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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아닌 공유가 답이다.
소유 아닌 공유가 답이다.
  •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 영어영문학과
  • 승인 2019.03.20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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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上)

강사법 사태와 대학 구조조정 문제가 맞물려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대학 문제에 천착해온 윤지관 교수(덕성여대 영문과)가 최근 한국대학학회 학술대회 ‘커먼즈 이념과 사립대학의 소유 문제’에서 발표한 내용을 2회에 걸쳐 싣습니다.

“사립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은 도전적으로 들리지만 그만큼 학문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법하다. 사립대학의 소유 문제는 재산권에 관련된 만큼 일차적으로는 법적인 사안이지만, 법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사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실정법상으로만 보면 사립대학의 소유권자는 분명해 보인다.
 
즉 현행법에서 사립대학의 소유권은 사학법인이 가지고 있다. 사립학교도 공익적인 교육기관이지만 국가가 설립의 주체이자 소유권자인 국립, 지방자치단체가 설립의 주체이자 소유권자인 공립과는 달리 국가도 지자체도 아닌 사인도 설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적 소유권이 개입될 수 있는 소지가 없지 않지만, 사립대학의 설립은 학교법인만이 할 수 있어서 사인이 학교설립을 목적으로 출연한 재산은 학교법인이나 대학이 설립된 순간부터 사적인 소유권이 상실되고 법인의 재산으로 변환된다.

그러나 법의 차원을 넘어서 현실을 들여다보는 순간 문제는 그리 단순치가 않다. 우선 한국 사학의 대다수가 그렇듯이 학교법인보다 오히려 개인이 ‘오너’로 군림해왔고 그것이 고질화된 사학비리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이 ‘오너’가 설립자든 아니면 그 가족이나 후손이든 사립대학의 소유권을 가질 수는 없으므로 결국 주인이 아닌 주인행세를 하고 있음에 불과함에도, 실질적으로 많은 대학들에서 이같은 ‘오너쉽’(소유권)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져 왔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설립자에게는 사학설립의 목적을 구현하기 위해 최초 이사회 구성의 권한을 포함한 운영권이 주어지지만, 이것이 기득권으로 굳어져 자신의 사유물처럼 대학을 운영하고 지배하고 세습해온 폐습 탓이 크기도 하거니와, 근원적으로는 사유재산의 보호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신성불가침의 원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사학설립은 개인이 자신의 재산을 교육사업에 투자한 것이므로, 어디까지나 그 재산의 원천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사학문제가 고질적인 사회문제가 되고 사학비리 척결은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약임에도, 사립대학에 주인이 있고 또 있어야 한다는 관념은 끈질기게 살아 있을 뿐아니라, 법적판단의 한 근거가 되어 있고, 기성정치권의 기본인식이자 사학분쟁을 조정하는 국가기구(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 과정에도 반영되어왔다.

사립대학의 소유권 문제가 이처럼 사회적 쟁점이 되는 것 자체는 한국 대학의 특수성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대학이 사학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거니와 공유 거버넌스(shared governance)가 일반화된 서구대학과는 달리 한국의 사립대학들의 운영방식은 ‘오너’를 중심으로 하는 족벌지배적인 봉건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탈근대를 지향하는 시기에 이같은 시대착오적인 대학운영방식의 온존과 그 폐습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적폐 가운데 하나로 청산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청산작업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사학의 족벌체제는 사회 전체의 기득권구조와 결합되어 있고, 무엇보다 자본주의사회의 재산권에 대한 완강한 수호의지의 뒷받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 대학에서 진행 중인 대학 구조조정 과정은 이같은 기득권 질서를 재편할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인구절벽으로 불가피해진 한국 대학 전체의 축소과정은 주로 사립대학들이 그 대상이 되고 있으며, 대학들의 경쟁적 평가를 통해서 대개 하위권에 속한 군소사립대학들에 조정이 집중됨으로써, 앞으로 10년 사이에 많은 사립대학들이 정리과정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고, 실제로 일부 사학들이 폐교되었으며 앞으로 그 대상은 급격하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립대학의 폐교는 사학법인의 해산을 동반하고 이는 사학법인이 소유한 재산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쟁점을 유발한다. 사립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현실적 긴박성을 가지고 다가오는 시기인 것이다. 국내의 이같은 대학 상황은 국제적인 추세와 결합하여 대학을 둘러싼 문제에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 지구화 이후 신자유주의적인 경쟁논리가 대학부문을 지배하면서 대학 간의 경쟁은 국내를 넘어섰으며 대학의 세계화가 국가적인 의제가 되었다. 한국 정부가 대학의 구조조정을 대학 간의, 전공간의 경쟁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추세와 연동되어 있다.

그 경쟁은 대학이 어떻게 효율성과 경제적 성과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적 책무에 부응하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으로 이는 대학이 자본주의적 체제를 작동시키는 데 중요한 재생산 기제가 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일찍이 1990년대에 빌 레딩스(Bill Readings)는 『폐허의 대학』(The University in Ruins)에서 현재의 대학은 학문과 교육의 공동체로서의 근대대학의 이념이 소멸되고 스스로 관료적인 기업체가 되었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의 진단은 당시 지구화가 본격화되는 시기에 북미 대학들의 상황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지금에 이르러 급속히 상업주의적인 방향으로 개편되고 있는 한국의 대학들에도 해당된다.

이처럼 대학의 본령이 훼손되는 국내외적 상황에서 그 사회적 자리를 새롭게 점검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사립대학이 주를 이루고 있는 한국에서는 특히 사립대학의 존재방식에 대한 질문이 중요해진다. 자본과 시장의 대학 침투로 야기된 대학의 기업화는 오너로서의 소유권을 앞세우며 이윤추구를 해온 한국 족벌사학들의 기득권적인 지위를 강화하는 측면이 있다. 대학을 사유물로 여기고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해온 문제사학을 정리하고 공영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같은 대학의 기업화 추세와 맞부딪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진적이고 봉건적인 한국 사학의 지배구조와 그 이윤추구적 속성이 이같은 ‘탈근대적인’ 대학의 기업화 추세와 결탁한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듯이 단지 사학비리를 처벌한다거나 폐교시 비리 당사자에게 대학재산의 처분권을 박탈하는 제한을 두는 차원의 개선책 정도로 이 복합성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필자는 사립대학의 소유문제는 탈근대시대 대학의 사회적 자리를 묻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국가와 시장 그리고 대학의 상호역학 관계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사립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그것이 이른바 오너냐 혹은 사학재단이냐의 질문을 넘어서 대학의 본래적 이념으로서의 학문과 교육의 공동체라는 의미에서 어느 일방의 소유물이 아니라 공동으로 소유하고 운영되어야 하는 자율적인 영역이라는 것, 다시 말해 대학은 공유의 관점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필자가 국가 및 자본의 통제와 지배에 맞서는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으로 제기되고 있는 커먼즈(commons)를 현금의 대학문제와 관련지어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 영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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