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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쟁 문화의 진화
대한민국 경쟁 문화의 진화
  • 이무하 서울대 명예교수 · 농생명공학부
  • 승인 2019.02.12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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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문화는 사전적으로 “일상적인 행동이나 습관, 서로에 대한 태도, 도덕적 및 종교적 신념 등으로 보이는 특정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라고 정의된다. 따라서 나라마다 지역마다 각자 독특한 문화를 가진다. 이런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소통에서 오해나 불신 혹은 갈등이 조장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선진국들의 국제 협력이나 지원 사업이 대부분 실패하는 것은 해당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업을 착수하기 때문이며,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의 원인도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육은 어려서부터 제로섬의 경쟁을 가르친다. 경쟁이 본인의 발전 수단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타인과의 생존경쟁으로 변질해 있다. 대학입시라는 경쟁 무대가 젊은 시절을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리게 하여 배려라는 개념을 잃어버리고 이기심만 키워주고 있다. 사회에 나가면 이런 경쟁의 폐단을 해결한답시고 평등을 내세워 능력과 차이를 무시함으로써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심어주고, 집단화된 자들의 이기심으로 또 다른 제로섬의 무대를 제공하고 있음을 본다. 배는 고파도 살지만, 배가 아파서는 못사는 민족이 한민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남이 잘되는 것을 못 참아 자신이 상대방을 이기지 못하면 끌어내려서라도 자신과 비슷하게 만들려고 한다. 이런 문화는 우리나라에서 영웅을 만들지 못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결국 대한민국의 이기적 경쟁문화는 혼자는 잘하지만 집단으로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국민적 특성을 고착화하고 있다. 요즘 사회경제적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인 것 같다. 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특징은 다양한 분야의 융합에 있다. 따라서 혼자의 능력으로는 문제해결이나 창조가 불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많은 직업이 없어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길 것이라는 예측과 함께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기존의 암기식·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난 창발적 학습(emergent learning)이 권장된다. 창발적 학습이란 개인들이 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혼자 만들어 내는 것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형태를 창조해 내는 능력을 교육하는 것이다. 학자들이 창발적 학습을 강조하는 이유는, 세상의 문제는 단순한 문제, 복잡한 문제 그리고 복합적인 문제의 세 종류가 있다. 단순한 문제나 복잡한 문제는 기존의 암기식·주입식 교육을 받고 경쟁에서 이긴 머리 좋은 인재들이 해결할 수 있으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복합적인 문제는 창발적 학습을 통해 양성된 인재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창발적 교육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어서의 문제는 교육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교육자의 능력이다. 기존의 교육자들은 대부분이 과거의 교육방식으로 양성된 인재들이다. 자기가 배우지 않은 것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교육자들에게 엄청난 압박이 될 것이고 잘못 가르칠 위험이 아주 커진다. 이기적 경쟁문화에 익숙한 교육자와 피교육자들이 새로운 인재양성을 위한 상호작용과 팀워크가 강조되는 창발적 교육의 당사자라는 것은 대한민국 생존전략의 딜레마다.

세상은 괴팍한 사람들에 의해 발전해 나가고 인간 진화는 필요에 맞춰 진행된다고 한다. 모나면 정을 맞는다는 대한민국 문화 속에서 집단에서 돌출되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필요한 인재는 소통을 잘하면서도 집단에서 튀는 인재다. 교육도 그런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가정책 입안의 문제는 항상 현재의 선진국을, 그것도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들을 벤치마킹한다는 데에 있다. 급변하는 시대의 현재는 과거나 마찬가지다. 미래를 준비하려면 지금이 아닌 미래에 적용될 내용을 준비해야 하지만 과거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현재의 문제에 대응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는 현실은 우리의 또 하나의 딜레마다.

한 국가의 문화도 진화한다. 현재의 필요는 창발적 학습을 통한 인재 양성이고, 이기적 경쟁문화에서 소통 문화, 상호작용 문화로의 전환이다. 인간 진화의 역사가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었다면 시대의 필요에 따라 대한민국의 경쟁문화도 창발적으로 진화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그렇지 못하면 지구상에서 소멸하는 첫 번째 국가는 대한민국이 될 것이다.

 

 

이무하 서울대 명예교수·농생명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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