부 관련 기관이 아닌 협의체가 중심이 된 자율평가기구라는 점에선 유사하지만, 평가인증을 받고자 하는 대학·학과의 자발적인 신청·참여로 이뤄진다는 점, 평가결과가 인증 여부로만 판정될 뿐 서열화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차이을 보인다. 평가 과정에서 연방 정부나 주 정부의 간섭은 상상할 수 부분이다.

이에 따라 표면적으로 대교협이 대학과 학문분야의 인정 평가를 전담하고 있어도 정작은 교육인적자원부에 의해 평가가 주도되고 있는 평가시스템이 본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교협을 전면에 내세우고 교육부가 뒷짐을 지고 평가를 좌지우지하는 한, 교육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대학과 교수들에게 있어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것. 대교협의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평가 시스템은 미국 등의 다른 나라와 거의 동일한 형식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혹은 주정부가 지원을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우리와 차이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대교협의 평가에는 예산규모, 평가 항목, 평가대상 학문분야 선정 등 교육부가 평가의 크고 작은 일에 관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예산'을 손에 쥐고 쥐락펴락하는 교육부는 대교협의 평가가 진행돼 가는 동안 줄곧 '인증 수준을 넘어 평가 대상 대학 및 학과의 우열을 가릴 것', '변별력을 높여 평가할 것' 등을 주문해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주문은 국정감사 때에도 마찬가지로 제기돼왔다. 올해 교수들의 반발을 샀던 '상대평가 실시'도 교육부와 국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대교협의 중간자적인 위치에서 비롯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 대교협 종합평가·학문분야 평가는 국고의 지원에 의해 시행돼왔다. 이 부분은 다른 나라와 큰 차이가 없는 부분. 그러나 평가 대학 학과 선정, 평가 결과 활용, 평가의 방향 등 정부부처가 모든 부분을 관여하는 우리나라 평가의 특성은 대학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보다 '거부감'으로 일으켜 갈등이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난 대학의 '자율적인' 평가 방안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