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19 19:05 (화)
기고 : '독립신문' 강독회 7년 이후--반약토론회에 부쳐
기고 : '독립신문' 강독회 7년 이후--반약토론회에 부쳐
  • 박현모 정문연
  • 승인 2003.07.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근대 정치의 원형 제시...대한사회과학론의 텃밭

박현모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나는 청계산 운중골 사는 無知沒覺한 사람으로, 근자에 듣건대 '독립신문 강독회'가 7년간의 논설읽기를 마치고 反約토론회를 한다하니 찬탄을 금치 못하겠노라. 무론 동서고금하고 십 수명의 선비들이 주말마다 모여 43개월(1896.4.7∼1899.12.4) 어치의 952개 논설을 읽고 그것을 요샛말로 바꾸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을 터인데 7개 星霜을 버텨온 '강독회'의 뚝심과 노고에 먼저 치하를 드리옴.

 

요즘 정치학자들은 포학학자다
"정치학이라 하는 학문은 문명 개화한 나라에서들 여러 천년을 두고 여러 만명이 자기 평생에 주야로 생각하고 공부하여 만든 학문"(1896.4.14)인고로 정부 관인들은 이 학문에서 이국편민하는 지혜를 배울 것을 독립신문이 일찍이 말하였삽는데, 지금까지 대한 정부·의회의 하는 일을 볼작시면 사사건건이 이기편당하는 일들뿐이다.
정부·의회가 잘못하는 하는 것은 다름 아니외라 대한 정치학자들의 허학숭상과 줏대 없는 공부에 큰 책임이 있는 것이옴. 대한 사기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기는 "往事를 알면 지금 형편을 옛 적에 비하여 보고 미래사를 조금 아는 지혜가 나는 고로 다만" 외국 사기를 알 뿐 외라 "내나라 사기도 공부하여" 어느 때 누가 무슨 일을 하여 "어떻게 결말이 난 것을 보아 그 좋은 일은 가히 취하여 본받을 것이요 그른 일은 아무쪼록 국중에 생기지 아니하는 것이 사기를 공부하는 것의 효험이어늘"(1898.9.19).
대한 선비들이 대한 사기를 아니 보고 아니 가르치는 까닭에 대통령까지도 링컨 씨나 루스벨트 씨 같은 위정자들만 알고 세종이나 정조 임금처럼 조선 사기의 훌륭한 정치가들은 까마득히 모르는 것 같더라. 성인의 말씀에 "미리 경계치 아니하고 일 이뤄지기를 바라는[不戒視成] 것을 暴라 하고, 가르치지도 아니하고 죽이는[不敎而殺] 것을 虐이라 한다"('논어') 하얏삽는데, 지금 대한 선비들이 자기 직무를 태만히 하면서 정부·의회 사람들 허물만 들춰내는 것이 정치학자가 아니라 포학학자라 하는 것이 가하겠도다.
지금 우리가 독립신문을 읽고 좋게 여기는 것이, 여기에는 일 백년 전의 대한 사기가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는 고로, 정치·외교·경제·법률·군사 등 각색 학문하는 선비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와 자료를 많이 찾을 수 있어서 가히 대한 사회과학론의 텃밭이라 할 것이라. 그 이유를 대강 말하노니 경향의 군자들은 보시고 생각들 좀 하여보시오.
첫째는 독립신문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은 대한의 잘잘못들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음이라. 가령 "이왕 허락은 하여 놓고 힘은 약하여 破約할 권리도 없고 인순고식하야 당당히 시행도 아니하다가 졸리고 위협받고 마지못하여 시행하(는 것은) 외교의 하책이라"(1898.8.6)는 말은 대한 외교의 문제점을 한 눈에 보여줌. 반면 "국가에 해로운 일이 있으면 세력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공심으로만 일하는"(1898.8.4) 태도는 대한 사기에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바 좋은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들이라.
둘째는 독립신문에는 만민공동회의 모습이 잘 기록돼 있는 바, 여기에서 대한 정치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음이라. 도성 인구의 열에 하나가 종로 대로에 모여 아라사의 잇권침탈을 규탄하고, 체포된 독립협회 회원 석방을 위해 경무청문 앞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고 풍찬노숙하던 시민들과, 군인의 총칼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당당한 정론으로 군인들을 설득하던 만민들의 모습에서 대한 정치의 희망을 읽을 수 있지 아니한가.

사상의 독립에 대한 오래된 침묵
그러나 우리는 편벽됨을 싫어한 연고로 독립신문을 선전하거나 옛날이 지금보다 좋았다고 말하려는 생각은 조금치도 없으며, 독립신문 논자들의 잘못도 함께 말하고저 함.
첫째는 "백성들이 낱낱이 자주 독립하는 마음"을 가질 때 "나라가 독립"(1898.7.15)될 수 있다고 역설하던 독립신문 논자들은 정작 그 백성들을 불신하는 입장 보이고, 동시에 의회설립을 반대하고 있음. "무식하면 한 사람이 다스리나 여러 사람이 다스리나 국정이 그르기는 마찬가지요, 무식한 세계에는 군주국이 도리어 민주국보다 견고"(1898.7.27)하다는 논설이 그 예이라. 그러면 같은 해에 장국밥 말아들고 만민공동회 찾은 백성은 누구며, 콩나물 판 돈 기증한 노파는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가.
둘째는 논자들이 침묵하는 '사상의 독립'이로라. "독립이라 하는 것은 스스로 믿고 남에게 기대지 아니"(1898.7.15)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들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구라파의 문명개화론에 기대고 있음이 그것이라. "학도를 구미 각국에 파송"(1898.7.27)할 것을 역설하면서 서구 문명에 대해 끝없는 찬사를 보내는 독립신문에서 사상적 자주독립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일 듯 하더라. 바로 여기에 '대한 사회과학론'으로서 독립신문이 반면교사가 되는 연유가 있지 아니한가. 경향의 선비들이여 생각들 좀 하여 보시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