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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음식 초콜릿, 그 이국적인 유혹의 역사
신들의 음식 초콜릿, 그 이국적인 유혹의 역사
  • 정한진 창원문성대 · 호텔조리제빵과
  • 승인 2019.02.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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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데이_ 초콜릿 이야기

초콜릿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대한제국 말로 추정된다. 해방 후 미군정 시기에 미군의 전투식량으로 사용되었던 초콜릿은 신기한 외래 식품이었다. 1970년대에만 하더라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초콜릿은 고급과자로 유통되었다. 오늘날 초콜릿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으며 초콜릿 바는 친숙한 간식거리이다. 고급스러운 상자에 담긴 초콜릿은 밸런타인데이에 남녀 간의 사랑과 우정을 표시하는 매개물이다.

초콜릿에서는 서양문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초콜릿의 기원은 유럽이나 미국이 아니라 고대 중앙아메리카에 있다. 당시의 초콜릿은 오늘날과 같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마치 커피처럼 카카오나무 열매의 씨앗을 갈아 만든 ‘마시는’ 음료였다. 신비의 문명을 건설한 마야족과 아스텍족에게 카카오는 ‘신들의 음식’ 곧 신이 내려준 선물이자 지혜와 힘을 주는 신성한 음료였다. 그러나 16세기 스페인 정복자에게 이 음식은 걸쭉하고 쓴 음료에 불과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금과 은에 있었고, 그래서 엘도라도를 찾아서 그곳까지 온 것이다. 한 세기가 지나서야 초콜릿은 왕과 귀족들의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게 된다. 화려한 바로크 시대는 새롭고 이국적인 것들을 갈망했고, 초콜릿은 커피와 차 그리고 설탕과 함께 그러한 욕망을 채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었다. 더욱이 초콜릿은 초기에 강장제로서 또는 성욕촉진제로서 받아들여지면서 유럽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이러한 욕망의 대상은 동시에 쟁탈의 대상, 착취의 대상이었다. 유럽 열강의 식민지를 둘러싼 이권 싸움은 식민지 피지배자로 전락한 원주민들에게는 고통이었다. 또한 대규모 농장에 공급될 아프리카 노예들이 머나먼 이국의 땅으로 끌려와야 했다.

사진출처=www.berries.com
사진출처=www.berries.com

오늘날과 같이 ‘먹는’ 초콜릿이 등장한 것은 1820년대이다. 카카오 원두를 간 반죽에서 카카오 버터를 분리하는 기술이 등장하고 나서이다. 초콜릿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카카오나무의 열매에 들어 있는 씨앗을 과육과 함께 발효시킨 뒤에 씨를 분리해 건조한다. 이 납작한 아몬드 모양의 씨 카카오 원두를 볶고 껍질을 제거해서 갈면 카카오 반죽이 되는데, 이를 압착하면 카카오 고형분과 카카오 버터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카카오 고형분을 다시 갈아 알칼리화 과정을 거쳐 물에 잘 녹도록 만들면 물이나 우유에 타 마실 수 있는 코코아가 된다. 당시 먹는 초콜릿은 모래가루가 들어간 것처럼 거칠었지만 부드럽게 갈고 오랜 시간 동안 젓는 콘킹 기술 덕분에 쓴맛과 신맛이 약화되고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는 초콜릿이 1879년에 등장한다. 스위스 초콜릿의 명성을 확고하게 한 분유와 초콜릿을 혼합하여 만든 밀크초콜릿의 탄생도 이 무렵이다. 그 후 초콜릿 제조 기술의 발달과 산업화에 따른 대규모 생산은 초콜릿의 대중화를 촉진했다. 20세기의 양차 대전에 걸쳐 초콜릿은 군인들의 전투 식량에 포함되었고, 이는 초콜릿의 보급에 커다란 역할을 한다. 미국의 허시(Hershey) 사를 비롯한 대규모 초콜릿 제조업자들의 적극적인 시장 공략 덕분에 초콜릿은 서구의 일상 속에 파고들어 뿌리를 내렸으며, 초콜릿은 단지 기호식품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적 대상이 된다.

오늘날에도 초콜릿의 약리적 효과가 주목받기도 한다. 초콜릿에는 중추신경계를 자극해 각성효과를 주는 카페인, 신경자극 물질 테오브로민, 초콜릿의 엑스터시로 불리는 트립토판 등 다양한 물질이 있다. 하지만 이 물질들은 다른 음식에도 들어있고 이들의 양은 극히 소량에 불과해 그 효과를 발휘하기에는 회의적이다. 초콜릿을 먹고 기운을 회복하거나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은 초콜릿 속에 들어 있는 과도한 설탕이 분해되어 단시간에 흡수되는 포도당의 효과일 수 있다. 그래서 카카오 함량이 높은 쓰디쓴 초콜릿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카카오 원두의 양만이 아니라 질이 보다 중요하고 식용유와 같은 식물성의 대체지방이 아닌 카카오 버터의 함량에 따라 초콜릿의 맛과 질은 달라진다. 초콜릿의 질과 새로운 맛을 찾는 소비자들은 초콜릿 장인들의 보다 세련되고 독창적인 제품들에 점점 더 관심을 둔다. 해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주목받는 초콜릿은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하나의 사회문화적 제스처를 표현하는 매개체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정한진(창원문성대·호텔조리제빵과)

서울대학교 미학과 박사과정 중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르코르동 블루에서 요리, 제과, 와인 과정을 수석으로 마치고 셰프로 활동하였으며, 현재는 창원문성대학교 호텔조리제빵과 교수이다. 『커피는 어렵지 않아』, 『프랑스 파티세리 클래스』를 번역하였고, 『향신료 이야기』, 『초콜릿 이야기』, 『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 『프랑스 요리의 세계』, 『세상을 바꾼 맛』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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