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2:45 (금)
윤동수 작가 『길 끝에서 사라지다』
윤동수 작가 『길 끝에서 사라지다』
  • 고현석
  • 승인 2019.04.17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길 끝에서 사라지다』
윤동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376쪽, 2019년 04월 16일

과수원에 딸린 외딴집, ‘귀신 나오는집에서 홀로 음주를 일삼던 작가 윤동수가 10년 만에 책을 냈다. 봄이면 복사꽃이 흐드러진 무릉도원에 푹 빠졌고 겨울밤에는 아궁이에 군불을 때며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던 윤동수의 이 소설은 저 1970년대의 암흑기를 그리고 있다.

한 인간으로 살기에도 힘이 들던 유신독재 시절에 민주주의를 꿈꿨다는 죄로 하진무라는 젊은 영혼은 철저하게 파괴되고 만다. 친구와 동료를 감시하게 하는 프락치 활동의 강요야말로 돌이켜보면 가장 반인간적인 행위이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그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선택해야만 했던 하진무의 실존적 결단은 유신독재에 복무했던 구차한 인간 군상들과 날카롭게 대비된다. 작가는 이 점을 시종 집요하게 부각시키면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대학생들의 심리와 그 상황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다. 또 그 당시 대구 지역의 풍경을 솜씨 있게 살려낸 작가의 공로로 소설 속 인물들과 인물들이 처한 조건들이 입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살아남은 이들을 증인(?)으로 불러내 타락한 현재를 독자에게 환기시키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 청년이 사라졌다. 그는 유신독재 정권에 저항하자는 궐기문을 전국의 대학에 돌리고 좁혀 오는 수사망에 결국 자수를 택했지만, 중앙정보부는 그 청년에게 학생운동 내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한다. 그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했으나 정보기관의 압박은 점점 더 가혹해진다. 도리어 학원민주화투쟁을 기획하며 시대적 상황과 맞선다. 하지만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된 친구와는 다르게 고문당하지 않고 나온 전력을 앞세운 정보기관의 프락치 활동 강요는 점점 심해지기만 한다. 결국 다시 중앙정보부에 잡혀가지만 탈출해버린 것이다. 소설은 여기서 끝난다.

이 소설은 유신독재 정권이 한 인간의 인간성을 어떻게 말살했는지 하진무라는 인물을 통해서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 동시에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만들어낸 비굴한 지식인의 자화상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연인인 오인희가 생존 인물들의 기억을 통해 하진무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인터뷰 및 회고담을 중간중간에 삽입한 형식도 유신독재 시절이 단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특히 하진무를 수사한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은 공포감을 통해 어떻게 인간의 정신이 무너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는 강인한 인물을 택하지 않고, 정의감은 넘치지만 소심하고 다감한 인물을 통해 역설적으로 유신독재 체제가 얼마나 반인간적인 시대였는지 그려낸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유신독재 시절에 실제 있었던 여러 사건과 인물들을 종합해 만들어진 존재다. 저항과 비겁함 그리고 소시민적 나약함이 뒤섞인 하진무는, 그러니까 그 시대의 전형적인 캐릭터로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이다. 하지만 마치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인 1973년에서 1974년 당시의 실존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은, 대구라는 구체적인 공간과 예를 들면 DNA 이중나선처럼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유신독재가 인간성을 말살해놓은 현장임에 틀림없다. 결국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성 말살을 유신독재의 폭압이 어떻게 획책했나 하는 것이다. 고문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서인석의 경우처럼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서인석의 경우) 가하고, 기생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적 질환을 심어놓은 것이다.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질환의 가운데에 하진무가 있는 폭인데, 하진무는 그 상황 자체에 저항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 지점이 소설을 살아 움직이게 한다. 소설에서 어느 쪽으로든 쉽게 기울지 않게 함으로써 하진무의 고통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따라서 윤동수의 장편소설 길 끝에서 사라지다는 단순하게 유신독재에 대한 고발소설이 아니게 된다. 폭압적 상황에서 살아 꿈틀대는 인간성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서 우리가 잊기 쉬운 인간의 길을 탐구하는 작품이다. 사라진 연인 하진무를 찾아나서는 오인희의 행보는 바로 이 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어떤 독자들은 폭압적인 정치적 상황에 분노를 할 수도 있겠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하진무의 자유에 대한 의지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렁찬 인간 정신의 외침이기도 하다.

고현석 기자 pontifex@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