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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목의 무덤기행④-3 가네코 후미코의 무덤을 찾다
최재목의 무덤기행④-3 가네코 후미코의 무덤을 찾다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9.04.10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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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민족’을 넘어, ‘인간’으로, 각자 ‘주인’으로
박열과 가네코의 다정했던 한 때.
박열과 가네코의 다정했던 한 때.

 

옥중 편지의 사상글쓰기

가네코가 쓴 옥중 편지를 읽어본다. 대부분 연월일/수취인 불명의 편지인데, 그것이 보관돼 왔다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이런 기록들에 주목하는 것은 20대 초반 그녀를 행동하게 만들었던 사상’,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것이었다. 만일 가네코가 몇 십 년을 더 살아 버텼더라면, 필시 그녀는 사상가로서 성공했거나 또한 작가로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으리라 확신한다.

사상은 개인적인 행위와 신체동작을 가능케 하고, 나아가 사회적인 활동과 실천을 작동케 하는 디시프린이자 지적 장치이다. ‘글쓰기는 한 인간이 갖던 사상의 전시(display)이자 생각의 문법(文法)을 골조로 지은 광장(agora)이거나 패션(fashion)이다. 가네코 후미코라는 한 인간이 스스로의 삶을 태워서 남긴 저 문자사리(文字舍利)’, 아니 그것을 떠나 진리의 몸[法身]이란 게 따로 있기나 할까. 아니, 그녀의 글과 사상이 바로 진실한 그녀 자신이었다.

 

감옥의 밤’=‘죽음의 잠자리에서 쳐다보는 달

펜을 잡으면 다시금 가슴에 밀려드는/내 과거의 수많은 슬픔들./홀로 어루만지며 부질없이 안타까워하네/내 손가락에 박힌 못의 안타까운 기다림을./내가 손가락을 주목하지 않는 사이/철격자 밖에서 겨울비 내리네./애처로운 취사장 기적소리는 겨울 하늘로/천식에 걸린 목소리처럼 울려 퍼지는데.“ (야마다 쇼지, 가네코 후미코, 389). 죽기 6개월 전(1926.1.22), 변호사 야마자키 게시야에게 보낸 편지의 끄트머리, ‘야마자키 씨께라는 제목의 시이다. ‘철격자 밖에서내리는 겨울비는 비극과 파탄의 어두운 박자(拍子)이자, 차가운 대지를 두드리는 슬픈 헛발질이다. 그것은 바로 희망의 부재, 퇴락과 파탄의 알레고리이다.

연도 불명/424, 수취인 불명의 편지에서, 그녀는 또 이렇게 적는다: “나의 마음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게 가라앉아 진여(眞如)’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고요해집니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남몰래 눈물 흘린 적도 있습니다. 게다가 창백한 죽음의 세계를 알리는 흉물스러운 달이 나를 괴롭힙니다.//젊은 나이에 갇힌 몸, 움직이지도 않고/다만 혼자서 쓸쓸히 앉아 있네/ - 달빛/오늘 밤 또다시 높은 창문 너머로/검은 격자를 잠자는 얼굴에 드리우는구나//감옥의 밤은 무덤입니다. 말 그대로 죽음의 잠자리입니다. 나의 의식도 모두 이 묘지에서 쉬고 있습니다.” (야마다 쇼지, 같은 책, 371-372). ‘검은 격자’=‘감옥의 밤=무덤=죽음의 잠자리=묘지에서 쳐다보는 달이 진여(眞如)’여야 했는데, 그게 창백한 죽음의 세계를 알리는 흉물스러운것이 되고 말았다.

월인천강(月印千江)리일분수(理一分殊). 수많은 호수나 시내에 비친, ‘많으면서그러나 결국은 하나인. 갈래갈래 얽히고설킨 삶 속에서, 조각조각 너덜너덜 흩어지는 수많은 나. 그러나 끝내 닿고 보면 하나인 ’. ‘걸어도 걸어도 그 자리, 가도 가도 떠난 자리’(行行到處, 至至發處) 같은 ’.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가 말한 저 달 혹은 달이란 말은 많으면서 하나인, 우리의 존재처럼, 달은 바로 가네코 자신이었다. 달에서 그녀는 창백한=죽음의 세계를 알리는=흉물스러운자아의 맨바닥을 만난다.

 

최후의 한 점에 서서나 자신을 응시

아마도 자살 직전에 쓴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편지(수취인/연월일 불명)에서, 가네코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지옥의 맨 밑바닥 - 지하 몇 천 척의 갱 안으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듯한, 뭔가 위압하는 듯한 기분, 이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최후의 한 점에 서 있습니다. 바로 오늘에야 그러한 상황에 처해있는 나 자신을 진실한 눈길로 응시합니다.바로 지금 최후의 날이 왔습니다. 두 번 다시 이 추한 몸을 법정에 드러내고 싶지 않습니다. 동시에 참으로 슬프고 외롭게도 이제 더 이상 기운차고 밝은 당신들과 만날 기회도 없을 것입니다.”(야마다, 같은 책, 384). 세상과의 작별 편지였다. 최후에 만나는 것은 였다. 최후의 한 점에 서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1926723, 우쓰노미야 형무소 도치기 지소에서 가네코는 자살한다. 절망 끝의 선택이나 부자유에서 스스로 자유를 택했다. “손발은 비록 부자유스러워도/죽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죽음은 자유로운 것”(야마다 쇼지, 같은 책, 302)이란 그의 싯구처럼. 그녀는 의지대로 죽음의 자유를 택했다.

 

비장처참한 옥중결혼, “나를 조선에 묻어달라

재판기록에 따르면, 가네코는 1925년 여름 또는 가을 이후부터 옥중에서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아울러 각종 사상, 이념 서적도 탐독했던 것으로 보인다. 희미한 등불 아래 깨알 같은 글씨로 원고를 적어가는 사이 그녀는 안구피로는 물론 결막염까지 앓는다(야마다 쇼지, 같은 책, 232쪽 참조).

19251126일 자 《時代日報》(시대일보사)에는, “朴烈金子文子 一意執筆全力中: 박렬은 론문을, 금자는 자서전을 兩人不日獄中에서 華燭盛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인다. 가네코는 자서전을, 박열은 논문에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알리고, 아울러 머지않아(不日間) 옥중결혼식이 치러질 것임을 알리고 있다.

박열과 가네코에게 사형 판결(1926.3.25)이 나오기 약 한달 전(3.1), 후세 타쓰지(布施辰治. 1880-1953) 변호사를 중개로, 박열과 가네코의 옥중결혼이 서류 상 처리된다. 이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사실 사형이 집행될 경우, 가네코의 유해를 거두어 줄 사람이 없었다. 그 때문에, 그것을 합법적으로 수습해줄 사람을 확정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바로 법적 결혼이었다. 한 마디로 그것은 비장하고 처참한 결혼식이었다.

가네코가 자신의 유해를 수습해주리라 기대했던 사람은 당시의 현실에서 박열의 형인 박정식(朴庭植) 밖에 없었다. 박정식의 아들 박형래(朴炯來)가네코는 자신이 죽으면 박씨 집안의 묘에 묻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기에 의리가 두텁고 성실했던 아버지는 그 부탁을 지켰다고 회상한다. 야마다 쇼지는 박형래가 회상한, 가네코가 조선에 묻히고 싶었던 희망을 죽어서도 일본에 안주할 땅을 구할 가망성이 없다는 것을 안 가네코가 어쩔 수 없이 택한 사후대책이라고 해석하고 있다(야마다 쇼지, 같은 책, 245-6쪽 참조).

 

내 뇌리에 박힌 눈동자

731일 도치기 화장장에서 다비를 치른 뒤 흑우회 회원들에 의해 유골이 수습된다. 814, 가네코의 유골을 건네받으러 박열의 형 박정식이 장남 박형래를 데리고 경상북도 상주를 출발했다. 그들은 시모노세키를 거쳐, 16일 도쿄에 도착했다. 17일엔 지바 형무소에 있는 박열을 찾아갔다. 그러나 형무소 측은 이들의 면회를 거부했다(야마다 쇼지, 같은 책, 304쪽 참조).

당시 박정식과 그의 장남이 가네코의 유골처리 문제로 후세 다쓰지 변호사를 만나는 사진 한 장이 전한다. 나는 몇 번이고 쳐다보게 되었다. 사진에는 박열의 형 박정식(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그의 아들(왼쪽 끝), 그리고 후세 변호사(오른쪽 끝)가 보인다(야마다 쇼지, 같은 책, 305쪽에서 재인용). 깡마른 박정식의 몸도 몸이지만, 그의 놀란 듯한 눈동자가 자꾸 맘에 걸리기 때문이었다. 통역자인 듯한 여성을 쳐다보는, 유독 흰자위가 빛나는 눈동자. 당시 그가 얼마나 많은 불안에 떨며 초조해 하고 있었던 것일까. 짓누르는 일제 경찰의 공포감에다 가네코의 유골을 수습하여 조선 땅에 묻어야 한다는 결연함. 뭐 이런 것을 그의 눈빛에서 내가 읽는 것은 좀 지나친 해석일까.

 

자주와 자치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사회

최근 오슬로 대학에서 온 박노자 교수를 만났다. 마침 영화 박열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나는 일본인을 미워하지 않는다. 일본 제국을 미워한다.”는 박열의 대사 한 토막을 기억해냈다.

가네코의옥중수기를 보면, 박열을 만나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대목이 나온다. 가네코가 저기. 난 일본인이에요. 그러나 조선에 특별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그런데 당신은 나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가네코는 조선인이 일본인을 대할 때 가지는 감정을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 “무엇보다도 그것을 확인할 필요에서였다. 그러자 박열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내가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일본의 권력계급이오. 일반 민중은 아니오. 특히나 당시과 같이 편견이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오히려 친근감마저 가지고 있소.” 다시 가네코가 박열에게 말한다: “당신은 민족운동가인가요? 사실 난 조선에 오랫동안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 때문인지 민족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기분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은 기분도 드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조선인이 아니라서 그들처럼 일본으로부터 억압받은 일이 없으니, 조선인들과 함께 조선을 위한 독립운동을 할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군요. 그러니까 당신이 만약 독립운동가라면 유감스럽지만 당신과 함께할 수 없어요.”(조정민 옮김, 나는 나, 337).

그렇다. 가네코는 조선이라는 국가나 민족 자체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엇이든 힘의 우위에 있는 것, 권력지배계급으로부터 고통 받는, 노예처럼 살아가는 인간을 위해서 싸우려는 자신의 관점을 분명히 한다. 이런 문맥에서 일본 제국에 의해 억압과 고통을 받고 있는 조선의 민중=인간 편에 서서 싸움에 동참한다. 물론 충군애국(=천황제 도덕)에 유린되는 일본의 민중=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가네코는 박열과 지상의 평등한 인간생활을 유린하고 있는 권력=악마의 대표자를 일본제국주의의 상징인 천황으로 규정하고, 그와 관련 인물들에게 폭탄을 투척하려는 공작을 펴던 중 검거투옥되고, 마침내 대역죄로 사형선고를 받는다.

재판기록을 보면, 가네코는 자주와 자치 즉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꿈꾼다: “나는 자주와 자치 즉 모든 사람이 자기생활의 주인이 되고 자신의 생활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데에서, 어렴풋하긴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회의 환영을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자주-자치에 기반한 자율사회를 원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을 때, 그 행위가 비록 육체의 파멸을 초래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생명의 부정이 아니다. 긍정이다”(야마다, 같은 책, 219쪽 참조)라고 단언한다.

 

개인의 가치, 평등한 권리에 근거한 결속연대

그녀에게는 남자에 예속된 여자도, 그 반대도 허용되지 않는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 ‘인간 상호 간의 정당한 관계’, ‘개인의 가치와 평등한 권리 위에 선 결속-동지의식’, ‘()/섹스의 주권을 원한다. 여자이기 때문에 제공되는 모든 은혜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있다. 옥중에서 쓴 편지(수취인/연월일 불명)에서 가네코는 당당한 주체적 개인의 인간을 선언한다.

 

당신들은 나를 도대체 뭘로 보는 겁니까. 여성으로 보는 겁니까. 인간으로 보는 겁니까? ()/나는 인간으로서 행동하고 생활해 왔습니다. 그리고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 바로 그 기초 위에서 많은 동료들과의 교섭도 성립했던 것입니다. 또 당신들도 나를 인격을 갖춘 한 인간으로 보아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볼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참다운 동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동일한 전선(戰線)에 서 있는 자들 사이에 무슨 성적 차별이 필요하겠습니까. 성욕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다음에야 여자니 남자니 하는 특수한 자격이 무슨 쓸 데가 있겠습니까. 똑같이 인간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나는 섹스에 관하여 지극히 두서없는 생각밖에 갖고 있지 않습니다. 성적인 직접 행동에 관해서는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하나의 인간으로서 일어설 때, 즉 반항자로 일어설 때 성에 관한 모든 것 - 남자라는 자격으로 살고 있는 동물 - 은 나에게 떨어진 헌신짝 하나만 한 값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을 선언합니다./지금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남자가 아닙니다. 여자도 아닙니다. 인간일 뿐입니다./나는 인간으로서 살고 있습니다. 나는 이상의 이유에 기초하여 연약한 성을 지닌여성으로 간주되는 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그런 전제 위에서 내게 제공되는 모든 은혜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상대를 주인으로 간주하여 시중드는 노예, 상대를 노예로 간주하여 딱하게 여기는 주인, 이 둘 모두를 나는 배척합니다. 개인의 가치와 평등한 권리 위에 선 결속 그것만을, 오로지 그것만을 긍정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상호 간의 정당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와 타인의 모든 교섭을 그 기초 위에서 구할 것임을 나는 다시금 소리 높여 선언합니다.”(야마다, 같은 책, 383)

 

남과 여, 인간과 인간의 관계, 나아가서 한국과 일본, 아니 한국과 중국/미국 등과의 관계를 고려할 경우에도, 반드시 기억하고 참고할만한 명문장이다. 내가 가네코의 사상과 사유를 재평가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바로 이런 대목에서이다. ‘국가민족을 넘어 인간으로, 그리고 각자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평등한 삶과 세상을 그녀는 그려냈다. 미완의 구상이었지만, 우리의 논의는 여기서 다시 시작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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