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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흐름: 우리시대 미술가들의 자화상展
미술계 흐름: 우리시대 미술가들의 자화상展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07.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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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己로 향한 질문... 다양성 불구 내적긴장 아쉬워

화가로서 자의식이 담긴 최초의 자화상을 그렸던 뒤러. ‘고독’과 ‘자기보존’을 표현했던 다빈치. 부자에서 가난뱅이로의 몰락을 자화상으로 보여줬던 렘브란트. 자기와의 대결의식을 자기만의 조형언어로 다루었던 고흐. 르네상스 이후 자화상은 화가 자신의 내면 표출의 장으로, 자기인식과 자기애, 자조애, 자기연민을 발현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2003년 상반기 미술전시의 흐름을 돌이켜보면, 자화상을 주제로 한 전시회들이 끊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의도도 표현방법도 갖가지다. 출품한 작가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인 자화상들은 한국 근현대사를 한곳에 나열한 듯하다. 전반적으로 기획전이 많이 열렸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작가들은 자화상을 통해 어떤 문제의식들을 나타냈는가. 남다른 시대를 겪었던 만큼 원로작가들은 한국의 근대사와 결부된 자의식을 보여줬다. ‘근대미술의 산책전’(2002.12.18~2003.7.27 덕수궁미술관)에서는 아직 사대부의 이미지를 간직한 고희동의 모습을 통해 해방과 일제잔재 사이를 방황하는 화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곽덕준(5.21~ 8.31 국립현대미술관)의 모습에서도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정체성을 고심하는 이방인의 흔적이 드러난다. ‘자기라는 인간은 오직 하나뿐’이므로 ‘고독하다’라고 말한 그는 해학적인 자화상으로  반어법을 나타낸다. 말년의 자화상 속 김종영(5.27~6.26 김종영미술관)은 단지 몇 개의 획만으로 자신의 마음을 압축하고 있다.

한편 ‘내가 생각하는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아이,유,에스전’(2.13~3.30 성곡미술관)에서는 중진부터 신진작가까지 두루 참여해 주제의식의 다양함이 인상적이었다. 인류의 문제를 고민하는 듯한 김차섭의 무거운 얼굴. 주관적 시선을 배제한 리얼리즘적 얼굴의 김홍주. 사람이 아닌 강아지로 표현한 고정민. 집단화된 대중에 휩쓸려 가는 무표정의 자아를 그렸던 김진정 등. 이들에게서 현대사회의 실존주의적 자아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과연 우리가 보는 세계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자화상을 끌어낸 ‘발견 2003―오픈유어아이즈'(~4.20 마로니에미술관)에는 20~30대 신진작가 13명이 참여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것들을 낯설게 하거나 불편하게 느껴지도록 하는 작품들이었다. 특히 ’여성성도 남성성도 아닌, 동양이나 서양문화도 아닌 중성적 이미지를 보여준 고상우, 도심의 폐건축물에 불시착한 우주인의 모습으로 익숙함과 낯섬을 한곳에 보여준 박경택의 작품이 눈에 띈다. 설치작가 천영미는 '똥 냄새는 싫은데, 꽃 냄새는 왜 좋을까'라는 작품을 통해 우리가 너무도 뻔하게 생각하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성’이란 정체성 또한 줄곧 제기되는 주제였다. 여성 3인작가의 ‘미완의 내러티브전’은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적 제약을 뚫고 당당한 삶을 살악는 자화상을 나타냈으며, '나쁜 엄마들, 땅에 발붙이다‘(5.27~6.16 마로니에미술관)전은 육아와 관련된 여성의 자아들을 ’좋은엄마‘와 ’나쁜엄마‘라는 대비되는 주제로 보여줬다. 

또 다른 차원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자화상을 표현하는 독특한 방법이나 소재선택이다. 이재삼(1.20~2.10 갤러리도올)은 목탄이라는 광택없는 검정톤의 재료로 인간 본연의 절대적 무게를 표현했다. 또한 하나의 색채아래 자아를 고민하는 작가들이 뭉쳤다. 30대 작가 15명이 참여한 ‘보라전’(2.5 ~23 마로니에미술관)이 그것. 보라가 지닌 특성때문인지, 일종의 경계선으로, 모퉁이로, 또는 모호한 색감에 자신을 비유한 작품들이 두드러진다.

우리 시대 자화상을 통해 작가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한국 현대사에서 작가들의 자화상 변모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세대별로 자화상을 평가해보자면, 물론 해방전후 세대들은 전체적이고 통일된 이미지로 조금은 무거운 자화상을, 반면 현대작가들은 다양하고 실험적인 작품들을 보여줬죠. 하지만 어느 세대나 모두 자아의 고민은 마찬가지이고, 또한 시대적 상황들이 자아에 녹아 들어가지 않은 경우는 없으니까 양자를 꼭 분리해서 볼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현대 작가들에게서 자아의 분열상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솔직성 때문이죠”라고 김인혜 덕수궁미술관 학예사는 평한다. 그동안 열렸던 각양각색의 자화상 전들은 하나의 고정된 자아상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주체들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법이나 표현에서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역력히 드러나지 않았던 점, 또한 깊은 독백이나 내적 긴장이 조금은 덜 우러나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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